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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의리냐 생존이냐

#1 최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패션매장 개편을 놓고 화제가 됐다. 발단은 백화점 점포의 리모델링. 기존 거래처이던 여성복 브랜드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외국산 브랜드를 입점시키기로 한 게 문제가 됐다. 졸지에 터전을 잃은 국내 브랜드들은 반발했다. “함께 성장해 온 조강지처를 버렸다”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발상”이란 말 역시 빠지지 않았다. 외견상 해당 백화점은 비난받아 마땅한 듯했다. 리모델링을 명분으로 오랫동안 함께 성장해 온 협력업체들을 헌신짝처럼 버렸으니까.

 #2 B대형마트. 이 회사는 최근 협력업체들을 적기에 교체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통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매년 교체되는 협력업체는 5~10%선. 실적이나 제품력이 떨어지는 하위 5%와 거래를 중단하고, 제품력이 괜찮은 신규 업체와 거래를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엔 10%가 아니라 5%도 교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협력업체가 다 장사를 잘해서가 아니다. 거래가 끊길 기미가 보이면 청와대와 공정거래위 같은 힘센 기관에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하는 협력업체가 많아서란다.

 유통업계에선 요즘 상황을 ‘호수’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취급 상품과 거래업체가 강물처럼 교체되지 못한 채 호숫물처럼 고여 있는 상황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리모델링을 단행한 백화점 관계자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백화점에 안 가도 백화점 제품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서 매장 개편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절전 정책에 따르느라 매장 내부도 시원하지 않은 마당에, 판매 제품까지 차별화하지 못하면 누가 백화점을 찾겠느냐는 얘기다.

 유통업체뿐만이 아니다. 대기업들의 경우 협력업체와의 관계는 물론 노사관계에서도 경제민주화 논리에 부닥친다. 강자인 대기업이 약자인 협력업체와 노조를 무시하고 탄압한다는 게 그 골자다. 삼성·현대 같은 글로벌 기업조차 ‘강자 대 약자’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다.

 최근 일본에선 ‘블랙기업’이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블랙기업은 한마디로 악덕기업을 뜻한다. 자신의 정당한 능력으로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이상을 가져가는 못된 회사를 뜻한다. 피해자는 직원과 협력회사다. 정부의 역할은 건강한 시장경제를 위해 블랙기업을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블랙기업 규제 못지않게 시장 안에서 자연스러운 선택과 도태가 반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부 몫이다.

 합리적인 선택은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백화점이 인터넷 쇼핑몰에 밀린 것도 결국 비용·효용을 따진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결과다. 소비자들은 합리적으로 변하는데, 기업에만 상식 이상의 ‘의리’를 요구하는 건 가혹한 처사 아닐까.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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