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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제품 vs 저가형 상품 … 소비시장 양극화 심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충무로2가의 A오디오 판매점. 가게 입구 쪽 좌측 선반에 각종 스피커, 앰프 등이 진열돼 있었다. 독일 클랑필름사에서 제조한 1940년대 스피커 ‘유로딘’,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사에서 만든 1930년대 진공관 앰프, 영국 가라드사에서 생산한 1950년대 턴테이블 ‘301모델’처럼 1000만원을 훌쩍 넘는 제품이 적지 않았다.

가게 주인 이모씨(63)는 “요즘은 새 제품보다 1940~50년대 만들어진 빈티지 제품이 주로 팔린다”며 “영국 태노이사가 1940년대에 만든 턴테이블 중에는 6000만원짜리 고가 제품도 있다”고 말했다. 진공관 앰프는 상태에 따라 가격이 2000만원까지 올라간다고 이씨는 덧붙였다.

이웃한 B오디오 전문점도 마찬가지다. 번듯한 차림의 50대 부부가 손때 묻은 낡은 오디오 기기들 사이에서 높이가 1m60㎝나 되는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연주곡을 유심히 듣다가 가격을 문의했다. 스피커는 독일 아담 오디오의 텐서 알파(tensor alpha) 제품으로 6500만원짜리였다. 매장 안쪽 사무실에서 직원과 상담을 하던 한 중년 남성은 가게 앞에 주차된 검은색 세단을 타고 사라졌다. 매장 직원 박모(52)씨는 “방금 그 고객이 구입한 제품은 중고 앰프와 CD플레이어, 중고 스피커 세트 등을 합쳐 1000만원어치”라며 “손님 중 80~90%가량이 빈티지 중고 제품을 구입한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직원 이모(32)씨는 “예전엔 여름이 비수기였지만 올 들어선 많을 땐 하루 20~30명의 손님이 찾아온다”며 “1년 전보다 매출이 3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소비 줄여도 이것만은 꼭 산다
불황이라지만 빈티지 제품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다. 오디오 제품이 대표적이다. 가격은 비싸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더욱 오르는 데다 소비자 개개인의 취미와도 맞물리면서 다른 소비를 줄이더라도 지갑을 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장(貯藏)형 소비’다. 고가의 명품 시계나 최고급 와인도 빈티지 오디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 시계거리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김모(65)씨는 “파텍필립 같은 수천만원대의 초고가 브랜드를 살 수 있느냐는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며 “재테크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고가 시계라고 해서 모두 재테크 용도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파텍필립이나 까르띠에·롤렉스와 같은 초고가 브랜드 제품 중에서도 특정 연도에 생산된 일부 라인에 한해서만 투자 가치가 인정된다.

김씨는 “50~60년대 만들어진 일부 제품들은 수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당시엔 몇 백만원짜리가 지금은 수 천만원대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

이날 시계거리에서 만난 문모(51·여)씨는 대표적인 시계 투자가다. 며칠 전 2850만원짜리 까르띠에 시계(모델명 WB509731)를 하나 샀다고 밝힌 그는 “3년 전 구입했던 피아제 시계(시가 1300만원)와 중고 티파니 목걸이(1200만원)를 시계상에 되판 뒤 현금을 보태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가 시계를 샀다가 되팔 때마다 조금씩 비싼 모델로 바꿔 투자 규모를 불려나가는 식이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 빈티지 시계를 6개나 갖고 있다고 자랑했다. 문씨는 “15년 전 까르띠에 베누아 시계를 1500만원 주고 샀는데 지금은 3000만원까지 올랐다”며 “나중에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시계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친정어머니도 10여 년 전쯤 1000만원 조금 넘게 주고 롤렉스 시계를 샀는데 지금 팔면 1억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급 와인과 동·식물까지 몰리는 돈
오디오나 시계 못지않게 고가 와인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다. 2일 와인 전문업체 와인나라에 따르면 샤토 라투르와 샤토 무통 로칠드 등 병당 150만원대 이상인 초특급 와인들의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그래프① 참조> 지난해 1년 동안 13병밖에 팔리지 않았던 샤토 라투르의 경우 올 들어 7월까지 25병이나 팔렸다. 지난해 25병 판매에 그쳤던 샤토 무통 로칠드도 올 들어선 37병이나 판매됐다.

드물지만 관상용 동식물에 투자하는 이도 있다. 삼성증권 엄세원 과장은 “최근 들어 큰손 자산가 중에서 관상용 동식물에 투자하는 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관상용 비단잉어의 경우 수 천만원을 호가하고 있어 취미는 물론 투자를 겸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낱개로 팔고 할인해주면 소비자 인기
빈티지 투자가들과 달리 일반 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값이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도권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1 행사’나 매장 내 가격할인 이벤트 등과 같은 할인행사 이용이 늘었느냐고 묻자 49.4%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46.8%가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PB(Private Brand·자체 브랜드 상품) 상품 구매를 늘렸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격보다는 ‘편의’를 우선해온 편의점들도 가격 경쟁력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PB 제품 가짓수를 늘리는 게 대표적이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올해 전체 매출의 35%를 PB 제품으로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그래프② 참조> 2007년 이 회사의 PB제품 매출 비중은 10%에 불과했다. 이 회사의 PB 스낵 제품인 초코별이 농심 새우깡에 이어 스낵류 매출 2위를 차지해 품질도 인정받고 있다. CU·GS25 등은 업계 1위인 롯데제과의 아이스크림 제품을 정상가보다 20~40% 할인해 팔고 있다. 편의점은 구멍가게와 달리 제값을 다 받는다는 인식을 무너뜨린 셈이다.

그간 묶음 판매에 주력해오던 대형마트들도 낱개 상품 판매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롯데마트가 지난 6월부터 2주간 진행한 ‘통큰 세일’ 기간 동안 맥주와 라면 등을 낱개로 판매한 결과 국산 캔맥주는 1년 전보다 판매량이 22.7%나 늘었다. 라면 매출도 3.7% 올랐다. 이 회사 정재우 마케팅전략팀장은 “낱개 상품이라도 개당 판매 가격을 묶음 상품과 똑같이 매겼더니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며 “단기적인 매출만으로 소비 패턴 전반을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불황에서도 실속형 소비 수요가 새로 창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입맛도 바꿔 … 케이크 대신 식빵 찾아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유명 브랜드보다 중소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유명세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겠다는 이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중소 브랜드의 20만원대 LED TV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164% 늘었다. TV에서 시작된 중소 브랜드 열풍은 다른 가전제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중소 브랜드의 1인용 미니 세탁기(7만9700원) 판매량도 344% 늘어났다. 디지털마트 이원대 대표는 “기능이 복잡한 제품만 아니라면 중소기업 제품의 품질이 크게 뒤지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 속의 실속형 소비가 소비자 개개인의 입맛을 바꾸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요즘 제과·제빵업계의 최대 고민거리는 줄어들고 있는 케이크류 판매량이다. 업체마다 전년 동기 대비 20~30%씩 케이크 판매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개당 최소 1만5000원인 케이크를 사는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식빵류 등을 더 많이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원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몇 해 전부터 1~2인 가구가 늘면서 케이크 소비가 줄어들고 있지만 올 들어 그런 현상이 더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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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