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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칼럼] 세제개편 공방 관전기

미국의 한 대학에선 해마다 가장 모순된 말을 지어낸 사람을 선정해 이른바 ‘이중화법상’을 시상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선정된 적도 있는데, 그 이유는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는 MX 핵미사일을 가리켜 ‘평화수호자’라고 명명한 데 있다.

 언어는 이렇게 뜻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말을 둘러대거나 모순된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고 풍자했다.  

 ‘오웰식’ 언어라고도 불리는 이중화법 표현이란 ‘불경기’나 ‘경기 후퇴’라는 말 대신 ‘경기 순환’ 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둘러대는 식이다. ‘실업’은 ‘미고용’으로, ‘증세’는 ‘세입 증대책’으로, ‘가격 인상’은 ‘가격 현실화’라는 단어로 치환된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례는 많다. ‘신용불량자’ 대신 ‘채무이행지체자’라든지, ‘방사능 폐기물’ 대신 ‘원전 수거물’, ‘산아제한’ 대신 ‘가족계획’이라 부르는 식이다.

 이중적 성격의 단어가 갖는 정치적 위력을 의식했는지 정치권에서는 ‘프레임’ 논쟁을 벌인다.

 프레임 개념을 소개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 선거에서 민주당이 번번이 공화당에 밀리는 이유로 상대방의 프레임에 말려들어가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화당 대통령인 조시 부시가 어느 날 ‘감세(tax cut)’ 주장을 교묘하게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애매한 말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흥분한 민주당 정치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세금구제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덩달아 그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금구제’란 표현은 세금이 ‘고통’이라는 은유를 탄생시키고, 그것을 없애주는 사람은 ‘구세주’이지만 그를 방해하는 자는 ‘악한’이란 도식을 성립시킨다. 민주당원들의 ‘세금구제’ 반대 주장은 결국 자신들을 악한으로 몰아가는 ‘제 발등 찍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1년 8월 서울시의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를 놓고 벌인 주민투표를 보자. 야당은 ‘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 편가르는 나쁜 투표 거부하자’라는 감성적인 슬로건을 내세웠다.

 하위 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급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은 야당 주장이 호응을 얻는 걸 보고 부랴부랴 ‘부자도 공짜 급식, 투표로 거부하자’라는 구호로 맞섰다. 결과는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여당의 패배였다.

 여야의 프레임이 맞서면서 논란의 핵심이던 학교급식의 범위나 취지에 대한 공방은 사라졌다. 대신 투표 거부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선악 논쟁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이달 초 세제개편 파문도 마찬가지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사실상의 증세안임에도 불구, “비과세 감면의 축소이지 증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쾌재를 부르며 ‘세금폭탄 결사반대’란 구호를 꺼내 들었다. ‘봉봉세(봉급쟁이를 봉으로 아는 세금)’란 기상천외한 표현까지 만들어냈다. 봉급생활자와 중산층의 반발에 놀란 현오석 경제팀과 새누리당은 해명과 함께 보완책을 만드느라 급급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복지예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였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논의는 사라진 채 세간의 여론은 ‘세금폭탄’ 프레임에 휩싸여 증세의 선악 논쟁을 벌이는 데 그쳤다. 여기에다 “거위 깃털 하나 뽑는 것”이라는 발언까지 더해져 민심은 싸늘하게 바뀌었다. 애초부터 ‘건전한 세수 확보’ ‘소득배분 개선’이라는 애매한 이중화법을 쓰지 말고 ‘증세 없이 복지 확대 없다’는 ‘돌직구’ 프레임을 내세웠어야 했다. 당당하게 ‘세금이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점을 강조했어야 했다.

 정부·여당으로선 정무 감각 결여나 홍보전략 실종 못지않게 장기적인 세정(稅政) 철학의 부재를 짚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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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