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북한 맥주 맛의 비결? 전력난과 도로난 두 비극이 만든 우연





북한 맥주 기행 다녀온 미국인 조시 토머스























미국인 맥주 애호가 조시 토머스(26)에게 평양 여행은 오랜 꿈이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맥주. 그래픽 디자이너인 그에게 인생의 낙은 맥주다. 집에서 자기만의 맥주를 빚고, 독특한 맥주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여행 가방을 싼다. 지난 3월 30일 평양행 고려항공을 탄 것도 북한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4월 6일까지 8일간 그는 평양 시내 대동강맥주양조장, 낙원백화점ㆍ양각도국제호텔의 생맥주 양조장 등을 돌았다. 자신만의 맞춤 일정을 북한 당국에 제시해 협상 끝에 허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여정이었다. 한국인 여자친구 덕에 OBㆍ하이트 등 한국 맥주에도 익숙한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한반도의 맥주 문화를 섭렵한 셈이다. 그의 북한 맥주 기행은 최근 잡지 와이어드(Wired) 영국판과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에 소개되며 이목을 끌었다.



미국을 떠나 홍콩에 살고 있다는 그를 수소문해 전화와 e메일로 물었다. 지난해 말 “북한 대동강맥주보다 못한 한국 맥주”라는 기사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같은 생각인지. 그의 대답은 “예스”였다. “북한 맥주가 풍미는 물론 다양성에서 한국의 일반 맥주를 압도한다”고 단언했다.



왜 그럴까. 토머스는 북한 맥주 맛의 비결을 “비극이 만든 우연”이라고 했다. 오랜 경제난으로 인한 전력 부족과 열악한 도로망으로 인한 유통망 구축 실패가 오히려 북한 맥주만의 깊은 맛을 빚었다는 것이다.



맥주는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로 나뉜다. 라거는 효모를 가라앉혀 섭씨 1~3도의 냉장 상태에서 오랜 기간 발효시키는 하면발효 방식을 쓴다. 이 과정에서 효모가 당분을 거의 다 분해시켜 깔끔한 맛이 나지만 풍미는 떨어진다. 한국 맥주는 이 라거 타입이다.



반면 에일은 22도가량의 높은 온도에서 2~3주간만 짧게 발효하며 여과ㆍ살균 과정을 거치지 않아 유통기한은 짧은 대신 풍부한 맛을 낸다. 밤이면 전기 공급이 끊기고 경제난에다 도로망 구축이 덜 된 북한에서 한국식 라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자연히 에일을 소량 생산ㆍ소비하는 체제를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 브루마스터(brew masterㆍ양조기술자)들의 실험정신이 더해져 다양한 에일 맥주가 탄생했다. 토머스는 “환경적 요인을 극복하며 다양한 맥주를 만들려고 하는 장인정신이 엿보였다”고 평했다.



대동강맥주양조장만 해도 ‘대동강 1번’에서부터 ‘대동강 7번’까지 다양한 맥주를 구비해놓고 있었다. 초콜릿 맛이 감도는 흑맥주 ‘대동강 3번’에서부터 묵직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보인 4번도 인상 깊었다. 낙원백화점 꼭대기 층 ‘생맥줏집’의 흑맥주는 더 진한 맛을 냈다고 그는 평했다.



양각도 국제 호텔 ‘스팀비어’가 최고의 맛

토머스가 꼽은 최고의 맥주는 양각도국제호텔에서 맛본 맥주였다. 가격도 한 잔당 5달러(약 5600원)로 다른 곳(평균 3달러)보다 호기로웠던 편. 이곳의 맥주가 ‘스팀 비어(steam beer)’라는 미국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점도 그의 흥미를 끌었다. 스팀 비어는 19세기 미국 골드 러시 시절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독일계가 라거를 그리워하며 만든 맥주다. 냉장이며 발효 시스템이 잘 안 돼 있다 보니 상온에서 에일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묵직하고 깊은 풍미를 낸다. 토머스는 “스팀 비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맥주 제조법이다. 미국에서도 지금 스팀 비어를 내놓는 곳은 ‘앵커 스팀(Anchor Steam)’ 브랜드가 유일한데, 평양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모든 맥주가 맛있진 않았다. 어떤 맥주들은 저장 탱크를 잘 청소하지 않아 텁텁한 맛이 났다. 경제난의 그늘도 짙었다. 경제 제재로 인해 원자재 수입이 안 돼 심심한 맛의 맥주도 있었다. 시설 가동도 어려워 보였다. 그가 최고로 꼽은 양각도호텔에서도 25갤런(약 94L)들이 저장 탱크가 8개 있었지만 가동 중인 건 하나뿐이었다.



맥주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을 남긴 건 사람들이었다. 양각도호텔에서 자신을 브루 마스터라고 소개한 한 젊은 여성은 그에게 “미국 맥주와 비교해보니 어떠냐”부터 “우리가 어떤 점을 개선하면 더 좋은 맥주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질문 공세를 폈다. 토머스가 “북한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당신일 것”이라고 얘기하자 그는 수줍게 활짝 웃었다. 토머스가 “맥주 기행 최고의 하이라이트”라고 꼽은 순간이다.



가이드로 그의 여정을 함께했던 김일성대학 출신의 ‘미스 유’ 역시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김일성 배지를 제외하고는 서울의 여느 젊은 여성과 다를 바 없었다”고 했다. 토머스는 이들이 “한국 매체에 자세히 소개되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신상 공개는 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곧 북한 다른 지역도 여행할 계획이다. 다음 여정은 나선 지역으로 구상 중이다. “여자친구의 고향인 한국에서도 다양한 에일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전수진 기자·사진 조시 토머스, 조셉 페리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