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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혁명 개시 60년, 쿠바를 가다

혁명 박물관의 대형 그림(혁명 성공에 환호하는 군중과 피델) 앞에 선 필자.
쿠바는 혁명의 나라다. 혁명은 키워드다. 반미(反美)와 사회주의는 쿠바의 정체성이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 … 혁명의 역설, 관광상품이 된 체 게바라와 반미

 올해가 쿠바 혁명 개시 60주년, 성공 54주년이다. 혁명 지휘자 피델 카스트로(Fidel Alejandro Castro Ruz)는 87세다. 5년 전 동생 라울(Raul)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넘겼다. 피델은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다.

 혁명은 신화를 생산했다. 신화는 체제 관리 수단으로 작동한다. 과거의 신화로 오늘의 진실을 관리한다. 신화는 진실의 적(敵)이 된다.

 쿠바 경제난의 돌파구는 관광 산업이다. 관광은 체제의 상징들을 위축시킨다. 자본주의 달러는 위력적이다. 반미·공산주의의 기세는 허약해진다.


 
1 코르다가 찍은 유명한 사진 ‘게릴라 영웅’. 2 혁명 직후인 1959년 4월 워싱턴을 방문한 피델 카스트로가 링컨 기념관을 찾았다. 3 쿠바혁명 게릴라전을 이끈 체 게바라(오른쪽)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밀랍인형(아바나 혁명 박물관). 체의 검은 색 베레모와 크리스토발(Cristobal) 카빈 경기관총, 시엔푸에고스의 중절모와 M-1 카빈은 별도로 전시돼 있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여정은 역설로 시작한다. 캐나다 토론토를 떠난 에어 캐나다 여객기의 비행시간은 3시간25분이다.

 쿠바 입국 비자는 필요 없다. 간략한 신상을 기록한 여행자 카드로 대신한다. 그 카드의 반쪽을 낸다. 나머지 반쪽은 출국 때 제출한다. 아바나 공항 관리직원은 여행자 카드에만 입국 도장을 찍는다. 여권에는 도장을 찍지 않는다.

 쿠바는 미국의 적성국가(여행금지)다. 쿠바 여행 기록은 미국 입국 때 말썽을 낳을 수 있다. 쿠바는 고민을 해결해준다. 여권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쿠바 여행은 비밀이 된다. 관광객들은 캐나다·멕시코 등에서 아바나로 간다.

 쿠바는 50여 년 미국에 맞섰다. 미국의 제재·봉쇄 정책(embargo)은 반세기를 넘겼다. 피델은 다윗의 신화를 연출했다. 골리앗 미국은 수모를 당했다. 지금 쿠바엔 관광 달러가 절실하다. 미국 관광객(1년 40만 명 정도, 추산)을 배려해야 한다. 다윗의 명성은 역설의 상황 속에 허약해졌다.

 호세 마르티(Jose Martı)공항 터미널은 KTX 서울역보다 작다. 거리의 가로등은 밝지 않다. 바다를 낀 방파제 도로를 지났다. 아바나의 랜드 마크 말레콘(Malecon)이다. 많은 사람이 방파제 주변에 있다. 관광안내원은 “에너지 부족은 만성적이다. 더위를 피해 집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 친절한 설명은 말레콘의 낭만적 이미지를 정지시킨다.


 
4 혁명광장 앞 양쪽 건물에 체 게바라(왼쪽)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얼굴이 철선으로 형상화돼 있다. 5 혁명 박물관 ‘바보들 코너(Rincon de los Cretinos)’. 쿠바 독재자 바티스타와 미국의 공화당 출신 세 대통령(레이건, 아버지 부시, 부시). 6 지난달 26일 열린 몬카다 병영 습격 기념식.(혁명 개시 60주년)▷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풍광은 달라진다. 아바나는 과거에 색깔을 입힌다. 50년 넘은 미국산 중고차들의 색상은 원색이다. 옛 의사당 건물 의 외관은 워싱턴 DC 연방의사당을 흉내 냈다. 건물 주변에 매끈한 핑크색 올드 카가 서 있다. 미국 올즈모빌(Oldsmobile) 98 시리즈 컨버터블(58년형)이다.

