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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주국열차

정선구
경제부장
어차피 시작은 꼬리 칸이다. 탑승자 수는 2만3000명. 이 엄청난 인원이 맨 앞 칸을 장악하기 위해 한 칸 한 칸 전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에서 메이슨 총리(배우 틸다 스윈턴)가 이렇게 외치며 방어했듯이. “제자리를 지켜! 분수를 알아야지. 너희들은 영원히 꼬리 칸에 머무는 게 운명이야!”



 기차 이름은 ‘주국열차’.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결합한 KB금융 열차다. 처음은 그런 대로 좋았다. 1998년 외환위기로 장기신용은행과 합병한 국민은행이 2001년 주택은행과 뭉쳤을 때 통합은행장으로 김정태 주택은행장(하나금융 김정태 회장과 동명이인)이 선출됐다. 금융감독원 출신 경쟁자를 물리친 것이다. 물론 그 역시 정통 은행원은 아니었다. 증권사 대표를 거친 증권인이다. 그럼에도 시장 밑바닥을 훑은 게 강점이 됐다. 두 은행 외국인 대주주들도 그를 선택했다.



 이후 열차는 꼬박 12년을 달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꼬리 칸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하지 못했다. 지도자 선임 때마다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다. 김정태 행장 후임으로 강정원 행장이 나왔지만 그는 씨티은행 출신이었다. 민병덕 부행장이 2010년 국민은행 말단 행원으로 첫 은행장에 임명되기는 했으나 그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어윤대 KB지주 회장 아래 2인자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꼬리 칸 사람들은 민 행장 취임에 쾌재를 불렀다. “우리도 언젠가는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런데 설국열차 최고지도자 윌포드(에드 해리스)의 노회함을 간과했던 걸까. 반란군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번스)가 기차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함께 맨 앞 칸 진입에 성공, 윌포드와 맞닥뜨렸을 때 윌포드는 말한다. “그동안 주기적으로 발발한 꼬리 칸 반란은 내가 일부러 부추긴 거야. 그래야 열차 안 생태계가 유지되지.” 결국 지난달 지주 회장을 노린 민 행장의 포부도 좌절됐고, 꼬리 칸 사람들은 그나마 2인자인 은행장 자리마저 놓쳤다.



 사실 신임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을 탓할 것도 없다. 관료 출신 임 회장은 올봄 내부 자료가 미국 기관투자가 자문기관에 유출됐을 때 혼자 전전긍긍하며 해결한 공이 크다. 금융연구원에서 일했던 이 행장은 KB에 2년 전에야 합류했지만 지금 은행에서 매우 중요하게 치는 리스크 관리 전문가다. 그럼에도 꼬리 칸 사람들은 이렇게 탄식한다. “내부 출신 회장 열망이 또 무너졌다. 은행장도 배출하지 못한 상실감이 더욱 크다.” 새 지도부의 전격 인사로 30년 이상 근무한 부사장·부행장들도 줄줄이 사표를 썼다. 3년 뒤를 노려볼 만한 싹들이 근본적으로 잘라진 셈이다. 30년 이상 경력자 두 명이 새로 진입했지만 아직은 새내기 부행장들일 뿐이다.



 혹여 꼬리 칸의 자충수는 없을까. 이들은 1채널(국민은행), 2채널(주택은행)이라고 불린다. 단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지리멸렬된 것은 아닌지. 장기신용은행 출신은 아예 이런 별칭도 없다. 1-1 채널이라고 불러야 하나. 다행인 것은 각자가 어느 채널인지는 알지만 2만3000명 중 비율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합병 후 직원코드를 통합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기신용은행 출신은 숫자가 적어서 파악이 된다. 합병 전 1040명, 합병 당시 770명, 현재 220명. 옛날 장기신용은행에 근무한다고 하면 대단하게 쳐줬다. 소매금융이 아니라 기업금융 전문가여서다. 그렇지만 합병 후 국민·주택 출신들 위세에 밀려 계속 위축되는 모양새다. 그래도 이번 17개 본부장 조직 개편에서 당당히 한 명이 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앞으로도 영원히 달려야 할 주국열차. 꼬리 칸 2만3000명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낙하산 논란이 불거져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기획 반란’이 벌어져도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1채널이니 2채널이니 하는 아웅다웅도 세월이 흐르면 KB채널로 통일되며 언젠가는 맨 앞 칸 장악에 성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낙하산 논란은 종지부를 찍을 테고, 내부 출신이든 외부 영입이든 간에 유능한 CEO가 번갈아 윌포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정선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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