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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왕도 못 말리는 골프, 정부인들 별수 있을까

이상언
런던 특파원
지난주에 박인비 선수의 그랜드슬램 도전이 펼쳐졌던 ‘골프의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서쪽으로 약 50㎞ 거리의 스코틀랜드 옛 수도 퍼스(Perth)에는 킹 제임스 4세 골프 클럽이 있다. 영국에서 군주의 이름이 붙은 유일한 골프장이다. 155년 전에 지역민들이 코스를 만들며 골프 ‘합법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간판에 새겼다.



 제임스 4세가 1502년 골프 금지령을 해제하기 전까지 45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골프는 불법 운동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하는 장정들이 막대기로 공 치는 쓸데없는 짓에 푹 빠져 군사 훈련을 등한시한다’는 이유로 골프 금지법을 만들었다.



 1360년 브뤼셀에서도 영주가 골프와 유사한 형태의 운동인 ‘콜프’를 금지하는 칙령을 반포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물렸고, 벌금을 내지 못하면 외투를 압류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 당시 콜프가 대유행을 했는데, 일요일에 젊은이들이 교회에 오지 않는다는 성직자들의 불평이 많아 주말 라운드를 금지한 마을도 있었다. 돈을 건 내기가 사회 문제가 돼 이를 막는 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 해에 수십 만 명의 각국 골퍼들이 순례하는 올드코스도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1797년 세인트 앤드루스 시의회는 골프장을 주민들에게 당시 주요 먹거리인 토끼를 사육하는 터로 내줬다. 공공 부지를 좀 더 생산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취지였다. 골퍼들이 이에 반발해 20여 년간 법적 분쟁을 벌였다. 결국 한 골프 애호 가문이 땅을 전부 사들여 골프장으로 복원시켰다.



 골프가 반사회적 활동이라는 비난을 사는 게 어제오늘의 일도, 한국만의 특수한 사정도 아니라는 얘기다.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 공 치느라 예배를 빼먹고, 춥고 습한 땅에서 외투를 빼앗길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 나라의 침략 공포 속에서도 ‘끊지 못했던’ 운동이다. 공동체의 생산성과 건전한 문화를 걱정한 위정자가 공권력을 동원해도 근절시킬 수가 없었다.



 한국 정부의 공무원 골프 자제 기조는 해외 공관에도 적용된다. 북한의 전쟁 위협이 이어지던 지난봄은 내내 금지 기간이었고, 요즘도 완전히 해금된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공무원은 교민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다니던 집 근처의 골프장을 두고 먼 지역으로 원정 라운드를 가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휴일에 집에만 있기가 뭣해 가족 여행에 나선다. 평소 주말보다 공관에서 오히려 먼 곳에 머물게 되는, 비상 사태 대비에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역작용도 일어나는 것이다.



 오고 가는 시간을 포함해 18홀 경기 한 번에 최소 예닐곱 시간이 걸리고 뱃살 빠지도록 운동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말릴 수 있는 일도 아닌 듯하다. 골프장에 커다란 초상화까지 걸려 있는 제임스 4세, 할아버지보다 현명했다.



이상언 런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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