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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모습 감춘 가면극 안 통해 … 맨 얼굴 정치인이 뜬다

공격적인 논쟁이 필요할 때는 빨간색 넥타이를 맨다. 닉슨과 TV 토론을 할 때의 케네디가 대표적이다. 차분한 지성을 보여줘야 할 때는 파란색 넥타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때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저소득층에 보내는 편지엔 ‘복지’라는 개념이, 돈 많은 후원자들한테 보내는 편지엔 ‘자유경제’란 단어가 많이 쓰인다.



2000년 이후 미 대선 분석 … 진정성 없으면 유권자 외면

 이처럼 옷차림이나 e메일 표현 하나에도 계산된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다. 어떠한 행동도 득표와 상관관계를 따지지 않는 게 없다. 이른바 정치공학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공학의 시대가 지나고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이 유리한 시대가 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환경에서 어설프게 포장된 모습은 바로 들통 나게 된 게 가장 큰 이유다. 엔터테인먼트에서부터 생활·정치에 이르기까지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대중의 취향 변화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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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슈 속내 숨긴 고어 … 가짜 느낌 줘



 워싱턴포스트 정치 전문기자인 멜린다 허넨버그는 지난달 하버드대 조앤 쇼렌스타인 언론·정치·공공정책센터에 게재한 논문에서 2000년 이후 미국 대선의 승리는 진짜 자신을 보여준 정치인의 승리였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 대선 후보로 나서 패했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2000·민주당), 존 케리 국무장관(2004·민주당), 존 매케인 애리조나 상원의원(2008·공화당),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2012·공화당)의 공통점은 ‘가짜(phony)’ 혹은 ‘진정성이 없다’는 딱지가 붙었던 후보들이란 것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점도 공통 분모다.



 2000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앨 고어는 대선 레이스 내내 자신의 진짜 열정을 숨겨야 했다. 고어는 일찍이 지구 환경 문제를 다룬 『위기의 지구(1992)』를 써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릴 정도로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환경은 대선에선 인기 없는 주제다. 당시 고어 측 참모들의 분석에 따르면 유권자의 관심사 중 13위에 불과했다. 당연히 대선토론회에서 환경을 언급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고어는 참모들이 정한 “해야 할 말”을 한다는 인상을 줬다.



 세 차례의 TV 토론에서 조지 W 부시는 낙태나 유고슬라비아 위기 문제 등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어는 디테일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이슈에 대한 이해력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대중의 반응은 “부시는 자연스러웠지만 고어의 말은 마치 녹음된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워싱턴 정가에서 고어의 내성적인 성격은 유명하다고 한다. 부통령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가장 어려워했다. 주어진 역할은 수행했지만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정치공학의 논리에 밀리지 않고 진짜 관심사에 대해 말할 기회를 가졌더라면 상황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격의 없는 부시, 실수 많아도 진솔함 어필



 반면 다양한 실언의 주인공이었던 부시는 사람 대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이건 진짜 부시의 모습”이라고 믿었다. 기대치가 낮았던 부시는 거리낌 없는 행동으로 고어를 따라 잡았다. “아기 코끼리 덤보와 피노키오의 싸움으로 비춰졌는데 나무 인형이 훨씬 불리한 캐릭터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게 허넨버그의 분석이다.



 4년 후 이 상황은 부시와 존 케리의 대결에서도 반복됐다. 부시의 캐릭터는 여전히 덤보였지만 케리는 ‘가짜’라는 치명적인 캐릭터를 얻었다. 당시 케리는 이라크 전쟁 예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다 ‘변덕쟁이(flip-flopp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참전 용사들의 질문에 자신의 진짜 생각을 말하지 못한 것이 대선 판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나는 사실 870억 달러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재건 예산안에 반대하기 전에는, 그 안에 찬성했다”는 멍청한(?) 말로 대권행 티켓을 날렸다. 부시 진영은 말 바꾸기 장면을 편집한 광고로 주도권을 잡았다. 4년 동안 인기가 바닥이었던 부시보다 “케리는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가 더욱 혹독하게 작용했다.



 케리의 더 큰 실책은 정치 전략가들의 조언에 따라 초기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톨릭 신도로서 낙태와 이혼에 대한 생각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도 의구심을 키웠다. 케리는 2006년 미국 페퍼딘대학 강연에서 당시의 실패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선거를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밝히고 진정한 내 모습을 그려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캐리커처로 그려낸다는 점을 배웠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당부했다.



 200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결을 벌인 존 매케인도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케이스다. 2000년 부시 대통령과 경선을 치른 경력이 있었던 매케인은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견뎌내지 못했다. 24시간 동안 트위터와 소형 카메라를 들이대며 따라붙는 기자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아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2000년 경선에서 그가 화두로 내세웠던 “공화당과 무당파 유권자의 직접 만남”도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데이터 홍수 … 서툰 포장 언젠가 벗겨져



 반면 오바마는 대선 캠페인의 가장 큰 위기를 솔직함으로 풀었다. 여기엔 2000년 케리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다는 분석이다. 오바마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로 재직하고 있는 제러미 라이트 목사의 부적절한 발언을 정면 돌파했다. 보좌진은 인종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것은 금기라고 말렸지만 오바마는 이를 단행했다.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첫 미국 여성 대선 후보’라는 타이틀을 불편해한 것과는 달리 오바마는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본질을 수용한 것이다.



 밋 롬니도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매력 포인트로 바꿀 기회를 날렸다. 미국 유권자들은 투표 당일까지 롬니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독실한 모르몬 집안에서 자란 롬니는 젊은 시절 선교사로 살면서 고난과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그의 사연은 정치공학 논리에 따라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기독교인 중에는 모르몬 교단을 이단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숨기고 선거에 나선 롬니는 결과적으로 실체가 불분명한 인물처럼 비춰졌다는 분석이다.



전영선 기자



영감 주고 솔직해 보인다 … 2008년 오바마가 매케인 이긴 이유



2008년 10월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대선에 앞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정치인의 진정성에 대한 유권자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응답자의 72%가 ‘매케인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 답했다. 오바마에 대해서는 52%만이 적합하다고 응답했다. ‘솔직해 보인다’는 항목에선 오바마(63%)가 매케인(61%)을 조금 앞섰다. ‘영감을 주는 후보인가’를 묻는 항목에선 오바마가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유권자의 71%가 오바마를 영감을 주는 후보로 평가했다. 반면 매케인은 37%에 그쳤다.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다’는 항목에서도 오바마(71%)가 매케인(54%)을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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