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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방군 만드는 아베식 개헌 절대 못할 것”

최정동 기자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양대 권위지 중 하나다. 자유분방하고 개혁적인 논조로 일본 내 진보적 지성의 대명사로 통한다. 부수는 요미우리가 많지만 영향력은 아사히란 평을 듣는다. 이런 아사히 134년 역사에서 배출된 주필은 6명. 22년 만에 한 명꼴이다. 생존 인물은 단 두 명. 이 중 가장 최근까지 현역으로 활약한 논객이 바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65·사진) 전 주필이다. 그를 주저 없이 일본의 대표 언론인 중 한 명으로 꼽는 이유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일본 사회에서의 무게감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지만, 한국인에겐 특히 각별한 존재다. 한국을 알고, 끊임없이 이해하려 하고, 게다가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 언론계의 대표적 지한파인 까닭이다.

그는 지난해 아사히신문에서 정년퇴직했다. 그러곤 한국으로 날아와 서강대에서 한국어 실력을 다지면서 동서대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바쁜 일정의 그를 지난달 30일에 만나 참의원 선거 이후 펼쳐질 일본의 앞날과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본인의 뜻에 따라 한국어로 진행됐다.

요즘 정치인들 질(質)이 나빠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승리에 힘입어 헌법 개정을 밀어붙일 거란 우려가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헌법 개정은 어렵다. 여론조사를 하면 헌법 개정에 찬성한다는 비율이 55~60%에 달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개헌을 원하는 응답자는 50%가 넘지만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9조의 개정을 바라는 비율은 30%대로 준다. 더 나아가 아베 총리 식으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만들자는 데 찬성하는 비율은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하다. 헌법 9조 개정 찬성론자들의 대부분은 자위대 보유 수준을 원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 헌법에 따르면 자위대도 없어야 한다. 더불어 정치권에서는 다양하고 많은 의견이 존재해 아베 총리식 개헌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공명당 쪽에선 아베 총리가 원하는 국방군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현행 헌법 96조에 따르면 개헌을 위해선 전체 중의원 및 참의원의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자민당 단독으론 이 선을 넘을 수 없어 아베 총리가 개헌 요건을 3분의 2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고치려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여론의 지지율은 9조 개정보다 낮다. 결국 헌법 개정은 아베 총리의 꿈에 불과하다. 개헌은 절대 못할 것이다.”

-개헌이 아베의 선거 공약이라 현실적으로 추진될 거라는 시각도 있다.
“그가 개헌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로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면 지지율도 떨어지고 미국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총리도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러니 아베 총리가 말로만 ‘한다, 하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못 하지 않는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 유신회 공동대표의 위안부 합리화 발언도 이유가 되긴 했겠지만 일본 유신회는 개헌하겠다고 했다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일본의 여론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리가 나치식으로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는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비상식적인, 좋지 않은 비유다. 부총리가 농담이라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 독일 등 국제 사회도 화를 냈다. 아소 부총리는 하시모토와 똑같은 면이 있어 때때로 극단적인 말을 한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일반적인 일본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하시모토도 그렇고, 요즘은 정치인들의 질이 나빠진 게 아닌가 걱정된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어떻게 일본을 이끌어 나갈 걸로 보나.
“경제에 치중할 거다. 자민당이 선거에 이긴 건 아직까지 아베노믹스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이 앞으로도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려면 계속 경제를 성공시켜야 한다. 문제는 소비세 인상이다.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리기로 했는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인상할지 이번 가을에 결정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1%씩 단계적으로 하길 원한다. 재무성은 그러나 단숨에 8%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이런 경제적 현안들을 풀어나가는 데 힘을 집중할 것이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한·일 간 우호를 위해 파격적인 소신과 아이디어를 주저 없이 밝혀왔다. 2005년엔 독도를 한국에 양보하자는 글을 써 일본 내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기명칼럼에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기)를 한국에 양보하되 ‘우정의 섬’이라 이름 붙이고 일본의 어업권을 보장받는 몽상을 해봤다”고 썼다. 1995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안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설도 그의 작품이다.

독도 문제에 매번 반응하는 건 부적절
-한·일, 중·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아베 총리는) 조금이라도 개선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현재 러시아·동남아시아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이다. 그는 1차 집권 당시 고이즈미 총리 때 악화됐던 중·일 관계를 나아지게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던 거다. 한국과 중국을 무시한 일본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관련한 영토분쟁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면 중국이 좋아할 것이다. 이후 국제재판소로 가 분쟁을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한국이 독도와 관련된 영토분쟁이 있다는 점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게 걸림돌이 된다. 한국이 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본만 할 수 있겠는가.”