 카메라를 들이댔다. 자동차 모델료 촬영비는 1CUC(외국인 전용 화폐, 1달러 정도). 올드 카는 미국의 꼭두각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정권의 유산이다. 이제 관광외화벌이의 첨병이다. 쿠바 사람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엔진으로 고물 차를 재생시킨다. 2011년까지 현대차 엔진 2000여 개가 팔렸다.

혁명 박물관 입구에 구형 탱크(소련제 SAU-100)가 서 있다. 설명문이 있다. “1961년 4월 피그만(灣) 침공 때 총사령관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 함정 휴스턴 호를 향해 100mm 포를 쏘았다.”- 미국 CIA가 사주한 1500 쿠바 용병들의 피그만 진입작전은 실패했다.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90마일 떨어져 있다.

 전시실에는 ‘M 26 Julio’(7-26 운동)라고 쓴 휘장·완장들이 우선 진열돼 있다. 피델의 몬카다(Moncada) 병영(兵營) 습격 날짜(1953년 7월 26일)를 의미한다. 혁명 개시일로 기념한다. 아바나 법대 출신 변호사 피델은 체포된다. 법정 속 피델의 발언이 적혀 있다. “역사가 나를 사면시킬 것이다(La historia me absolvera)-.” 혁명의 무기는 말이다. 언어는 대중을 결집한다.

 전시품은 반란군의 저항 과정을 나열한다. 2년 뒤 석방된 피델은 멕시코로 간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가 합류한다. 아르헨티나 유복한 중산층 가정 출신,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체의 등장은 혁명의 서사(敍事)적 드라마를 강화한다. 혁명 핵심은 피델(1926년생), 체 게바라(28년생),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 32년생), 라울(31년생)로 짜였다. 전체 지휘부의 평균 연령은 28세였다.


 
7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주범, 소련제 중거리 핵미사일의 복제품이 모로 카바나 군사기지에 전시돼 있다. 8 아바나의 미국제 올드카. 올즈모빌 98 시리즈 컨버터블. 9 피에로 차림의 거리 공연단▷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6년12월 피델의 부대 82명은 쿠바 섬 남동쪽에 상륙했다. 그때 탔던 요트 그란마(Granma·할머니)가 조형물로 걸려 있다. 피델 부대는 바티스타 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생존한 17명의 바르부도스(barbudos·털복숭이) 게릴라들은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으로 들어간다. 반란의 소품들이 시기·인물별로 펼쳐 있다. 체 게바라의 군화, 탄약대, 카메라, 담배 파이프가 눈길을 끈다.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밀랍인형은 인기 코너다. 두 지휘관은 게릴라전의 1등 공신이다. 밀림 속에서 총을 든 모습은 사실적이다. 단파 방송용 송신기가 놓여 있다. 선전·선동의 심리전 무기다. 피델의 군대는 농민의 지지를 얻는 데 주력했다. 게릴라와 농민은 물과 고기의 관계다. 피델 부대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전설을 작은 형태로 재연했다.


 
여전사 빌마 에스핀. 미국 MIT 공대 출신 화학공학도. 게릴라 동지인 라울 카스트로(왼쪽·국가평의회의장)와 결혼했다.
미모의 여전사들이 사진으로 걸려 있다. 총을 메고 어깨에 탄창을 두른 셀리아 산체스(Celia Sanchez)와 빌마 에스핀(Vilma Espın). 에스핀은 미국 MIT 출신 화학 공학도. 혁명 성공 뒤 게릴라 동지 라울과 결혼했다. 셀리아는 피델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피델은 공식 결혼을 하지 않았다. 혁명과 사랑은 게릴라 전선의 이면이다. 체 게바라도 비슷하다.

 1층 출구 벽에 ‘바보들 코너’(Rincon de los Cretinos)가 있다. 바티스타와 미국의 공화당 출신 세 대통령(레이건, 아버지 부시, 부시)이다.

 이렇게 적혀 있다. “고맙다. 우리의 혁명을 성공시켜준 바보(바티스타), 강하게 해준 바보(레이건), 공고하게 해준 바보(아버지 부시). 사회주의를 돌이킬 수 없게 도와준 바보(부시).” 관광 가이드는 “반미의 오기를 표출한 것”이라고 했다. 치기(稚氣)의 카툰은 박물관의 간결하면서 비장한 컨셉트와 어울리지 않는다.

