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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로 괴로울 땐 햇빛·청색 LED가 특효약

시침이 없는 시계는 망가진 시계다. 그처럼 사람도 외부 시간을 느끼는 시간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우울증이 나타난다. 김은기
새벽에 전화가 울리면 뭔가 큰일이 났나 싶어 전화 받는 손이 덜덜 떨리기도 한다. 혹 어르신의 심장마비 사고가 아닐까. 실제로 심장마비 사고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시간이 새벽 1~5시쯤이다. 다른 시간대보다 발생률이 40%나 높고 결과도 더 치명적이다. 왜 그 시간대에 더 많이 일어날까. 혹시 심장은 지금 몇 시인지 알아서 그렇게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정답은 ‘맞다’이다.

국내에서도 연 2만여 명이 사망하는 심장마비의 원인이 ‘생체시계’의 이상 때문임을 알려주는 연구가 2013년도 네이처(Nature)지에 소개됐다. 이 논문의 요지를 쉽게 풀어 말하면 오전 4시, 내 심장은 앞으로 5시간 후면 출근 때문에 심박수가 높아질 것을 알고 있어서 낮은 심박을 유지하며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신체시계가 지금을 새벽 4시가 아닌 오전 9시로 잘못 알고 심장박동수를 높인다면, 그리고 하필 그때 나의 심장혈관이 굳어 있거나 좁아져 있는 상황이라면, 게다가 피가 굳기 쉬운 겨울이라면 치명적일 수 있다. 이 경우 나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될지 모른다. 내 몸의 시계는 지금 대한민국의 표준시간에 잘 맞추어져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시차는 실수를 유발시킬 수 있다. 한 예로 작업 시간대가 바뀌는 교대 근무자들의 50%가 집중력을 갖는 데 애를 먹는다. 시차를 빨리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멜라토닌’이라는 수면조절 약을 먹거나 햇볕을 최대한 많이 쬐면 좋다. 시차를 줄이겠다고 약까지 먹는다는 게 생뚱맞다면 쨍쨍한 햇볕을 쬐는 게 인체 시계를 ‘지금’에 맞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햇볕만 되는가. 전등 빛은 안 될까. 그리고 도대체 생체시계는 어떻게 시간을 아는 걸까.

1 눈으로 들어온 빛으로 시간을 감지하는 생체시계는 뇌(시신경 교차상핵)에 있으며 심리상태, 장기운동 등의 바이오리듬을 조절하는 물질을 만든다. 2 권투선수 알리가 앓은 파킨슨병은 생체시계 조절물질(도파민)의 이상에 의해 생겼다. [위키피디아, 중앙포토]
사람의 생체시계는 눈 바로 뒷부분, 뇌의 중앙 하단에 있는 ‘시신경 교차상핵’이라는 곳에 있는데 시침과 분침이 찰칵찰칵 돌아가고 있다. 생체시계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24시간마다 켜지는 ‘24시간용 스톱워치’,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를 알려주는 ‘바깥시간 확인 장치’, 그리고 지금 시간에 장기는 뭘 해야 할지 온몸에 알려주는 신호 호르몬을 만드는 ‘신호 송신장치’다(사진 1).

24시간 기준으로 도는 스톱워치, 생체시계
생체시계는 24시간을 기준으로 도는 일종의 스톱워치다. 어떻게 24시간이라는 주기가 생길까. 태엽을 감는 괘종시계는 태엽의 힘으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톱니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돌기 때문에 1분 혹은 1시간을 초 단위까지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생체시계의 경우 한 사이클이 24시간인, 연속된 생화학 반응이 뇌 속 시계세포 속에서 진행된다. 최근 과학자들이 여러 사람의 생체시간을 측정했더니 24시간±11분이 나왔다. 평균 24시간이다. 이런 생체시계는 빛이 없는 깜깜한 동굴에서도 잘 돌아간다. 그런 시계는 동물·식물·곰팡이, 그리고 박테리아에도 있다.

그런데 왜 24시간일까. 가장 그럴싸한 답은 유전자 보호 전략이라는 것이다. 세포는 자라면서 유전자 복제를 할 때 실타래처럼 꽁꽁 뭉친 유전자가 풀리면서 가닥이 둘로 나뉜다. 두 줄로 꼬여 있을 때보다 한 줄씩 나뉘면 자외선에 훨씬 약하다. 유전자 복제 때 햇볕의 자외선을 받으면 유전자가 변해 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일이 생물의 지상 과제인데 유전자가 변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강한 자외선이 없는 밤에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 살아남기에 유리하다. 이런 이유에서 생물은 밤낮을 구분하는 방법을 진화시킨 것이고 수억 년 동안 지구의 자전주기인 24시간에 맞게 생물체 내에 ‘24시간용 스톱워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장자가 뉴욕 공항에 내렸는데 밖은 환한 대낮이고 공항 시계는 낮 12시라고 하자. 일단 내 손목시계를 12시에 맞춘다. 뉴욕시간이 낮 12시인 것을 공항시계가 알려주듯 생체시계에도 뉴욕이 정오인 것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그때 필요한 신호는 햇빛이다. 빛의 신호는 눈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생체시계가 위치한 곳이 눈의 바로 뒷부분인 것도 이런 이유다.

