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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쿠바 혁명

1 1959년 쿠바혁명 성공 직후 헤밍웨이와 피델 카스트로의 만남. 2 코히마르에 있는 헤밍웨이 얼굴상. 3 헤밍웨이 옛 집(박물관)에 전시된 청새치 낚싯배 ‘필라’.


쿠바의 키워드에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가 있다. 헤밍웨이는 20년간 아바나(1939~59)에 살았다.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12년)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는 그곳에서 소설을 썼다. 아바나는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키웠다. 그곳에서 그는 문학적 승리를 거뒀다.

"공산주의자들이 병사일 때 존경 … 그러나 사제일 때는 증오한다"



 그는 스페인 내전(종군기자) 현장을 다녔다. 그 후 거처로 선택한 곳이 아바나다. 그의 아바나 흔적은 관광 상품이다. 호텔 암모스 문도스 511호실 벽에 그의 얼굴이 부조돼 붙어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년 발표)를 쓴 곳으로 돼 있다. 그 책은 스페인 내전을 다뤘다.



 헤밍웨이의 단골 카페(La Floridita)에 그의 동상이 있다. 관광객들은 줄지어 사진을 찍는다. 그곳의 다이키리는 헤밍웨이 칵테일로 소개된다. 헤밍웨이의 흔적은 아바나의 음악·노래와 연결된다. 암모스 문도스 호텔 골목은 거리 공연장이다. 피에로 복장의 어릿광대들이 긴 나무다리로 걷고 춤을 춘다.



 아바나 근처 헤밍웨이 집은 박물관이다. 집에는 그의 삶이 농축돼 있다. 아프리카 사파리여행 때 잡은 동물 박제들이 방마다 걸려 있다. 그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이 생각난다. 집 밖에 낚시 요트 필라(Pilar, 길이 12mX폭 3.7m, 최대속도 16노트)가 전시돼 있다. 필라는 그의 삶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필라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여성 빨치산 이름이다. 그는 필라에서 청새치를 낚았다.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Gelhorn, 2012년 개봉)의 첫 장면은 필라로 시작한다. 겔혼(니콜 키드먼)은 헤밍웨이에서 마초의 매력을 느낀다.



 쿠바혁명 직후 헤밍웨이는 피델을 만난다. 그것은 마초들의 특별한 만남이다. 피델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언급했다. 그 책에서 게릴라 전술을 배웠다고 했다. 작은 어촌 마을 코히마르의 레스토랑(La Terraza)에 둘의 만남 사진이 걸려 있다.



코히마르는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주었다. 『노인과 바다』는 노벨문학상(1954년)을 받았다. 헤밍웨이의 주인공들은 도전과 투쟁에 충실하다. 헤밍웨이는 60년 미국으로 돌아갔다(아이다호 케찹). 추방은 아니었다. 아바나의 반미 분위기가 그를 괴롭혔다. 그는 61년 엽총으로 자살한다. 스페인내전 때 헤밍웨이는 반(反)프랑코·좌파 공화주의 쪽에 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병사일 때 존경한다. 그러나 사제(司祭)일 때는 증오한다”고 했다. 그의 소설은 혁명과 전쟁을 추적했다. 투쟁으로서 혁명은 그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권력으로서 혁명은 싫어했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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