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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서 전범 유골 빼돌려 … 12년 쉬쉬하다 묘역 조성





A급 전범 유골 묻힌 일본 우익의 성지 '순국칠사묘'를 가다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의 전범을 기리는 곳이라 하면 흔히 야스쿠니(靖國)신사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익세력의 본영(本營)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치(愛知)현 니시오(西尾)시 산가네(三ケ根)산 정상. 일본 혼슈(本州· 본토에 해당)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곳이다.





경비원 3명 취재진 따라붙어 감시



13일 오후 중앙일보·JTBC 취재진이 한국 언론으로는 최초로 이곳에 잠입해 취재를 시작하자 이 지역 번호판을 단 차량 1대가 갑자기 나타나 분위기를 살피더니 모습을 감췄다. 5분 후 7명의 전범의 유골을 묻어놓은 ‘순국칠사묘(殉國七士廟)’ 앞에서 취재를 하자 이번에는 조금 전 차량과 함께 순찰차량이 경고등을 켜며 함께 다가왔다. ‘수상한 침입자’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팔에 ‘순찰’이란 완장을 찬 채 다가오는 세 명의 경비원들은 묘역 관계자인지 우익단체 회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들은 10여 분간 행여 묘역에 무슨 이상이라도 있을 것을 우려한 듯 취재진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감시의 눈을 늦추지 않았다. 야스쿠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그곳에는 있었다.



 일본의 우익들이 성역으로 여기는 ‘순국칠사묘’가 어떻게 조성되고 최악의 전범이라 불리는 7명의 유골은 어떤 경위로 이곳으로 흘러오게 됐을까.



 태평양전쟁 종전 후 연합군은 도쿄 국제군사법정에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 등 25명을 A급 전범으로 지목했다. 이 중 16명은 종신형, 2명은 유기징역. 그리고 사형판결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진 게 이곳에 안치된 7명이다. 이들은 1948년 12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진 뒤 바로 화장됐다. 미국 측은 유골이 유가족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지만 화장장 직원을 매수한 전범 변호인의 손에 의해 유골 일부가 넘어갔다. 12년 가까이 다른 곳에 몰래 보존되던 유골은 60년 7월 산가네산의 등산도로 공사에 맞춰 유족들과 우익성향 재벌기업의 자금지원으로 묘역이 조성됨에 따라 이곳으로 이장됐다.



일 본토 중앙에 만든 ‘우익 본영’



풍광이 수려한 미카와(三河)만을 내다보는 절경의 위치다. 공교롭게도 혼슈 한가운데라 우익세력들은 “7명의 영웅이 일본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됐다”는 의미도 부여했다고 한다.



 묘지 이름을 ‘순국칠사묘’로 짓는 데는 지역주민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우익세력들은 이를 밀어붙였다. 나아가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로부터 휘호까지 얻어냈다. 그러자 뒤를 이어 수십 개의 전투부대 위령비가 들어섰다. ‘순국칠사묘’를 중심으로 하나의 ‘우익 성역’이 조성된 셈이다.



 7명의 ‘영웅’을 이장한 데 성공한 일본 우익세력들은 결코 이를 요란하게 밖에 알리지 않았다. 78년 10월 야스쿠니 신사가 이들 7명에 옥사한 7명을 더한 14명의 A급 전범을 합사(合祀)하면서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때도 이곳은 조용했다. 일부 우익 인터넷매체에만 조금씩 알려졌고 일부 지방지에 관련 행사가 소개됐을 뿐이었다. 이들은 은밀히 자신들끼리 제사를 지내는 한편 묘역을 영구화하기 위해 2010년에는 ‘순국칠사 봉찬(奉贊)회’란 사단법인까지 세웠다. 이 과정에 우익세력을 아우르는 ‘일본회의(日本會義)’의 지대한 후원이 있었다고 한다. 봉찬회의 안도 야스요시(安藤安義) 사무국장은 14일 “일본회의 회원들이 중심이 돼 봉찬회에 가입했고, 물질적·정신적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A급 전범이 쓴 ‘전범 찬양’ 비문도



우익의 성지가 된 이곳에는 A급 전범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전쟁을 미화하는 격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순국칠사묘’의 바로 옆 비석에는 마찬가지로 A급 전범이었던 오시마 히로시(大島浩) 전 주 독일대사의 한시가 새겨져 있었다. “증오스러운 구름이 스가모(7명이 사형된 구치소가 있던 동네이름)의 문을 닫고 북풍이 피비린내 나게 분다. (중략) 언제쯤 되면 이 7명의 충의(忠義)의 영혼을 편안히 해 줄 수 있을까.” 또 “후세에 정확한 역사가 쓰여질 그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다”(교토 야사카 신사 마쓰다이라 궁사), “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비행 제50전대 위령비문) 등의 글들이 있었다.



 ‘순국칠사묘’는 일본의 패전일인 8월15일에 대규모로 운집하는 야스쿠니 신사와는 다르다. 전쟁 당시의 쇼와(昭和) 히로히토(裕仁) 일왕(일본에선 천황)의 생일이자 일본인들이 ‘일본 독립일’로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공표일인 4월 29일이 이곳의 잔칫날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날을 즈음해 야스쿠니를 매년 참배하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사고 구조와 일치한다. 이날만 되면 ‘순국칠사묘’에는 전국에서 각종 우익단체 회원 수백 명이 몰려 온다고 한다.



*** 사진 설명



◆ 사진1 일본 아이치(愛知)현 산가네(三ケ根)산 정상에 위치한 ‘순국칠사묘’ 입구에 5m 높이의 비석이 우뚝 서 있다. 일반인의 유해를 매장하는 곳을 뜻하는 ‘무덤 묘(墓)’자가 아닌 제왕의 조상이나 훌륭한 인물을 모신 사당을 지칭하는 ‘사당 묘(廟)’자를 사용한 것이 눈길을 끈다.

◆ 사진2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지목돼 교수형에 처해진 7명의 유골을 봉안한 ‘순국칠사묘’. 비석 바로 밑에 이들의 유골을 담은 상자가 묻혀 있다. [김현기 특파원]

◆ 사진3 비석 휘호를 1960년 이 묘지 건립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썼다고 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다.

◆ 사진4 묘비 인근 안내 표석에는 이곳에 묻혀 있는 A급 전범 7명의 유골이 어떤 경위로 이곳에 묻히게 됐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이치현 산가네산=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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