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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를 몽땅 빼면 사실만 남지

하퍼 리 (Harper Lee, 1926~)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출신으로 항공사에서 일하다 친구들이 1년치 급여를 지원해 줘 글쓰기에 전념했다. 처녀작 『앵무새 죽이기』로 일약 대중적작가로 성공하며 퓰리처상까지 거머쥐었으나 그 뒤 다른 작품은 쓰지 않고 평생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로버트 풀검의 수필집 제목처럼 우리는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 시절에 다 배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을 잘 떠올리지 못하고 때로는 일부러 망각하기도 하고, 가끔은 아예 모른 척한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41>『앵무새 죽이기』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스카웃은 초등학교 등교 첫날부터 담임선생님한테 벌을 받는다. 그런 딸에게 아빠 애티커스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간단한 요령 하나를 가르쳐준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그 삶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지.”

틀림없이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이렇게 알고는 있지만 살아가다 보면 자꾸만 잊어 버리고 외면해 버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애티커스의 집에서 일하는 캘퍼니아 아줌마는 왜 흑인 말투를 쓰느냐는 스카웃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해준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말을 올바로 한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어. 그들은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

이웃집 모디 아줌마도 중요한 걸 알려준다.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쳐다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

애티커스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변호사지만 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그가 혼자서 터득한 이 가르침은 나에게 특히 와 닿는다.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

『앵무새 죽이기』의 큰 줄거리는 대공황 시기 앨라배마주의 한 마을에서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 흑인을 애티커스가 변론하는 것이지만 법정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분신인 스카웃이 정신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빠를 깜둥이 애인(nigger-lover)이라고 놀려대자 스카웃은 아빠에게 왜 흑인을 변호하느냐고 묻는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지역을 대표해 주 의회에 나갈 수 없고, 너랑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재판에서 이길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애티커스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 버릴 까닭은 없어. 모든 변호사는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게 마련이란다. 내겐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 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정말로 중요한 건 법도 아니고 남들의 의견도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의 양심이다. 애티커스는 스카웃과 오빠 젬에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앵무새는 인간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그저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를 뿐인데, 이런 앵무새를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흑인 문제 같은 편견이 개입되면 이성을 가진 사람들마저 갑자기 미친 것처럼 날뛰고, 그래서 톰 로빈슨처럼 이 세상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죄 없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혹은 부주의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소설보다 먼저 영화로 봤는데 애티커스 역을 맡은 그레고리 펙(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의 굵은 목소리와 진지한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린 딸에게 어쩌면 이토록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스카웃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자기네가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이 장면처럼 말이다.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줘야 돼.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어느새 아홉 살이 된 스카웃은 문득 자신이 부쩍 나이가 든 것 같다고 느낀다. “집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나는 오빠랑 내가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수학을 빼놓고는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별로 많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딸에게 아빠는 마지막 가르침을 들려준다. “스카웃, 궁극적으로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

이런 매력적인 아버지를 둔 딸은 금세 철이 들겠지만 사실 누구나 다 이렇게 멋진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유치원 시절 배웠던 것만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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