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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태국보다 못한 한국

이철호
논설위원
좌파와 우파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대선 전 공부모임을 한 인사들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4대 강 사업을 모두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개성공단 협상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렵다.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도 미리 “개성공단이 잘되면 DMZ공원도 잘될 것”이라 꼬리를 내렸다.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보다 DMZ평화공원과 남북횡단철도에 관심이 많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4대 강 녹조를 그대로 둬라”라고 지시했다. 국토부와도 옥신각신 중이다. “부처 간 장벽을 없애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무색할 정도다. 내친김에 윤 장관은 “사회적 합의를 거치면 보(洑)를 철거할 수 있다”며 치고 나갔다. 청와대와 교감 없이 나오기 힘든 수위다. 대선 캠프 환경특보 출신으로 믿는 구석이 있다고 봐야 한다.



 “설마 22조원짜리 보를 허물랴”는 예단은 순진한 생각이다. 감사원의 “대운하 추진” 발표와 담합·비자금 수사는 첫 포문에 불과하다. 윤 장관이 제동을 건 만큼 댐 방류나 황토 살포를 통한 녹조 제거는 기대하기 어렵다. 4대 강 운명이 무더위와 땡볕에 달린 셈이다. 벌써 ‘녹조라테’의 신조어부터 심상치 않다. 언제 4대 강이 제2의 광우병·천안함 신세가 될지 모른다. 친박진영과 민주당이 손잡으면 보를 허무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이쯤에서 중3 과학 교과서를 펼쳐 보자. 녹조가 “너무 더워 발생했다”는 이명박정부 측 주장은 엉터리다. 그렇다면 왜 열대지방 강들은 생생할까. “보 때문에 그렇다”는 반대쪽 논리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일본의 마슈호는 고여 있는 물이다. 기온·햇볕·유속은 부분적 요인일 뿐이다. 교과서는 녹조의 근본 원인을 우리 탓으로 가르치고 있다. 물속의 플랑크톤이 생활폐수에 녹은 세제·비누·비료의 ‘인’과 질소를 먹으며 창궐하기 때문이다. 바다의 적조도 똑같다. 장마 때 육지에서 씻겨 내려간 인·질소가 문제다.



 역사를 따져봐도 올해의 녹조가 최악은 아니다. 가뭄이 든 1994년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그해 녹조로 한강에는 수영이 금지됐다. 이듬해인 95년엔 끔찍한 적조가 발생했다. 두 개의 태풍이 잇따라 덮쳐 남해안에 49일간 적조가 이어졌다. 이처럼 녹조·적조는 부영양화와 변화무쌍한 날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고 교과서에 적혀 있다. 보가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시간을 두고 따져봐야 한다.



 굳이 4대 강 사업을 숭배할 이유는 없다. 편법과 꼼수가 난무했고, 한꺼번에 거칠게 밀어붙인 게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부실공사는 파헤치고, 혈세를 축낸 담합은 토해 내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섣불리 4대 강을 평가할 일은 아니다. 여름에 녹조 때문에 보를 허물고, 겨울 갈수기에 물이 없다고 다시 보를 쌓을 수는 없다. 우리는 김대중정부 이후 너무 오래 다목적 댐 건설에 손을 놓았다. 그나마 4대 강 사업이 유량 확보와 홍수 대항력을 높인 점은 인정해야 한다.



 4대 강 사업은 2년 전 홍수를 당한 태국에 수출됐다. 6조원짜리 프로젝트다. 연초에 환경단체들이 태국에 몰려가 반대시위를 벌였다. 그때 탁신 전 총리가 차오프라야강을 굽어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급하다. 큰 강을 수술하면 10년, 50년이 지난 뒤에 평가해도 늦지 않다.” 참고로, 태국에는 ‘연꽃만 따면 잔잔한 물에 흙탕물이 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조용히 뜻한 바를 이루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다.



 이명박정부의 4대 강 집착은 너무 요란했다. 사생아 스캔들이 불거진 환경부 장관을 3년 넘게 고집했다.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4대 강은 저주의 대상으로 소란해졌다. 윤 환경부 장관이 마치 녹조 창궐을 기원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친다면, 필자만의 착각일까. 이런 우리가 태국보다 낫다고 우길 수 있을까.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제라도 4대 강과 정중한 거리를 두고 가만히 그 변화를 지켜봤으면 한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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