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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물질 놓고 “산업부 소관” “환경부 소관” 핑퐁질

#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은 지난해 8월 ‘공공외교의 활성화 및 증진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예술·원조 등을 매개로 외국인·외국단체와 협력하는 ‘공공외교’가 부처별로 분산돼 있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외교부가 맡게 하자는 내용이다. 그러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즉각 반발했다. 외교부가 ‘공공외교’라고 부르는 ‘국제문화교류’를 문체부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같은 당 길정우 의원이 ‘국제문화교류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문체부가 3년마다 국제문화교류진흥 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이에 일각에선 “문체부가 부탁해 법을 발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길 의원은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사안으로 공청회를 열어 문체부와 외교부 입장을 다 들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법안 처리는 답보상태다.

국회의원들이 겪은 부처 칸막이

#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국립대학 치과병원설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지난해 8월 발의했다. 적극적으로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있는 민간 대형병원처럼 서울대 및 국립대 치과병원도 후원금 및 기부금을 거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이다. 국립대 병원을 관할하는 교육부는 즉각 찬성 의사를 밝혔다. 반면에 안전행정부는 “기부금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다. 김 의원은 “기부금 관리는 안행부 소관인데 이걸 한번 터주면 권한을 뺏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현재 법사위 소위에 계류돼 있다. 김 의원은 “안행부 관리들이 법사위에 자주 가서 ‘법안을 막아 달라’고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은 공항 입국장에 면세점을 도입하는 골자의 관세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발의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4%가 설치에 찬성한 데다 2003년부터 여야 의원들이 다섯 차례나 비슷한 법안을 낸 바 있어 통과될 것으로 낙관했다. 지난 6월 대정부 질문에선 정홍원 총리로부터 “도입 주장에 수긍할 점이 많아 부처 간에 협의하겠다”는 답변도 들었다. 면세점 설치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인천공항공사의 상위기관인 국토교통부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지난달 말 관세청 관계자 A씨의 방문을 받았다. A씨는 “입국장에 면세점을 두면 혼잡이 가중되고 세관 단속이 어려워진다”는 관세청의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안 의원이 “CCTV를 설치하고 보안요원을 배치하면 해소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자 A씨는 별 반박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7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입국장 면세점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안 의원은 “국토교통부와 관세청 간 충돌에서 기재부 장관이 산하기관인 관세청 입장을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부처 칸막이를 없애라’고 해도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별 소용이 없다”고 한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타가 이어지면서 요즘 관가에선 ‘부처 이기주의와 칸막이 제거’가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체감하는 ‘부처 칸막이’ 실태는 더 심각하다. 각종 법안마다 부처 간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보니 자신들의 입지를 좁히는 입법을 막으려는 부처들의 로비가 워낙 치열하기 때문이다.

읍소 안 통하면 법안 통과 발목 잡기도
부처 역할을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에게는 온갖 채널로 읍소가 이어진다. 그러다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다른 의원을 설득해 법안에 반대 입장을 취하게 하거나,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한 ‘청부 입법’을 부탁한다. 그러다 보면 해당 상임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법안 통과가 지연되기 일쑤다.

국회 상임위별로 소관 부처의 입장을 반영한 법안을 통과시키다 보니 국회 법사위에 각각 상반된 법안이 올라오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법안 처리는 늦어진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의원들이 자기 상임위 소관이 아닌 부처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법안이 법사위로 넘어와 조율에 나서면 입장이 덜 반영된 부처와 상임위가 ‘법사위가 월권을 행사한다’고 항의한다”고 토로했다. 법안 자체가 좌초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18대 국회 때 법사위원장을 지낸 우윤근 의원은 “부처 이기주의처럼 의원들에게도 상임위 이기주의가 있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해 결국 법안이 보류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의원들이 겪은 부처 이기주의 사례는 다양하다. 다음은 경험담.

“아토피를 일으키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화학 가정용품의 원료물질을 수거해 조사하는 법안을 구상했다. 관련 부처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니 환경부는 ‘제품은 산업부 소관’이라 하고, 산업부는 ‘원천 화학물질은 환경부 소관’이라 하며 서로 핑퐁을 치더라. 결국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에게 조정을 요청해야 했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

“국적 크루즈를 발전시키기 위해 선상 카지노를 허가하는 크루즈산업 육성 법안을 냈다. 해양수산부는 적극적이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카지노 설치에 대한 여론을 의식해 반대했다. 공청회를 열었지만 문체부 과장은 ‘도와달라’고만 하고, 해수부 쪽은 ‘부처 간 논의를 하다 보면 바뀔 수 있는 만큼 협상 여지가 생기도록 일단 의원 입법을 극단적으로 해달라’고 하더라.”(새누리당 김재원 의원)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지자체가 고발 요청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을 넣었다. 공정위는 자기 권한이 줄어드는 거라고 생각해 ‘감시과에 인원이 부족하다’ ‘관련 데이터가 없어서 토론을 할 수 없다’며 논의를 어렵게 하더라.”(민주당 민병두 의원)

“국토개발사업을 하기 전에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부적격 판결이 나면 국토교통부에서 사업을 재협의하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어차피 국토기본법에 따라 전략환경평가를 거치는데 중복 평가로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국토부 직원들은 국토교통위원회 의원들을 찾아가 ‘문제가 있다는 결의안을 채택해 달라’고 했다. 법안이 환노위를 통과해도 국토부가 법사위원들을 설득해 법안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크다.”(정의당 심상정 의원)

국장급 他부처 이동 제도화해야
부처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배경엔 예산도 있다.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은 “예산이 필요할수록 기재부가 난색을 표한다”고 말했다. 현재 계류돼 있는 영·유아보육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복지위에선 무상보육비 국고보조율을 50%에서 70%로 높이는 방안을 통과시켰지만 예산편성권을 가진 기재부의 반대로 난항에 부닥친 상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론 우선 총리실의 권한 강화가 거론된다. 전영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조언이다. “일상적 정책 조정은 총리실이 해야 하는데 지금 그게 잘 안 되니 총리실이 청와대만 바라보고, 결국 청와대가 개입해 청와대 권력이 비대해진다. 현재 총리실엔 예산권과 인사권이 없는 데다 각 부처들이 입장을 굽히지 않을 때 강제할 수단이 마땅찮다. 총리의 정책조정권한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전문성 있는 인력을 배치하는 게 현실적 방법이다.”

당정 간 조정 능력 강화와 조율기구 구성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1차적으로는 국회 원내대표단이 상임위원회 간, 정부 부처 간 입장을 조정해야 한다”며 “미국에선 상임위 간 입장 차가 크면 합동위원회인 ‘조인트 커미티(joint committee)’를 열어 조정한다”고 조언했다. 조성한(행정학) 중앙대 교수도 “일본에선 부처끼리 협력이 잘 안 되면 관련 부처들 간에 간사 부처를 둬서 조율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의식을 바꾸려면 현행 인사시스템을 대폭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공무원들이 다양한 부처에서 일해보도록 자주 이동시켜야 부처 이기주의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선 국장급 관료들을 다른 부처에 순환 배치시키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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