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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위기에 전패 … 시골 중학 야구부의 ‘역전만루홈런

신종세 감독이 8일 오후 포항 곡강야구장에서 선수들의 스윙 연습을 지도하고 있다. 이날 포항시의 낮 기온은 섭씨 38도를 넘었다.
“살아있네! 잘 던진다. 그렇지!”



창단 2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양산 원동중 신종세 감독
패배 더 익숙한 아이들에게 "잘한다~" 자신감 불어넣어
부산 대동중 땐 이대호 키워

 8일 오후 포항 흥해읍 곡강야구장. 영화 ‘범죄와의 전쟁’ 하정우의 대사를 통해 유행한 말투였다. 이 날 낮기온은 섭씨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기록적인 더위였지만 ‘부산 사나이’ 신종세(57) 양산 원동중 야구부 감독은 아랑곳않고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선수들도 더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진지하게 연습에 열중했다.



 원동중 야구부는 지난 4일 제43회 대통령기 중학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 폐교 위기의 시골학교 야구부가 창단 만2년 만에 해낸 전국대회 우승. ‘시골학교의 기적’으로 불릴 만했다. KBO총재배 전국중학야구대회 출전을 위해 포항에서 훈련 중인 신종세 감독을 8일 만났다.



 “처음 대회 출전했을 땐 모든 경기에서 졌습니다. 전패였죠. 올해 2월에 경주에서 열린 경주시장배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둔 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스스로 연습을 해요. 대통령기 우승도 그 덕에 가능했던 겁니다. 선수들이 다 잘 따라준 덕분입니다.”



 신 감독은 이 학교에 지난해 2월 부임했다. 불과 1년6개월 만에 대회 전패한 팀을 전국대회 우승팀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학교가 워낙 산 속에 위치한 탓에 2011년 야구부가 창단될 때는 “이거 얼마나 가겠나”라며 반신반의한 야구 관계자들도 많았단다.



 신 감독은 짧은 기간내 성과를 낸 비결에 대해 “죽기살기로 한 연습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기본기와 체력훈련을 독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도 해야 했다”며 “마음이 아프지만 한계를 극복하려면 어쩔 수 없었는데, 다행히 요즘은 아이들이 알아서 더 열심히 해준다”며 웃었다.



 “사실 대회에 나가 설움을 당하면서 아이들도 자신감을 많이 잃었습니다. 처음엔 운동하기 싫어 꾀부리고 도망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죠. 계속 지는 팀이었으니까. 힘들어도 참고 견디도록 하는 것도 지도자의 역할이죠. 지금은 이기는 게임을 하기 시작하고, 자신감이 붙으니까 아이들이 더 연습을 하려합니다.”



 훈련시간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이지만, 11시·12시까지 스스로 연습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그러니 감독이나 코치도 남아서 아이들 봐줄 수밖에요.”



 원동중 야구부가 창단부터 순탄한 길을 걸어온 건 아니었다. 2011년 야구부 창단 당시 감독은 신 감독의 아들 신민기(33·전 한화이글스 선수)씨였다. 하지만 초보감독이다 보니 학부모들과 문제가 생겨 감독직에서 1년 만에 물러났다. 신 감독은 학부모들과 학교 측 부탁으로 급하게 투입된 ‘소방수’였다. 28년차 지도자답게 그는 소방수 역할을 잡음 없이 해냈다.



 그는 모교인 부산 대동중에서 20년 동안 감독으로 있었다. 그때 거쳐간 제자들 가운데 이대호(오릭스), 장원준(경찰 야구단), 채태인(삼성) 같은 프로 선수들이 꽤 있다. “이대호는 그때도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컸어요. 그때부터 스윙이 너무 부드러웠습니다. 할머니가 채소 장사를 하면서 이대호를 키웠어요. 야구할 형편이 안 됐죠. 제가 억지로 데리고 와서 1년6개월간 우리집에서 먹이고 재웠습니다.”



 3년 전만 해도 원동중 전교생은 20명이었다. 야구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현재는 51명. 야구부 덕분에 폐교위기를 벗어났다. 요즘은 경기도나 충청도에서 입학 가능여부를 묻기 위해 신 감독에게 전화를 해오는 학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야구를 하려고 부산이나 대구로 뿔뿔이 흩어졌던 양산 지역 청소년들이 원동중 야구부로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은퇴 후 조용히 쉬기 위해 양산에 거처를 마련한 건데…. 야구가 너무 좋아서 이 일을 쉽게 손에서 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야구와 관계된 일에 내가 필요하다면 몸이 허락하는 동안은 무슨 일이든 할 생각입니다. 특히 우리 청소년들을 위한 일이라면요.”



포항=글·사진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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