눈의 ‘강글리온 세포’는 빛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특히 청색 빛에 잘 반응해 강한 햇빛이나 청색 LED 빛을 받으면 생체시계는 지금이 낮 시간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뉴욕에서 시차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강한 햇볕을 쬐거나 청색 LED빛을 쬐는 일이다. 청색 LED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인들이 시차를 조절하고 가장 활동적인 낮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우주선 내에서 쬐는 빛이기도 하다. 따라서 뉴욕 도착 후 약한 전등이 켜져 있는 호텔 내에서 CNN 정오 뉴스를 보는 것은 시차 극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태양 빛을 한번 쬔다고 생체시계가 스마트폰처럼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 몸에 들어 있는 시간 관련 생체물질들이 모두 바뀌어야 하기 때문인데 보통 1시간 시차 적응에 하루가 걸린다. 예컨대 시차가 8시간 나는 파리에서 서울로 왔다면 최소 8일이 지나야 시간 조절 호르몬이 정상으로 바뀐다.

아침형 인간의 자녀도 역시 아침형
아침형 인간은 아침형 자식을 낳는다. 즉 일어나는 시간, 자는 시간 같은 것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간에 관련된 유전자의 차이라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의 경우 아침 9시~오후 4시에 신체리듬이 최고 상태를 유지한다. 시간 유전자에서 어떤 신호가 만들어져 신체에 전달되는 속도가 가장 빠르고, 신체는 가장 맑은 상태다. 그러다 7시간쯤 지나면 바닥 상태가 돼 밤 11시쯤에는 졸려서 눈을 뜰 수 없게 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저녁형 인간은 오전 11시~오후 6시에 신호 전달속도가 가장 빠르고 컨디션이 가장 좋다. 그래서 7시간쯤 뒤인 새벽 1시쯤 돼야 자게 되고 자연히 늦게 일어나게 된다.

이런 유전적 차이 때문에 아침형 인간이 저녁형 인간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50%에 해당하는 ‘중간형’은 아침형이나 저녁형으로 바뀔 수 있다. 즉 시간대를 조금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원래 기본 성향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생체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신호물질에 따라 몸이 제대로 반응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잠이 들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한밤중에 최고가 됐다가 새벽에 최저가 된다. 이게 잘 유지되면 우리는 밤 11시쯤 잠이 들고 오전 6시쯤 잠이 깨는 ‘정상적’인 수면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몸이 생체시계의 신호에 따라 반응하는 것을 우리는 바이오리듬(Biorhythm)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밤에는 혈압과 심박수가 낮아지고 새벽녘에는 체온이 외부 기온과 상관없이 최저를 기록한다. 이런 바이오리듬에 변화가 생기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장기간 반복되면 병으로 발전한다. 실제로 시간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의 비만도가 급증한 예가 있다. 어떻게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언제 먹는가가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바이오리듬에 가장 민감한 장기는 심장이다. 심장에는 뇌의 시계와는 다른 시계가 있으며 두 개의 시간 신호가 다른 경우 심각한 심장질환이 발생한다.

파킨슨병, 우울증 등 건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바이오리듬을 잘 유지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밤잠 설쳤어도 해 뜨는 아침에 눈떠라
1996년 올림픽 성화를 옮기는 권투 선수 알리의 손은 덜덜 떨렸고 몸은 금방 쓰러질 듯했다. 그가 앓고 있던 병은 파킨슨병이었다. 2013년 신경과학잡지(Exp. Neurol)에는 파킨슨병의 원인 중 하나로 신경전달물질(도파민)에 문제가 생겨 생체시계가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사진 2). 생체시계는 정신 상태에도 큰 영향을 준다. 2013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우울증 환자의 경우 시간을 느끼는 유전자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실렸다. 생체시계가 심장·위같이 계속 운동하는 장기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생체시계를 제대로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매일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쉬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잠자거나 일어나는 시간이 고무줄처럼 들쑥날쑥 변한다. 이런 불규칙한 생활이 계속되면 심각한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자고로 명퇴자나 백수일수록 생체시계를 정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생체시계를 정상으로 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아침 일찍 태양을 보는 것이다. 그 태양 빛이 생체시계를 제대로 돌게 한다. 어떤 소설가는 집에 좋은 작업실을 두고도 일부러 매일 아침 30분씩 걸어서 도서관에 가고 거기서 글을 쓴다고 했다. 시간을 본인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직업의 경우 오히려 일정시간에 일정한 일을 하는 것이 생체시계를 잘 돌리는 방법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열대야가 시작되면 잠을 설치고 생체리듬이 엉망이 될 수 있다. 밤잠을 설치더라도 해가 뜨는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떠야 햇빛으로 시간을 맞추는 생체시계가 제대로 돌아간다.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1만 년 전에 비해 지금은 무척이나 복잡 다양한 활동을 해 심지어 24시간 문을 여는 수퍼도 일상화됐다. 하지만 1만 년 전의 생체시계 유전자는 지금과 다르지 않고 같은 원리로 돌고 있다. 생활이 문명화됐다고 해서 인간의 몸 자체도 바뀐 것은 아니다.

바이오리듬을 지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빛이 환한 아침에 일어나 태양 빛 아래에서 일하고 밤이 되면 불을 끄던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최고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아닌 주경야면(晝耕夜眠)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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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