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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보증에 1억 예치 요구 … 독과점의 폐해?

Shutter stock
지난해 2월 건설장비 제조업체를 차린 A씨는 그해 10월 판매처를 뚫는 데 성공했다. 한 건설회사와 10억원짜리 장비 납품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 회사는 A씨에게 계약 금액의 20%에 해당하는 2억원 상당의 계약이행보증을 요청했다. 계약이행보증이란 물품 공급이나 용역 제공 계약을 맺은 뒤 계약 내용을 지키겠다는 약속인데, 납품처에 내는 일종의 담보를 말한다. A씨는 보증서를 만들려고 서울보증보험(이하 서울보증)을 찾았다. 서울보증은 일정한 액수의 보험료를 받고 보증보험계약을 맺은 뒤 ‘보험 가입자가 계약을 못 지킬 경우 계약이행보증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내용의 보증서를 끊어준다.

서울보증보험 ‘손톱 밑 가시’논란

서울보증 측은 처음에 “신생 회사라 신용도가 매우 낮다”며 부동산 담보를 요구했다. A씨의 아파트는 전세인 데다 그가 소유한 건물은 이미 은행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리느라 담보가 설정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서울보증 측은 “새 담보가 필요하다”며 A씨에게 계약이행보증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1억원을 예치하라고 요구했다. A씨로선 현금 1억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납품계약을 아예 포기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결국 친지에게 1억원을 겨우 빌려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부동산이 없거나 현금이 없는 중소기업이면 납품 계약은 꿈도 못 꾸는 현실”이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바로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손톱 밑 가시’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비싼 보험료에 문전박대까지
국내 유일의 전업(專業) 보증보험회사인 서울보증에 대해 소상공인·중소기업과 서민의 불만이 가득하다. A씨처럼 과도한 담보나 예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서다. 신용이 낮은 사람에 대한 문턱도 높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보증보험은 담보나 신용도가 떨어지는 개인과 기업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손해보험이다. 1961년에 처음 도입됐다. 서울보증은 97년 외환위기 때 11조9161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예금보험공사가 최대 주주(지분 93.85%)인 사실상의 공적기관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보증보험 시장이 전형적인 ‘공급자 위주 시장(seller's market)’이라는 점이다. 서울보증 외에도 각종 공제조합(건설공사 관련 보증)이나 보증기금(상거래 보증·정부계약이행보증), 은행(지급보증)에서도 보증보험을 취급한다. 전체 보증보험시장에서 서울보증의 점유율은 26.7%(2012년 기준). 하지만 서울보증만이 모든 종류의 보증보험을 다룬다. 신용보험·신원보험 등은 서울보증이 독점한다. 공제조합은 회원제로 운영돼 아무나 신청할 수 없는 데다 은행이나 보증기금은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력이 떨어지면 아예 신청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서울보증으로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

보험연구원 기승도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보증보험은 겉으론 경쟁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론 독과점 시장이나 다름없다”며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서울보증은 사실상 보험 소비자에게 ‘갑(甲)’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통신장비 제조사 대표이사인 B씨도 서울보증과의 ‘악연’이 있다. 2009년 한 정부기관은 입찰을 통해 통신시스템 도입 계약을 C사와 맺었다. C사는 관련 기술과 노하우가 풍부한 B씨 회사에 2억원짜리 시스템 개발 하청을 줬다. B씨 회사는 서울보증에 2000만원 상당의 계약이행보증보험을 들었다. 시스템 개발을 거의 끝냈을 무렵 C사는 ‘기한 내 납품이 어렵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뒤 서울보증으로부터 2000만원의 보험금을 타갔다. B씨는 서울보증 담당자에게 “조금만 살펴봐도 계약 파기 책임은 C사에 있으니 보험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울보증은 대위변제(보험사가 채권자에게 물어주고 그 돈을 채무자에게 받아가는 행위)를 하겠다며 B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년6개월의 법정 다툼 끝에 B씨는 승소했다. B씨는 “소송 기간 중 신규 계약을 제대로 따내지 못하고 회사 일도 차질을 빚었다. 그런데도 서울보증 측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높은 보험료도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보증의 보험료는 계약이행 분야의 경우 다른 기관보다 최소 2배에서 최대 14배나 비쌌다. 이후 정부와 여론의 압력에 따라 격차가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얘기다.

‘리스크는 무조건 피한다’는 식의 서울보증의 영업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지난해 9월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이 인천의 중소기업인들을 상대로 연 간담회에서 한 건설사 대표는 “다른 곳에선 연대 보증인이 1~2명만 필요한데 서울보증은 7~10명이나 요구한다”고 공개해 논란이 됐다. 지난달부터 연대보증제는 폐지됐지만 그 대신 담보나 예치금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주장이다.

상황이 그래선지 서울보증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겐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관련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D씨는 GPS 관련 특허를 한국·미국·유럽에 냈다. 미국의 벤처 캐피털에서 먼저 투자를 제의해 왔다. 그럼에도 D씨의 회사는 서울보증으로부터 보증을 받을 수 없었다. 특허기술을 연구할 때 갑자기 자금사정이 나빠져 기술보증기금의 이자를 연체했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D씨는 “몇 차례 문전박대를 당한 뒤엔 아예 서울보증을 찾지 않는다. 한국에선 ‘신용불량자’ 취급을 받는데 미국에선 투자를 받을 수 있다니, 한국과 미국 중 어느 곳의 제도가 틀려먹어도 한창 틀려먹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작년 3000억원 이익 … “공적자금 갚아야”
특별한 경쟁 상대가 없다 보니 서울보증은 2011년 3153억원의 보험영업이익을 거뒀다. 서울보증의 이익금은 지난해까지 모두 3조7434억원의 공적자금을 상환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갔다. 지난해 6월 감사원은 서울보증 측이 연차 유급휴가 보상금을 과다하게 주고, 대학생 자녀에게 무상으로 학자금을 지원한 점을 개선토록 요구했다. 2010년 서울보증보험 직원의 평균 연봉은 4대 시중은행보다 높은 7000만원 선으로 조사됐다.

기승도 선임연구원은 “보증보험 시장이 경쟁하도록 만들면 매년 4000억원의 보험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정세창(금융보험학 전공)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보증보험시장도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도 손해보험사가 보증보험을 취급하고, 2개의 전업 보증보험사가 경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98년 공적자금 투입 뒤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을 서울보증보험으로 통합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보증보험 다원화를 검토했지만 서울보증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조기 회수하는 게 우선이어서 (경쟁 체제가) 무산됐다”고 말했다. 서울보증 측은 “우리는 영리 보험회사고 공적자금이 투입돼 있다 보니 리스크 관리가 엄격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또 “중소기업계와 손잡고 우수 중소기업에 대해선 보증한도를 늘려주고 보증 수수료를 우대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증보험시장도 이미 다원화돼 치열한 경쟁이 벌이지고 있다. 전업 보증보험회사가 하나 더 생긴다면 과당경쟁이 빚어져 외환위기 당시처럼 전체 보증보험시장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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