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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신입 직원을 소개합니다

지난 2007년 10월 한국 언론사 최초로 출범한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최근 2명의 중국인 직원을 영입했습니다. 중국 학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뒤 한국에서 유학한 왕저(王哲 28), 장이원(張亦雯 26) 두 명의 ‘한국통’들입니다. 다음은 두 신입 연구원들의 글입니다. 앞으로 많은 활약을 기대합니다.



#1. 한국에서 중국을 본다



장이원(張亦雯)







“중국이란 무엇인가.”



중국인으로서 한국을 공부하면서 종종 드는 의문이다. 게다가 중국에 대한 생각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크게 다르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중국 여행을 많이 다녀봤음에도 대부분의 80년대 후반에 출생한 젊은이처럼 사소한 것들밖에 모른다. 2006년 고등학교 막 졸업한 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중국 동북으로 떠났다. 전공인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인 친구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이 참으로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서로 다른 정보를 가진 우리는 같은 문제를 보아도 입장이 전혀 달라지곤 한다. 한동안 이 때문에 내가 아는 중국이 과연 이런 모습일까 당황하기도 했다. 아마 그 때부터 중국을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침 대학 4학년 때였다. 중국에서 열린 금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 파견 연수 기회를 잡았다.그 후 대학원에 진학하며 계속 공부하는 동안에 한국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중국에서 직접 느꼈던 경험으로 한국 친구들에게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을 설명해주면서 부지불식간 나도 그들의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10년 넘게 이른바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정작 중국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적고도 얕았다. 나는 내가 가진 정보량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이성적인 비판 의식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동안 정말 진지하게 따져보면 실망할 때도 많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한국에서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 주체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아직은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소극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가끔은 경제와 무관한 일도 많다. 숫자로 보는 경제를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중국적인 특색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 경제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데다 GDP도 30년 동안 계속해서 두 자리로 키웠는데, 왜 아직도 도시와 농촌 간에 소득격차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묻는다. 또 어떤 사람은 중국은 사회주의 조화사회라고 자칭하는데 티베트 분신 사건은 그럼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고 묻는다. 모든 문제가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답이 있더라고 유일한 답은 없다. 이런 고정적인 관념과 부딪히면서, 내 입장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게 된다. 이런 자기 비판 의식이 내 머리 속에 일종의 균형을 잡게 되고, 나로 하여금 균형을 잡기 위해 다양한 입장으로 중국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 입사했다. 좋은 기회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나한테도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더불어 한국인도 중국을 바라볼 때 보다 더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면 한다. 중국의 집권당도 긍정적으로 인정 받을만한 점이 많다. 처음에 농민기의 때부터 이제 제2의 경제주체로까지 성장한 것도 집권당 자체가 지속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나의 객관적인 이해를 통해서 한 중 양국에서 사는 개개인이 이성적인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머나 먼 길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라톤과 같다. 한국어 공부로 시작해서 이제 한국과 중국 사이에 하나의 언론인이 되어 나는 이 경기에 계속 뛸 것이다.



#2. 더 많은 ‘지한파’와 ‘중국통’을 키우자



왕저(王哲)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최근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 입사했다. 돌이켜보면 이미 한국에서 9년을 지냈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10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한 중 양국 관계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필자는 이런 발전을 실제로 체험했다. 불과 10년 전 만에도 한 중 양국 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인식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낮았다.



필자는 2003년 중국 산둥(山東)대학교 한국어과에 입학했다. 그때는 한 중 양국이 수교한 지 이미 11년이 지나던 때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중국 국립대학에서는 한국어학과 대신에 조선(북한)어 학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학과 이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필자의 합격통지서에 전공은 산둥대학교 외국어문학과 조선어전공으로 찍혀있었다. 어머님께서 이를 보시고는 크게 놀라 말씀하셨다. “북한으로 왜 가냐”라며 “조선(북한)어를 전공해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보셨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 당시 많은 중국인들, 특히 내륙지방 사람들은 북한과 한국이 서로 다른 나라고 조선(북한)어와 한국어도 서로 다른 언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는 2005년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땅을 처음 밟았다. 당시만해도 한국서 유학하는 중국 학생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교수님과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중국에 관한 질문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우스운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에는 고속도로가 있나?”, “중국에서도 TV 볼 수 있어?”, “중국 사람들도 매일 우유 마실 수 있어?” …… 지금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정말로 상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오해 받겠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중이 수교한 지가 13년이 되는 해인데 한국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1980년대에 멈추고 있었다.



다시 말해 2005년만 해도 한 중 양국의 국민들은 가까운 이웃나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불과 몇 년 만에 한 중 양국의 교류가 급속히 늘어났고 서로에 대한 이해 수준 역시 크게 증가했다. 우리 어머님도 이제 한류 드라마를 즐기시면서 가끔 한국인 친구를 볼 때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도 하신다. 산둥대학교에서도 조선어학과 대신에 한국어학과를 만들고 한국학연구소와 한국학대학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필자보다 중국을 더 잘 아는 ‘중국통(中國通)’도 주변에 점점 많이 생겼다. 중앙일보는 언론 매체로는 처음으로 중국의 중요성에 주목해 중국연구소까지 만들었다. 이런 변화들은 바로 양국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좋은 증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국 교류는 여전히 경제가 중심이다. 양국의 인문교류, 문화적 교류는 여전히 부족하다. 양국 관계를 더욱 공고히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인문유대’가 깊어져야 한다. 인문유대를 위해서는 양국 문화를 모두 잘 이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지한파(知韓派)’와 ‘중국통’이 더 많이 필요하다.



필자의 꿈은 ‘지한파’가 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중국을 알리고 중국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려 양국 간에 심도 있는 교류를 촉진하는데 작은 힘이나마 다하고 싶다. 이는 필자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서 근무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필자와 같은 ‘지한파’가, 한국에서는 ‘중국통’이 많아지고 있다. 미래 양국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더 공고히 발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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