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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독극물 방류 밝혀 영화 ‘괴물’ 모티브 제공

서울 노원에코센터에서 만난 이유진 위원장은 “어린시절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뛰놀며 접했던 산과 들·강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2000년 7월 11일. 녹색연합의 환경오염 조사담당이던 당시 25세의 이유진씨는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갔다. 부대를 구경한다는 명목 아래.

파워 차세대 <36> 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미군 측 안내를 받아 들어갔지만 진짜 목적은 ‘미군이 한강에 유해물질을 몰래 방류해 왔다’는 제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인의 도움으로 기지 내 영안소에서 무단 방류의 증거를 찾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사진과 제보를 바탕으로 녹색연합은 그해 7월 13일 ‘미군이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물질 포름알데히드를 아무런 정화처리 없이 하수구로 흘려보냈다’고 발표했다. 포름알데히드는 시체 부패 방지나 소독·살균에 쓰이는 독성물질이다. 정부는 미군 측에 독극물 방류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미군은 다음날 방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얼마 후 봉준호 감독이 이유진씨를 찾아왔다. 당시 영안소 내부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했다. 그는 봉 감독에게 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며 내부를 설명했다. 그때 나눈 이야기는 훗날 1000만 명 넘는 관객을 끌어들인 영화 ‘괴물’(2006년)의 첫 부분에 담겨졌다.

당시 녹색연합 활동 2년차였던 이유진(38)씨는 요즘 다양한 명함을 갖고 있다. 녹색당 플러스(+) 공동정책위원장,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연구위원, 한국YWCA연합회 생명비전연구소 정책위원 등이다. 지난해 4·11 총선 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이었다. 정당 득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의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돼 국회에 진출하진 못했다. 그는 지난해 한 시사주간지가 뽑은 ‘시민운동 분야 차세대 리더’에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대학 때 필리핀 미군기지 오염 보고 충격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덕릉길 마들체육공원 내 노원에코센터에서 만난 그는 해맑은 얼굴에 키가 훌쩍 큰 선머슴 같은 외모였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생태교육의 장(場)인 에코센터는 그가 애착을 갖고 있는 곳이다. 2010년 건립 계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지금은 운영위원으로 활동한다. 이곳에서 그는 종종 교사·어린이를 상대로 강연한다. “이곳은 탄소 제로 건물이다.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만들어 전기를 자체 생산한다. 단열은 완벽한 수준이다.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한국전력에 팔아 연 60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린다”고 자랑했다.

그는 시민운동단체에서 대표적인 에너지 전문가로 꼽힌다.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우리동네 에너지 농부이야기』(2008),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2010), 『기후변화 이야기』(2010), 『지구야 오늘 뭐 먹을까』(공저·2010),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공저·2011), 『공기를 팝니다』(공동번역·2010) 등 에너지·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냈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실무분과(워킹그룹) 위원으로 정부의 에너지 정책 수립에도 조언한다.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려고 녹색연합에 합류한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공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를 했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투쟁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시민운동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매년 반복되는 전력난을 그는 매섭게 비판했다. 2030년 원전 제로, 탈핵(脫核) 운동에 앞장서는 인물로 알려져 있어 원전의 위험과 폐쇄를 먼저 말할 줄 알았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다.

“급증하는 전력 소비의 추세를 꺾는 게 더 시급하다. 무엇보다 다른 에너지 소비를 전력 소비로 대체하는 ‘전력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가스·석유로 쓸 수 있는 것까지 모두 전기로 충당하면서 전력 소비량이 비정상적으로 늘고 있다. 전기장판·전기레인지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골에서도 고추를 말리는 데 전기를 쓴다. 이런 수요를 다 맞추려면 원전뿐 아니라 수력·풍력·조력·태양광 등 모든 전력 생산수단을 다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부가 전력수요 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왜 전기를 아껴 써야 하는지 솔직히 알리는 한편 전기요금도 대폭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산업계에서 쓰는 요금이 너무 낮다. 지금보다 50~100% 올려야 한다. 전기료가 오르면 철강업체를 비롯해 부담을 느끼는 곳이 있겠지만 그래야만 재생에너지 산업, 단열재 산업 등이 클 수 있다. 사실 정부도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국민 반발을 의식해 실행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구에서 자란 그는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3학년 때 녹색연합이 주최한 ‘아시아 환경 대탐사’에 참가하면서 환경운동에 눈을 떴다. 당시 탐사 때 미군 철수 후 버려진 필리핀 클라크 기지를 방문했는데, 오염 상황은 심각했고 벤젠·톨루엔 같은 오염 물질 때문에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1999년 대학 졸업 뒤 녹색연합에 들어갔다. 기업체 취직과 시민단체 활동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지만 ‘환경운동에 미래를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뛰놀며 접했던 산과 들·강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클라크 기지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딸의 뜻을 꺾진 못했다. 부모님은 요즘 이유진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됐다.

