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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학번들, 잃어버린 ‘연기 꿈’을 되찾다

극단 ‘관악극회’의 올해 공연작 ‘시련’의 연출을 맡은 이순재씨(왼쪽)가 정창옥씨(오른쪽)의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16일 연습에 참가한 스태프와 캐스트들. 최정동 기자
무더위가 한창인 16일 오후 서울문화재단의 대학로 연습실. 지하 172㎡(52평) 공간에 모인 20여 명의 코끝엔 금세 땀방울이 맺혔다. 에어컨은 고장 나 있었다. ‘무더위 한증막’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정체는 뭘까.

 연습에 한창인 사람들은 ‘관악극회’ 소속 배우들이었다. 서울대 54학번부터 2010학번까지 서울대 연극회 출신 동문들이 모여 2011년 만들어진 극단이다. 지난해 ‘하얀 중립국’을 창단 작품으로 내놓았다. 서울대 연극회의 역사는 1947년 5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연’이란 작품을 공연한 뒤 900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91·교육학과 46학번) 여사가 연기부장을 맡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66년 전통의 연극회답게 탤런트 심양홍(68·국문과 64)씨 등 낯익은 얼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연출은 탤런트 이순재(78·철학과 54)씨가 맡았다. 맞다, ‘꽃보다 할배’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젊은층의 인기를 사로잡은, 그 이순재다.

 이씨는 연습실에 들어오는 도중 손녀뻘 여대생들에게 휩싸여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이씨는 드라마 촬영이 있는 목요일을 빼고는 매일 연습실에서 밤늦게까지 연기를 지도한다. 15일은 목요일이었지만 드라마 촬영이 없자 바로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88년 극단 ‘사조’에서 탤런트 김용림(73)·김미숙(54)씨 등이 나온 ‘가을 소나타’ 이후 25년 만에 첫 연출이라고 한다. 지난해 ‘하얀 중립국’엔 직접 출연했다.

 이씨는 연출을 맡은 이유에 대해 농담 조로 “덤터기를 썼다”고 말했다. “동문 출신 현역 연출가가 여럿인데 타이밍이 안 맞은 데다, 내가 서울대 연극동문회 회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맡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서울대에서 연기와 인연을 맺었다. 1학년 때 배우 신영균(85·치의예 48)씨가 당시 명동예술극장에서 한 공연을 본 게 계기였다고 한다. 원래 서울대 연극반은 단과대별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씨가 ‘서울대 연극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었다. 초대 회장은 ‘극단 성좌’의 고(故) 권호일 대표가 맡았고, 이씨가 2대 회장으로 뒤를 이었다. 그의 대학 동기들은 “연극에 미쳐 수업을 빼먹어 학점을 바닥에 깔았지만, 멋있고 의리 있는 사나이”로 이씨를 기억한다.

54학번부터 2010학번까지 3대가 모여
이씨의 연기생활은 연극에서 시작했다. 졸업 후 여러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65년 TBC 개국과 함께 전속 탤런트가 됐다. 이후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오가면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씨는 “81년 극단 사조가 창단된 뒤 2~3년간 ‘꽃보다 할배’의 멤버인 박근형(73)씨와 같이 활동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관악극회의 올해 레퍼토리는 ‘샐러리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아서 밀러의 ‘시련’이다. 17세기 말 미국 동부지방에서 벌어진 마녀 사냥을 소재로 했다. 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비꼰 작품이다.

 세종대·가천대에서 석좌교수로 연기를 가르쳐온 이씨는 “‘시련’은 이미 여러 번 워크숍에서 다뤘다”고 말했다. 그래선지 그의 대본은 빽빽하게 적힌 글씨로 가득 찼다. 이씨는 “생활연극인(아마추어)이 섞인 연극임을 감안해 연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늘 그의 연출에선 디테일과 자연스러움이 강조됐다. 예컨대 주인공이 라일락 향기를 언급하는 장면에선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 3대 수종(樹種)이 마로니에·은행·라일락이야. 그중 라일락은 향기가 캠퍼스를 다 덮을 정도였어”라고 가르친다. 극중 여자 배역이 부르는 자장가를 놓고 모차르트와 브람스 작품 중 어떤 게 더 잘 어울릴까 고민할 정도였다.

 그에게 “요즘 인기를 실감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미 ‘거침없이 하이킥’이란 시트콤에서 ‘야동순재’로 유명해지지 않았나.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진솔한 내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가 자기 또래뿐만 아니라 실버 세대의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같다. 앞으로 다양한 세대가 골고루 나오는 TV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른 단원들은 “이 선생님이 한턱을 자주 낸다. 특히 야식으로 족발을 많이 사준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관악극회의 배우들은 대부분 아마추어다. 대학 시절의 연극·연기에 대한 열정을 잊지 못해 무대를 다시 찾아온 사람들이다. ‘푸트남 부인’ 역을 맡은 나호숙(62·가정학과 70)씨도 “30여 년 만에 서는 무대가 너무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여성 국극을 보며 연기를 동경했다”고 말했다. 졸업과 함께 결혼한 뒤 주부 연극교실에서 잠시 몸을 담았지만 가사에 바빠 그마저 접었다고 했다. 연기가 너무 그리워 2010년 당시 서울시극단 단장이었던 김석만(62)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무작정 찾았다. 김 이사장과는 대학 때 교양 과정을 같이 들은 인연이 있다. 그의 소개로 ‘시민연극교실’에 들어갔다. 나씨는 “마음만 앞서고 몸이 안 따라줘 힘들지만 요즘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정창옥(60·금속공학과 72)씨는 공대 연극회에서 활동하다 부모의 반대와 생계 걱정 때문에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다 2009년 은퇴한 뒤 올해 비영리단체 ‘생활연극네트워크’에 가입하면서 연극계로 돌아왔다. 그는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심취했던 연극을 못 잊어 늘 미련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 때 했던 ‘혈거부족’이란 작품의 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정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연극의 내용처럼 서로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서로 이해하는 공동체가 된다’고 깨닫게 됐다”면서 “연극은 자기 표현의 장이지만 힐링의 장도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연극이나 영화, 가리지 않고 무대에서 연기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게 목표란다. 정씨는 “오디션에 100번 프로필을 내고 떨어지더라도 연기생활을 하겠다. 단 한 작품을 하더라도 그 자체가 소중한 경험 아니겠나. 그렇게 여유 있게 사는 게 내 꿈”이라고 말했다.

 고교 수학교사 김일호(59·수학과 73)씨도 졸업 후 연극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생활전선에 뛰어든 경우다. 그는 이번에 ‘프란시스’라는 역할을 맡았다. 대사량이 적고 출연장면도 많지 않다. 그러나 “연극에선 비중 없는 역할이 없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주연을 맡는 게 당연하다”며 “벌써 많은 제자들이 연극을 보러 온다고 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동범(46·경영학과 86)씨는 남자 주연 ‘프록터’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스타 학원강사 출신이다. 그러나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학번에겐 독립영화 ‘파업전야’의 남자 주인공 ‘한수’로 더 기억된다. 90년 제작된 ‘파업전야’는 정부로부터 불법영화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대학가를 돌면서 상영했는데도 30여만 명이 이 영화를 봤다. 대학 졸업 후 ‘그린 시어터’라는 극단에 참여했지만 1년 만에 부도가 나면서 연극계를 떠나야 했다. 김씨는 이번 배역을 위해 술을 끊고 한 달 만에 5㎏을 뺐다. 김씨는 “단 한 번도 무대를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하 연습실에서 땀을 흘린 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을 되찾고 있다. 다음 달 5~14일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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