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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지각변동 눈앞 출마 희망자들, 입당 미루고 독자 행보

#경기도 출신 민주당 A의원은 최근 지역에서 기초의원들을 불러 모았다가 깜짝 놀랐다. 7명 중 1명밖에 오지 않아서다. 그는 “예전엔 밥 먹자고 하면 전원이 왔었는데 정당공천제 폐지가 논의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다른 의원들도 ‘기초의원들이 심상찮다’고 걱정한다”고 전했다.

충청권 출신 새누리당 B의원도 당 행사에 부쩍 소홀해진 시장·군수 때문에 고민이다. 그는 “앞으로 정당공천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면 당 눈치 안 보고 지역 행정을 마음대로 하는 무소불위 기초단체장이 탄생할 것”이라며 “정당이 지역 행정을 감시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각 당의 시·도당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당 공천이 없어지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이 당원으로 활동하지 않거나, 시·도당의 자금줄인 당비가 끊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각 당 소속 기초단체장은 중앙당에 매월 30만~50만원, 도의원·기초의회 의장은 10만~20만원, 기초의원은 5만~10만원씩 내고 있다. 송기정 민주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당원들끼리 술자리에서 ‘앞으로 시당 운영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걱정을 많이 한다”며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은 지방선거 전에 공천 희망자들의 입당이 쇄도하고 이들이 납부하는 당비로 살림이 불어나는 ‘지방선거 특수’도 이번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기초단체장 출마를 준비 중인 공공단체장 C씨는 최근 민주당 입당을 미루기로 결심했다. 예년 선거 때 같았으면 당 공천을 받기 위해 진작 당원으로 가입했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보통 1년 전엔 입당해 당협 위원장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들 하더라. 하지만 이번엔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지켜보려 한다. 다른 후보도 당에서 활동하기보다 관망하는 것 같다.”
인천에서 수년간 정당 활동을 해온 김희갑 전 총리실 정무수석도 지역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낀다. 그는 “본래 기초의원 후보들은 지역위원장에게 종속적인 입장이어서 각종 행사를 따라다니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소신껏 활동하는 이가 꽤 된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에서 활동하며 충북 기초단체장 출마를 준비해온 D씨는 이런 논의가 달갑지 않다. 그는 “오랫동안 당에서 활동해온 게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정당공천제를 유지해 달라”고 지역구 의원에게 부탁했다.
후보군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도권 기초의원을 지낸 새누리당 당원 E씨는 “보통 지방선거 전 예비후보군을 찾아다니며 ‘설문조사를 해보니 인지도가 높다’며 선거운동을 권유하는 ‘꾼’(여론조사 전문가나 선거 컨설턴트를 지칭)이 움직이곤 했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해 본 사람)이 많이 나올 텐데 꾼들이 더 활개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논의되면서 정치판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민주당은 지난달 20~24일 폐지안을 놓고 당원투표를 실시했다. 7만6370명 중 67.7%(5만1729명)가 찬성해 폐지안이 가결됐다.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제 폐지로 당론을 정하고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면 내년 6·4 지방선거부터 기초단체장·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가 현실화된다.
그러나 새누리당에선 “황우여 대표를 빼곤 당 지도부 모두가 폐지에 반대한다”(당 핵심 관계자)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에서도 “당론으로 정하긴 했지만 의원 127명 중 찬성하는 이는 30~40명 정도”(황주홍 의원)라고 한다.
여론은 정당공천제 폐지로 기울어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9일~8월 1일 전국 12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 60%, 반대 23%였다. 17%는 의견 표명을 유보했다.

“기초의원·단체장, 1억~2억원이 공천 단가”
공천제 폐지에 찬성 여론이 우세해진 건 정당 공천의 폐해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공천 헌금’이 대표적이다.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당 공천 앞번호인 ‘1-가’ ‘2-가’를 받으려면 최소 1억원은 쓸 생각을 해야죠.”
서울에서 3선 기초의원을 지낸 F씨의 말이다. 그는 “우제창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기초의원 출마 예정자 2명에게서 1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는데 그게 그곳만의 일은 아니다”고 했다. 같은 당에서 복수 후보를 내는 기초선거에선 앞번호를 받으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져 거액을 낸다는 설명이다.