-독도와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독도 문제는 해결이 어려운 사안이다. 더 이상 서로 자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일본 교과서들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문제 제기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건 일본의 입장 아닌가. 아베 정권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승격시키겠다는 공약도 흐지부지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위안부다.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면 가장 좋다. 아베가 표방하는 대외정책은 ‘가치관 외교’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를 펴겠다는 거다.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한 위안부 문제는 전 세계적인 인권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마땅히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한국 쪽에서도 100% 만족은 어렵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100점은 아니라도 90점 정도에서 만족하는 건 어떨까. 한·일 정상회담이 열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한·일 관계를 이런 식으로 놔두면 안 된다’고 열심히 설득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속 나이를 먹고 있다. 2015년이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이때까지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게 나의 희망이다.”

-지난 동아시안컵 한·일 축구경기 때 일어난 응원 논란은 어떤가.
“매사 TPO에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적절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의미다. 순수한 스포츠 행사여야 할 축구경기에서 정치적 슬로건이 나오는 것은 TPO에 맞지 않는다. 한국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실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홍명보 감독을 아주 좋아한다. 일본에서도 인기다. 이번엔 좀 안 됐더라.”

한국과는 숙명 같은 인연 있는 듯
와카미야 전 주필은 비교적 깨끗한 발음으로 정확한 단어를 구사했다. 지금은 한국어에 능통한 일본 기자들이 많지만 그가 한글을 익히기 시작한 80년대 초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79년 여름 처음으로 한국에 왔었다. 당시 방위청 장관의 수행기자로 왔는데 판문점도 가고 제3땅굴에도 갔다. 그런데 일 년 뒤인 80년 9월에는 자민당 내 ‘아시아·아프리카 연구회’라는 모임을 따라서 북한에도 갔다. 김일성도 만났다. 1년 동안 남북한 양쪽을 모두 방문한 것이다. 당시엔 드문 일이었다. 그때 한국과는 숙명 같은 인연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말도 배우게 됐다.”

-언제부터 한국어를 배웠나.
“81년 9월부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다녔다. 그리고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뒤 지난 3월부터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다시 공부하고 있다. 80년대 초 한국어를 배우러 서울에 가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의아해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30년 이상 한·일 관계를 주의 깊게 지켜봤을 텐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80년대에는 한·일 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82년 6월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터져 연일 뉴스에 보도됐었다. 그 후 일본에서 반성한다, 사과한다는 말이 많아졌다. 한국의 민주화가 이뤄진 90년대 전까지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복잡했다. 70·80년대에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다 광주사태도 있었고,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때라 무서운 나라, 어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90년대 한국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분위기가 크게 변했다. 일본 쪽에서도 자민당 일당독재가 끝나면서 총리가 된 정치인들이 사과한다는 발언을 많이 했다. 결국 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간에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왔다. 오부치 총리는 한국의 식민지화에 따른 한국인들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한다는 말을 하고 이를 김 전 대통령이 받아들여 화해와 우호의 길을 함께 걷기로 했다. 이때가 한·일 관계가 절정에 올랐던 시기 같다. 지금은 정치·경제적으로는 이런 관계 개선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동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왜 반동의 시대가 왔나.
“한국에선 90년대 민주화 이후 위안부들에 대한 보상 등 과거에 없었던 요구가 분출했다. 반면 일본 내에선 이미 사과한 사안에 대해 한국이 계속 여러가지 요구를 해온다는 불만이 생겼다. 국민 관계도 약간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30년간의 긴 세월로 보면 양국 국민 감정은 크게 개선됐다. 내가 지금 다니는 한국어교육원에는 젊은 일본 여성이 300~400명에 달한다. 전체 학생의 50%는 되는 것 같다. 30년 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때 일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러 오는 사람의 대부분은 재일교포였다. 어떤 일본 외교관은 한국의 언론보도가 과거보다 반일적이라며 섭섭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언론도 그렇다는 것이다. 신문은 덜하지만 일본의 잡지와 책이 강하게 반한·반중 감정을 드러낸다. 세 나라 미디어가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과도한 내셔널리즘이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 같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1970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한 뒤 정치부장·논설주간 등을 거쳐 2011년 5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주필을 역임했다. 현재 동서대 석좌교수,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 및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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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