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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망명’으로 고단한 내 여친들을 위해…

유하가 전화를 했다. 일문학 교수인 박유하는 내 오랜 여친이다. 삼계탕을 먹으며 “우리 만난 20주년 기념식이라도 해야 할까 봐” 한다. 그러고 보니 1994년 초, 그녀가 일본에서 돌아와 아직 대학에 자리 잡지 못했을 때 처음 만났다. 아름답고 우아했던 그녀도 이젠 할머니가 다 됐다. 속앓이를 할 때 그녀의 전갈을 받고는 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반복되는 그녀 고유의 고통을 꺼내 놓는다. 새로 펴낸 책 『제국의 위안부』가 또다시 비난세례에 직면할 모양이다. 언제나 그랬다. 그녀의 저서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가 건건이 친일파 논란에 휩싸였다. 가령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 조선의 민족정기를 훼손하려 했다는 우리네 상식에 대해 박유하는 ‘말뚝을 박으면 정기가 흐려진다’는 일종의 풍수사상이 일본땅에 전래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신간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동원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인데,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이라는 우리네 상식과 많이 다른 내용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녀는 한·일 양국에 모두 존재하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사실관계 왜곡을 바로잡고자 한다. 민족주의가 왜 문제인지조차 통용되지 않는 한국 현실에서 성품 여린 그녀는 너무 아프다. 그놈의 학자적 양심이 뭐란 말인가.

여친 혹은 걸프렌드는 중의적이다. 애인과 이성친구의 느낌을 모두 담고 있다. 어떤 남자 블로거 글에 결백한(?) 여친 관계를 일컬어 ‘여자사람친구’라고 표현했던데 딱 맞다. 박유하와는 하룻밤을 함께 새운들 여자사람친구다. 다정한 삼계탕과 긴 뒤풀이 후 박유하, 시인 황인숙과 더불어 또 하나의 오랜 ‘깊은 관계’ 여자사람친구가 그리워졌다. 파멸적인 소설 『매혹』을 썼던 작가 박수영이다. 신간을 내고 얼마 전 중앙일보 인터넷판 1면 톱기사로 유진룡 문화부 장관과 대담하는 기사를 봤는데 그 덕으로 책은 좀 팔렸을까.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학위를 할 때 재발견한 한국인상을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저자명을 생뚱맞게 ‘이숲’이라고 개명해서 웃었다. 에, 휴, 박수영 선수! 도무지 먹고사는 재주와 거리가 먼 그녀여서 한 달 총수입이 옌볜에서 온 식당 아줌마보다 못하다. 이대를 다니다가 서울대를 다시 들어갔다가 메릴랜드대, 웁살라대로 월드와이드하게 이어지는 쓸데없이 과도한 학구열이 그녀를 일종의 현실 부적응자처럼 만들어 버렸다. (도대체 그녀가 교수가 아니면 어떤 지성을 가져야 교수가 된단 말인가.) 한국에서 책 써서 먹고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다. 밤이 깊도록 ‘아직까지’ 아름다운 그녀와 생활고 타개책을 토론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마음고생을 하는 박유하, 생활고가 괴롭히는 박수영과 더불어 시선집 『꽃사과꽃이 피었다』, 고양이 에세이 『우다다, 삼냥이』를 동시에 펴낸 황인숙 역시 속앓이가 만만찮다. 출판 쪽 사정이라 공개하기도 그렇고…. 일주일 새 연이어 만난, 다음 생에 기회가 되면 꼭 결혼하고 싶은 내 사랑하는 여친들은 한결같이 책을 펴내고 한결같이 편안치 못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녀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는 세상이 문제라는 생각만 든다. 아빠 마음인가. 오빠, 혹시 애인의 마음일까.

이제 나는 내 여친들을 위한 선곡을 하련다. 독일의 현대 작곡가 카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1905~1963ㆍ큰 사진)의 여덟 곡의 교향곡(wergo판, 작은 사진). 세계의 비극을 자기 것으로 껴안고 살아간 비타협적 양심의 표상 하르트만의 행적을 두고 작가 토마스 만은 ‘내적 망명’이라고 칭했다. 10년간의 자발적 은둔을 택한 것은 파시즘에 대한 항거였고, 사회주의에 끌렸으나 그쪽 진영에 몸담지 않았고 언제나 제3지대에서 표표히 살았다.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클래식’에 그의 궤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참회의 음악으로 표현되는 하르트만의 강렬한 교향곡들을 듣노라면 어째서 그가 말러, 브루크너의 대를 잇는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지, 어째서 그의 스승 안톤 베베른이나 동시대 인물 힌데미트, 쇼스타코비치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지 의아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제3번, 일명 ‘한탄의 노래’나 그중 유명한 제6번의 비장하고 암담한 도입부, 단악장으로 구성된 제2번 ‘아다지오’는 모두 심란한 마음, 고통스러운 영혼의 소용돌이를 표현해 준다.

하르트만은 그 음악의 성격상 인기 작곡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가 택한 ‘내적 망명’은 후대에 존경과 명예로 보상받은 면이 있다. 다행히 그 보상은 2차대전 종전 후 살아생전에 주어졌다. 이 세상이 불편한 내 여친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올까. 지나치게 정의롭고자 하고 지나치게 오연한 처신으로 원치 않는 내적 망명을 살아가는 그녀들에게 하르트만의 교향곡을 바친다. 부박한 몸의 세상을 뛰어넘는 정신의 고고한 영토가 아직 남아있길 기대하면서.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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