 쿠바의 키워드에는 미사일 위기가 있다. 1962년 10월 미국과 소련의 대치는 정점에 올랐다. 소련이 쿠바에 배치한 핵미사일 때문이다. 3차 대전의 재앙을 몰고 올 뻔한 사건-. 아바나의 모로 카바나 군사기지는 긴박했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곳에 거대한 R-12 로켓(SS-4) 중거리 탄도 핵미사일이 전시돼 있다. 소련은 그 미사일을 철수했다. 위기는 사라졌다. 그때 소련은 R-12 복제품을 쿠바에 기증했다. 미사일 설명문은 그 시절의 긴장을 증언한다. “길이 22.1m, 직경 1.65m, 무게 2만7200 kg, 사정거리 700~2100 ㎞, 핵무기 적재량 1메가톤(히로시마 핵폭탄 77배 위력), 36개 미사일이 쿠바에 도착했다.”

 여러 대의 소련제 SA-75 지대공 미사일, 미그 21기도 보인다. 지난 7월 파나마 당국이 북한 선박(청천강호)에서 적발한 쿠바 무기와 같은 기종이다. 관광객들은 여유 있게 그 전시물에 다가선다. 쿠바의 반미 전설은 위력을 잃었다. 경제적 고통 때문이다.

 쿠바 커피 수입상 조셉 매코엔(캐나다 출신, 55세)은 “쿠바인의 소련에 대한 기억은 미사일 위기보다 경제 위기 때다. 90년대 초 소련 붕괴로 쿠바 경제는 망가졌다. 지원(1년 50억 달러 수준)이 끊겼다. 그 ‘평화시대의 특별시기’에 식량과 의약품·석유 부족, 전기 차단을 진하게 경험했다”고 했다.

체게바라는 아바나를 장식한다. 알베르토 코르다 가 포착한 체의 얼굴은 끊임없이 복제, 복사, 재구성, 재창조된다. 혁명의 아이콘으로, 관광 상품으로, 아바나의 이미지로 거리에 널려 있다.

 혁명광장 크기는 축구장 세 배쯤이다. 내무부 5층 건물 벽에 철선으로 체 게바라의 얼굴 형상을 만들었다.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글귀가 달려 있다. 피델에게 보낸 체의 작별 편지 글귀다.

 반대편 건물 벽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얼굴이다. 글귀는 ‘잘하고 있어 피델(Vamos bien Fidel)-’. 그는 게릴라 지휘부에서 최연소였다. 잘생긴 외모는 체 게바라 못지않다.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59년 10월).

 광장을 나와 아바나 비헤나(옛 아바나) 쪽으로 갔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길거리 책방들이 있다. 체 게바라 책들로 차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체게바라의 만남 사진도 판다. 사진에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era’s most perfect man)’이라고 적혀 있다. 사르트르의 체 게바라 평가다.

 사르트르는 60년 2월 쿠바에서 체를 만났다. 그는 탁월한 실존철학자다. 하지만 사유가 아닌 사실의 세계에선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소련은 비판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됐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의 공포통치 때 발언이었다. 그것은 좌파 지성의 치명적인 오류로 기록됐다. 그런 논란에 상관없이 사르트르의 말은 강렬하다. 체의 카리스마적 매력은 강화된다. 체의 숭배자들에게 그의 언행은 묵시록(<9ED9>示錄)이 된다.

 쿠바 관광가이드 루이스 페르난데스(전직 교사)는 “체는 모든 세대에서 존경받는다. 그리고 체 게바라 없는 관광 상품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젊은 세대의 느낌은 다르다. 그들에게 체의 삶은 이미지다. 젊은 세대는 메이저 리그 선수, IT, 외국 연예스타에 열광한다”고 했다. 혁명 후 출생자는 인구(1100만 명)의 70%를 넘었다.

 체는 순회대사, 중앙은행장, 산업부 장관을 맡았다. 체제 정화(淨化)작업도 책임졌다. 반혁명·부패 세력의 제거다. 혁명은 숙청과 처형을 동반한다. 체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면모도 가졌다. 그는 게릴라 시절에 첩자를 즉결 총살하는 임무를 맡았다. 체의 불편한 진실이다. 65년 체는 쿠바를 떠난다. 아프리카 콩고, 남미 볼리비아로 갔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체포돼 처형당한다(67년, 39세).


