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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1%대 회복? 정직하게 실상 알려야”

윤증현 전 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윤 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요즘엔 직접민주주의와 선거제도로 인한 비용, 특히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인한 폐해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현직 떠난 지 2년 됐죠. 주변에다 ‘이제 나랏일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남은 인생을 가족과 어떻게 보낼 것인가만 생각하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잘 안 돼요. 지금도 신문만 보면 흥분하고 아쉬워하고 그럽니다.”

 -뭐가 그리 아쉬운가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대감속의 시대(Age of Great Deceleration)’란 기사가 났더군요. 세계 경제 성장률이 계속 내려가고, 전망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개발성장 시대를 거쳐오며 언제나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는 많이 성장해 왔습니다. 안타까운 건 노무현정부 이후로 지금까지 세계 경제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어요. 저성장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2분기에 1%대의 성장률을 보여 경기회복의 청신호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는데요.
 “(단호하게)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정부는 정직하게 현재의 상황을 알려야 합니다. 8분기 계속 0%대 성장을 거듭하다가 고개를 약간 든 것에 불과합니다. 장밋빛 환상으로 보면 안 되죠. 청년실업이나 세수 부족 같은 문제를 생각하면 절대로 경계심을 늦출 때가 아닙니다.”
 
지도체제 10년 가는 중국 부러워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정책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까요.
 “(허허 웃으며) 질문은 쉬운데…. 저성장의 늪에 빠지기 전에 경제구조를 확 바꿔 나가야 합니다.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아요. 이걸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 운명을 해외 시장에다 맡기는 꼴입니다. 중장기적으로 수출은 계속 발전시키되 내수를 일으켜 균형을 잡는 확대 균형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걸 바로잡자면 거버넌스(governance) 이야기가 나와요. 5년 단임 대통령으론 한계가…. 저는 중국이 굉장히 부러워요. 거긴 한번 지도체제가 서면 5년씩 연임해 10년이 가요. 그러니까 당장은 성장이 억제돼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설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있다면.
 “서비스업 중에서 의료의 산업화가 시급합니다. 우리 반도체·조선·자동차가 왜 강합니까. 30, 40년 전에 제일 우수한 인력들이 죄다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 그 분야를 산업화해 그렇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제일 우수한 고등학생들이 다 어디에 갔습니까. 의과대학에 갔죠. 이제는 이 분야를 산업화해야 우리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교육·관광·농업까지도 다 산업화해야 합니다.”

 -산업화란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투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게 산업화예요. 비영리 법인에는 투자를 할 수가 없습니다. 투자하려면 돈을 불린 뒤 환수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법으로 막아놨기 때문입니다. 의료를 산업화하면 존스홉킨스 병원 같은 거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의료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인데 우리 의사·간호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태국만 해도 지난해 의료 관광객이 150만 명이나 들어왔어요. 우리는 12만 명인가 그렇습니다. 이런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는 거예요.”

 -논란이 있는 주장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산업화해 투자를 늘리자는데 왜 ‘없는 사람들은 진료도 못 받느냐’며 이념 논쟁으로 이어지는지… 교육도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교육 시장이 대한민국이에요. 학생 수가 많은 데다 부모들이 희생하며 자식들 교육시키는 데가 우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개방이 안 되고 산업화를 못 시키니까 다들 해외로 빠져나가 기러기 아빠들만 남게 됩니다.”

 -결국 본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단 말이군요.
 “르네상스와 같은 대변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걸 풀려면 사회 흐름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현상 뒤에 있는 시대정신에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게 잡혀야 우리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너무 엉뚱한 일에 자원을 많이 낭비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돈에 못질해 놓으면 은행들 외국 자본에
-이제 우리 기업 이야기를 해볼까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빼놓고 보면 상황이 너무 안 좋다고들 합니다.
 “삼성전자·현대차조차 문제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제품의 80%, 현대차 제품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생산됩니다. 이러다 보니 고용 없는 성장만 거듭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투자하는 대기업들을 업고 다니겠다’고 했다는데, 기업들이 해외로만 나가지 않고 국내에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우리 경제의 부가가치가 기업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금융 분야에서 산업자본의 참여 문제도 이제 완화해나가야 합니다. 우리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있는 자본을 활용해야 합니다. 지금은 돈에 못질을 해놨죠. 우리 은행의 지배구조를 한번 보세요. 상당수가 외국 지분입니다. 앞으로 외국인 주주들이 경영인을 직접 뽑겠다고 나서면 어쩔 건가요.”

 -파행 경영이나 족벌 지배구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불거집니다.
 “기업이 독과점 횡포를 부리는 건 당연히 견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순기능이나 본질적인 역할은 절대 존중해야 하는 거죠. 일감 몰아주기나 단가 후려치기엔 철퇴가 내려져야죠. 그런데 그걸 넘어서 소유·지배구조까지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면 시장경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세무조사로 현 정부 정체성 헷갈려
-요즘 현오석 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같아선 제갈공명을 데려다 놔도 꼼짝달싹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몇 개월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보지요. 한편으로는 경기부양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고, 또 한편에는 이번 정권이 선거 때부터 강조해온 경제민주화란 가치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 부총리의 존재감이 너무 없다고도 하고 권한이 없어서 그렇다는 우려도 있어요.
 “박 대통령이 요즘 현 부총리를 자주 독대한다던데, 그렇게 힘을 실어준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잘하는 겁니다.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소통의 기회를 계속 줘야 합니다. 부총리와 경제장관들 간의 호흡도 중요합니다. 사실 경제장관 인선할 때는 부총리를 먼저 뽑아 팀을 만들어줬어야 합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5년 단임 정부 내에선 과거 장기영 부총리 등과 같은 힘 있는 리더십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화두는 어떻게 보나요.
 “개념은 좋지만 접근은 신중해야 합니다. 창조경제는 정부가 주도하기보다 시장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기업들은 세무조사 때문에 난리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굉장히 비판적으로 봅니다. 시장이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굉장히 혼란스러워합니다. 한쪽에서는 경기를 부양한다고 추경 편성하면서 한쪽에서는 기업을 옭매는 데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봐요. 많은 기업이 지금도 국세청과 세금을 딜(deal)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세금을 올리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입니다. 이런 식으로 팔을 비틀면 지하 경제는 더 아래로 숨어들게 됩니다.”

 -경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조언이 있다면.
 “이웃 일본을 보면 잃어버린 20년을 거쳐오면서도 국민들이 불평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니까 참고 지내는 겁니다.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호소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저성장이다. 힘들겠지만 참고 견디자’라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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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