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삶의 향기] 무기여 영원하라!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나는 등산이나 운동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스포츠를 바하의 ‘파르티타’와 같은 수준으로 본다. 예전에는 이력서에다 수영은 한강을 건널 정도, 등산은 한반도 남쪽의 산들은 대부분 서너 번씩 올랐다고 적었다. 그뿐이 아니다. 유학 시절에는 백두산 두 배 높이의 로키 마운틴 정상까지 오른 적이 있다. 그해 여름, 지상은 35도의 불볕더위였지만 빙하로 덮여 있던 정상은 매서운 영하의 날씨였다. 슬리핑백에서 잠자던 그날 밤, 내가 들은 유일한 소리는 무서운 바람 소리와 내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뿐이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이달 하순 예정된 지리산 종주를 상상하니 혼자 즐겁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다. 박찬호가 전성기였던 1997년 어느 날, 콜로라도 쿠어스 필드 외야석에 앉아 현지인들 눈치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도 했고 요즈음도 류현진이 등판하는 밤은 예외 없이 날밤을 새운다. 꼬빡 밤을 새운 아침 식탁, 연신 하품을 해대는 나를 보고 아내는 ‘나이를 생각하라’며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잔소리를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 주는 애정의 표현 정도로 받아넘긴다. 이 같은 나의 야구 편력은 아득하다. 학창 시절, 당시 인기 있던 고교야구를 보기 위해 여름방학인데도 귀향하지 않고 하숙집을 전전하다 부모님께 끌려 내려간 기억도 있다. 어느 여름날에는 하숙집에서 쫓겨나와 동대문 구장 인근 여인숙에서 일주일간 죽치고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며 대륙간컵 야구도 보고 그랬다. 그땐 그랬다. 금빛으로 빛나는 젊은 시절이었으니까.



 골프는 야구 다음으로 좋아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골프 약속이 있는 밤은 언제나 설렌다. 이십대 시절, 미팅을 앞두고 설레던 그날들의 감정과 비슷하다. 유학 시절 퍼블릭 클럽에서 10달러 정도의 그린피를 지불하고 원 없이 라운드를 해봤으니 큰 미련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가 있는 새벽은 잠을 설친다. 나에게 골프는 룰(rule)과 어니스티(honesty)의 운동이다. 그래서 플레이에 앞서 나는 동반자들에게 “플레이는 즐겁게, 룰은 서릿발보다 더 엄정하게”라고 선언한다. 당연히 멀리건도 없고 어떤 경우도 룰대로 한다. 그런 내게 불평을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그럴 경우 나는 조지아주 오거스타 클럽 입구의 ‘보비 존스 로드’를 들먹인다. 일평생 정직하게 플레이해 온 전설적인 골퍼 보비 존스를 기린 도로명이기 때문이다.



 사실 골프는 내게 그리 사치스러운 운동이 아니다. 남들처럼 호사스럽게 치장하지도, 좋은 클럽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의 무기는 미국 브랜드로 20년이 훨씬 더 된 초창기 핑 클럽이다. 보통의 미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저 그런 클럽이지만 고급 클럽이 넘치는 한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동반자들이나 캐디 아가씨들은 무슨 진귀한 골동품이라도 보듯이 신기해 한다. 그러나 공언하건대 나는 이 클럽을 구입한 이래 단 한 번도 불만을 가진 적이 없다. 열두 개의 클럽을 마치 자식처럼 아끼며 사랑해 왔다. 행여 외면하면 섭섭해할까 봐 필드에 나가는 날에는 어떤 경우도 한 번씩은 기회를 준다. 백을 들여다보면 열두 개 클럽이 “주인님, 나를 뽑아 멋지게 휘두르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 내게 최근 엄청 속상한 일이 일어났다. 캐디 아가씨가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이 클럽은 세트를 몽땅 들고 고물상에 가봐야 1만원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친구가 놀리는 말에 뒤이어 나온 캐디 아가씨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1만원은커녕 쓰레기 수거비조로 오히려 5000원 정도를 드려야 가져갈 것”이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금쪽같은 클럽들이 호화 무기가 넘치는 한국에서 이다지도 천대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부글부글한다. 그렇다고 클럽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나와 청춘을 같이해 온 땀내 나는 클럽은 내가 운동을 할 여력이 남아 있는 한 내 곁을 지킬 것이 틀림없겠다. 남의 눈에는 고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빈티지급 보물이자 오래된 친구다. 서재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클럽들도 아마 내 맘을 알고 있음이 틀림없으리라. 무기여 영원하라!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