아 바나 거리에 피델의 동상은 없다. 그것은 사회주의 형제국 쿠바와 북한의 차이로 꼽힌다. 평양은 김일성 부자 동상이 넘쳐난다. 페르난데스는 “지도자를 우상화하지 않는다는 게 피델의 신념”이라고 한다.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난 것은 노선 불일치 때문이다. 체는 급진 마르크스주의자였다. 피델은 상대적으로 온건파였다. 체는 소련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비난했다. 소련은 피델에게 압력을 넣었다. 공산주의 노선투쟁은 권력 투쟁과 숙청으로 마감한다. 피델은 그렇게 정리하지 않았다. 그 결별을 혁명과 우정의 드라마로 각색했다. 피델의 통치술이다. 97년 7월 체 게바라의 유해가 쿠바로 돌아왔다. 피델은 산타 클라라에 체 게바라 동상을 세웠다.

 쿠바는 인권 탄압 논란 속에 있다. 쿠바 정부는 강·온으로 대처한다. 체제 불만의 배출구를 만든다. “조국이 싫은 사람은 떠나라”며 여러 번 항구를 열었다. 쿠바 망명·탈출자는 50여 년간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LA 다저스의 쿠바 출신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Puig·22세)는 최소 여섯 번 시도 끝에 탈출했다. 그리고 인생 대박을 터뜨렸다. KOTRA의 서정혁 아바나 무역관장은 “가족 방문 등 정치적 목적 없는 탈출을 해서 붙잡혀도 처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탈북자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는 북한과 다르다.

 그것은 체제 관리 수단이다. 경제에 도움을 준다. 미국에 사는 쿠바인들의 본국 송금액은 1년에 50억 달러(현금+물품)로 추산된다. 미국은 송금 규제를 풀었다.

교육(문맹퇴치), 의료, 주택 보급은 피델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당뇨병·항암제 등 몇 가지 생명공학 부문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과시한다. 의료는 수출 자원이다. 쿠바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헐값에 산다. 그 대가로 의사 1만 명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했다.

 아바나 보건소의 현실은 답답하다. 약품, 고급 의료 기기(器機) 부족에 시달린다. 의료 선진의 국가 자신감은 상처를 입는다. 쿠바 사람의 한 달 평균 임금은 20~25달러 수준이다. 의사도 비슷하다. 쿠바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5000~6000달러 수준(추정치). 여기에는 식량·의료·학비를 무상으로 받는 것이 포함된다. CUC(외국인 통용화폐)를 쉽게 만지는 관광업종은 인기 있는 가난 탈출구다.

 국가평의회 의장 라울 카스트로 체제는 쿠바를 바꾸려 한다. 올해 초 54년 묶은 해외여행의 규제를 풀었다. 자영업은 계속 확대된다. 지난해 자동차 매매도 허용했다. 하지만 부패와 비효율, 관료주의 폐해는 크게 고쳐지지 않는다. 미국은 경제 엠바고를 풀지 않고 있다. 쿠바의 경제 침체는 계속된다.

가판대에서 산 책을 펼쳤다. 혁명성공 뒤 피델의 첫 연설문이 담겨 있다. 그는 진실의 힘을 언급했다. “진실을 애기하는 것이 혁명가의 첫 번째 의무다. 혁명군의 승리는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이 왜 패배했나. 병사들을 속였기 때문이다.”

 나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 생각났다. ‘진실의 적(敵)은 신화’-. 그의 예일 대학 졸업식(1962년 6월) 연설문 속에 있다. 그 부분은 미국 국내정치와 관련된 언급이다. 하지만 그 구절은 오늘의 쿠바에 적용될 만하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의도적이고, 인위적이며, 부정직한) 거짓이 아니라 (끈질기고, 그럴듯하고, 비현실적인) 신화다(For the great enemy of the truth is very often not the lie-deliberate, contrived and dishonest― but the myth-persistent, persuasive, and unrealistic).”

 쿠바는 신화와 진실이 얽혀 있다.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다. 피델의 혁명은 세상을 뒤집었다. 반 세기 뒤, 세상은 다시 달라졌다. 혁명은 오래되고 지쳐 있다.

아바나(쿠바)=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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