녹색연합에 들어가서 그는 미군기지 환경오염조사 담당이 됐다. 한강 독극물 방류와 인천 문학산 기름오염사고, 강원도 원주 캠프 이글 유출사고도 그의 조사활동 덕에 사회적 이슈가 됐다. 2001년 한·미 주둔지지위협정(SOFA)에 환경조항이 마련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특히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무척 떨리고 무서웠다.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웃었다. 2001년 리처드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 당시엔 계란 투척 시위를 벌여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 그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 환경개발 프로젝트, 야생동물 보호 같은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두만강 환경오염 실태 보고서’ 작성을 위해 두만강을 탐사할 땐 중국 공안에 붙잡히기도 했다. “10여 명의 외국인이 두만강 유역을 자세히 살피고 다니니 누군가 공안에 신고해 철창 신세를 졌다. 신분을 밝히고 탐사 취지를 설명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두만강은 노천 철광인 무산철광, 인근의 펄프공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그대로 유입돼 오염이 상당히 심각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은 어림도 없는 말이었다.”

2004년에는 중국 북동부에 있는 곰 농장 30여 곳을 조사해 ‘웅담 밀거래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웅담 선호 때문에 중국에서 곰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개별 국가를 떠나 국제사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지역별 에너지 자립도 최대한 높여야”
2005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핵(核)과 화석연료 이후의 에너지 대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건 ‘로컬 에너지(local energy)’다. 지역 내에서 생산해 소비하는 음식물을 뜻하는 로컬 푸드(local food)처럼 각 지역의 에너지 생산을 활성화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독일 모바크, 오스트리아 무레크, 일본 오가와마치 등 외국의 에너지 자립 마을을 국내에 소개하고 전북 임실 중금마을, 부안 등용마을 등에서 주민들과 함께 에너지 자립 모델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여기서 갈등도 생긴다. 전력 소비자들은 생산지 또는 대형 송전탑 주변의 주민이 겪는 어려움을 체감하지 못한다. 모든 지역이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에너지의 지역 자립도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서울시가 최근 전개하는 ‘원전 하나 줄이기’처럼 에너지 절감 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총선 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4년간 일한 녹색연합을 떠나 녹색당에 합류했다. 당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비례대표 1번이 됐지만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3월 창당된 녹색당은 4·11총선에서 10만3811표, 0.48%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정당법상 지지율이 2%를 넘지 못하면 등록이 취소된다. 녹색당은 해산됐지만 지난해 10월 ‘녹색당 플러스(+)로 다시 태어났다. 녹색당 이름을 다시 쓰고 싶어도 등록이 취소된 정당은 같은 이름을 다시 쓸 수 없다. 녹색당은 현재 서울행정법원에 원래 당명을 찾기 위한 소송을 낸 상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 시민운동만으론 안 되겠다, 정치권에서 직접 에너지 문제를 다뤄야겠다고 판단했다. 우리 정치권은 다양해져야 한다. 경제개발을 위해 희생당한 다른 많은 가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녹색당은 탈성장주의, 직접 참여 민주주의, 지방분권, 비폭력·평화, 소수자 인권 등을 앞세우고 있다. “독일·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선 녹색당이 연정(聯政) 파트너로 참여할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국내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국민들의 관심이 커져 우리 당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초 서울 성북구 한성대역 인근에 있는 자택에 80W짜리 작은 태양광 발전 설비 2개를 설치했다. 모두 60만원이 들었다. 환경운동가·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자립과 지역 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해온 결과였다. 그는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한다. ‘정치인으로 변신하려 노력하는 환경운동가’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그는 녹색연합 시절 생계비에 훨씬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다. 지금도 기고·강연에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그에게는 남은 과제가 있다. 박사학위 논문 완성과 미혼으로부터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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