기초의원의 보수는 평균적으로 월 290만원(연 3479만원), 의정활동비는 월 110만원(연 1320만원)이다. 지방의회는 1991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범했으나 2006년 유급제로 전환됐다. 다만 구체적 액수는 각 지방의회에서 결정한다. 그런데도 공천 헌금으로 거액을 쓰는 데 대해 F씨는 “인맥을 넓히고 국회의원 출마의 발판이 될 수 있어 일종의 투자라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봉이 9324만(2급)~7973만원(4급)에 이르는 기초단체장을 희망하는 이들이 정당 공천을 받으려 쓰는 돈은 기초의원보다 많다. 이기수 전 여주군수는 2010년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현금 2억원이 든 쇼핑백을 건네려다 체포됐다. 문충실 서울 동작구청장의 부인 이모씨는 2010년 지방선거 전 야당 중진 E의원 보좌관에게 “구청장 후보 경선을 도와달라”며 억대 금품을 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기초의원·단체장들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예속되는 것도 문제다. 경기도의 한 기초의원은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국회의원 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유권자에게 상품권을 배포하고, 지역 주민 식사비를 대신 내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수족처럼 부린다”는 불만이 군수·구청장들로부터 쏟아져 나온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중앙 정치에 예속돼 풀뿌리 민주주의가 어렵다”며 정당공천제 폐지 운동을 해왔다. 이들은 지난달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민단체 관계자 등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대선 공약 이행촉구 시민행동’을 출범시켰다. 반면 여성계에선 “여성 후보들이 정당공천을 받지 않으면 조직력이 남성에 밀려 당선권에 들기 어렵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의 관심은 새누리당이 당론을 어떻게 정할지에 모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어서 4·24 재·보선 땐 실험적으로 무공천을 실천했다. 그러나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표면적으론 정치 신인이 불리하다는 이유를 들지만 현재 수도권에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많아 2014년 지방선거에서 현역 프리미엄이 있는 민주당보다 불리할 거라는 게 진짜 속내다. 이에 당 일각에선 기초단체장은 놔두고 기초의원 공천만 폐지하자는 절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은 정당공천제 폐지로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려 ▶기초의회 정원의 20%를 여성으로 선출하는 ‘여성명부제’ 도입 ▶후보자가 지지 정당을 표방할 수 있는 ‘정당 표방제’ 도입 ▶정당별로 후보 기호를 일괄 부여하는 기호제 폐지 방안을 내놓았다.

일본·영국, 정당 공천 영향력 감소
다른 나라 사정도 복잡하다. 미국에선 지방정부가 정당공천 여부를 결정하는데, 4분의 3 이상이 정당공천을 금지한다. 10대 도시 중 뉴욕·시카고·필라델피아 세 곳만 정당 공천을 받고 LA 등 나머지 7개 도시는 정당의 관여를 배제한다. 그러나 선거 유세 때 후보의 정당 성향을 밝힐 수 있다.

반면 일본에선 정당 공천을 허용하고 있지만 정당 영향력이 작아지는 추세다. 일본의 지자체장은 96명 중 50명이 무소속이다(2008년 기준). 70년대 이후 행정 효율과 생활 정치가 강조되면서 무소속 당선자 비율이 높아졌다.

강원택 서울대(정치학) 교수는 한국이 일본을 참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이 표면적으로 없어진다 해도 실제 정당이 지역 선거에 관여하지 않긴 어렵다.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되 지자체가 중앙당에 예속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처럼 지역 정당을 만들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육동일 충북대(자치행정학) 교수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되 정당공천을 허용하는 광역선거와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기초·교육감선거를 분리하자고 주장한다. “전국 동시 선거를 하는 건 한국밖에 없다. 효율성 때문에 동시 선거를 하고 있지만 지방선거가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 되는 걸 막고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려면 두 선거를 분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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