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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인수한 ‘최후의 천재 기술 CEO’

블룸버그뉴스
지난 6일, 신문기자 후배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선배, 아마존닷컴 제프 베저스(사진)가 워싱턴포스트(WP) 샀다는 뉴스 보셨죠? 오늘 종일 이 뉴스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왜 아니겠는가. 바로 그날 136년 전통의 세계적인 유력지 WP가 ‘온라인 콘텐트 유통의 제왕’으로 꼽히는 정보통신(IT) 기업인에게 통째로 넘어갔는데. 제프 베저스(49·Jeff Bezos).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이자 세계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업체, 동시에 세계 최대 전자책 전용기기 제조업체인 ‘아마존닷컴’의 창업자 겸 CEO다. 아마존닷컴의 지난해 매출은 610억 달러에 이른다. 경쟁사인 이베이의 두 배이고, 구글(502억 달러)보다 20% 더 많다. 그가 WP 인수에 쓴 2억5000만 달러는 개인 재산(280억 달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저널리즘·디지털 결합, 게임의 룰 바꿀 사람
인터넷 확산과 무료 콘텐트 때문에 종이신문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다지고 다듬어온 저널리즘의 가치가 붕괴되는 것까지 방기할 순 없다. 누군가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콘텐트와 미디어 비즈니스, 온라인 유통에 정통할 뿐 아니라 그 무대인 강력한 플랫폼까지 갖췄다면 금상첨화다. 베저스 이상의 후보를 찾기 어렵다. 1972년 WP 기자로서 ‘워터게이트’ 특종을 한 칼 번스타인이 “신기술 시대를 대표하는 새 경영진이 저널리즘적 가치와 디지털 잠재력을 결합해 뉴스 산업 전반을 이끌어갈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라 평한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물론 우려도 있다. 베저스가 미디어 산업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이를 무기로 타 언론사의 콘텐트 가격 하락을 유도해 낼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문사 사주로서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을 높여 아마존닷컴에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내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인터넷 시대 ‘게임의 룰’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천재성의 소유자란 점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베저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은퇴하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타계한 지금 ‘최후의 천재 기술 CEO’로 불린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명성이 덜한 이유는 아마존닷컴의 각종 서비스가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회사가 한국 시장을 공략한다면 유통·미디어업계는 물론 IT업계가 감당해야 할 충격파는 ‘아이폰 쇼크’에 버금갈 것이다. 경쟁력의 근원은 역시 베저스다. 아마존닷컴 성공기를 다룬 책 『원 클릭』의 저자 리처드 L 브랜트는 베저스가 ‘무하마드 알리의 자신감, 존 F 케네디의 열정, 토머스 에디슨의 두뇌를 겸비한’ 인물이라 평한다. 인재와 사업 파트너들을 설득하는 능력도 비상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베저스는 혼자 있길 좋아하는 괴짜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17살 때 그를 낳았다. 역시 10대였던 남편과는 베저스가 생후 18개월일 때 이혼했다. 어머니가 2년여 뒤 재혼한 남편은 쿠바 태생 이민자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그는 베저스를 친자로 입양해 정성껏 길렀다. 또한 베저스는 은퇴한 우주공학자 외할아버지의 텍사스 농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호기심과 자립심을 길렀다.

베저스는 뛰어난 집중력과 남다른 경쟁심을 가진 아이였다. 또한 독서광이어서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다. 과학·수학 분야의 영재로 선발돼 고교를 수석 졸업한 뒤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컴퓨터공학·전기공학을 전공한 뒤 첫 직장은 신생 통신 네트워크 기업 ‘피텔’이었다. 이후 10년간 그는 뱅커스 트러스트의 최연소 부사장이 되는 등 금융과 IT를 결합한 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10%만 더 잘하면 경쟁자보다 9배 성장”
원래 그의 목적은 창업이었다. 94년 인터넷의 폭발적 잠재력을 감지한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98년 한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80세가 되면 어떨까 상상했다. 그때 삶을 돌아보며 월스트리트에서 받던 보너스를 포기한 일을 후회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기억나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터넷이란 세계, 내 마음속 열정이 향하는 그 세계에 뛰어들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프린스턴대 출신이자 스스로 ‘나를 제3세계 감옥에서도 구해낼 수 있는 여성’이라 믿고 결혼한 아내 매켄지와 함께 아마존닷컴을 창업했다. 그가 초기 거래 아이템으로 책을 택한 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큰 시장, 표준화된 가격, 적은 배송비, 잘 구축된 데이터 베이스. 이후 아마존닷컴의 성장기는 고객가치 혁신의 교과서와 같다. 단 한 번의 클릭으로 대금 결제를 끝내게 한 ‘원 클릭’ 특허, 이젠 온라인 쇼핑몰의 기본이 된 추천·선물 기능이나 리뷰 쓰기, 배송기한 안내 서비스 같은 것들이 모두 아마존닷컴에서 처음 등장했다. 베저스는 평판 관리와 고객 수 늘리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또한 악착같이 돈을 아꼈다. 낡은 문짝으로 만든 책상을 부서질 때까지 쓰고 사무실 공간이 부족하면 주차장에서 일을 봤다. 선두자리를 지키기 위해 직원들을 독하게 몰아붙였다. 98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선 이런 말을 했다. “최대 경쟁자보다 9배 성장하길 원한다면 10%만 더 잘하면 된다.”

98년부턴 음반 거래를 시작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신의 한 수’는 전자책 취급과 킨들 개발이었다. 이제 아마존닷컴은 단순 상거래 사이트가 아니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콘텐트·미디어 플랫폼이다. 그것도 1억3700만 명의 알짜배기 유료 고객을 보유한. 더 놀라운 건 구글에 버금가는 첨단 IT기업이라는 점이다. 최적의 물류 시스템을 창출하려면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돌려야 한다. 그 비용을 줄이려 애쓴 끝에 최고 수준의 DB관리 기술을 갖게 됐다. 이를 사업화한 게 이 회사의 새 ‘캐시 카우’인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다.

『원 클릭』에 따르면 베저스의 대학 졸업앨범 사진 옆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우주는 우리에게 ‘노(NO)’라고 말한다. 그 답으로 우리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예스’라 외친다!’ SF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말이란다. 어린 시절 우주탐험가를 꿈꿨던 청년답게 패기 넘치는 인용구다. 미국 11위(포브스 평가) 거부가 된 베저스는 ‘블루 오리진’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우주선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서양에서 최초 달 착륙선인 아폴로 11호의 엔진을 건져 올리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됐다. 블루 오리진의 슬로건은 ‘한 걸음씩 용감하게’다. 아마존닷컴이 걸어온 길과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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