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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나요, 대관령 자락 ‘오로라의 노래’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 예술감독인 정경화씨가 지난달 31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우리에게 제일 잘 알려진 신사임당의 시 가운데 하나인 ‘대관령을 넘으며’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는 단순한 이 시구가 어린 시절 나에게는 1년에 두 번씩, 꼭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었다. 대관령. 나에게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강릉 외삼촌댁에 놀러갈 적 넘어야 했던 고개 이름이다. 빨리 사촌 동생들과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이놈의 고개는 넘을 때마다 얼마나 까마득한지. 자가용 안에서 몸이 기울어질 정도로 굽은 고갯길을 뱅글뱅글 하염없이 타고 오르다 보면 차 귀신인 나조차 멀미가 오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걸 걸어서 넘은 신사임당은 얼마나 힘들었겠니?” 아빠가 그랬다.

그러니 강원도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강원도요?” 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던 사람들이 이해도 간다. “그럼 비행기 타고 왔니?” “아니요, 차 타고 왔는데…” “그럼 한 네 시간 걸리니?” “아니요… 엄마 차로 한 시간 반…” “어머, 어머니가 운전 되게 빨리 하시나 보다! 엄청 멀 텐데.” “아니에요, 120㎞ 정도밖에 안 되는 걸요…” “우와, 정말? 강원도가?” 거짓말 하나 보탬 없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시절까지 원주~서울을 왕복하며 레슨, 콩쿠르, 음악회 등을 다니는 동안 만난 사람중 80%의 사람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고백하건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참가했던 한 콩쿠르에선 옆에 앉은 어떤 친구의 “넌 어디 살아?” 하는 질문에 이 장황한 대화를 피하고 싶어 서울 어딘가에 산다고 거짓말한 적도 있다. 하긴 우리 아버지가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거기 수돗물은 나오느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도대체 대개의 사람들이 상상한 강원도는 어떤 모습이었던 걸까? 사실 내가 살던 원주도 이제는 인구 30만 명이 넘는 어엿한 ‘도시’다. 나와 내 친구들 모두 스스로가 도시 아이들이라고, 서울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지난겨울 어머니 최현숙씨와 고향 원주 시내를 걷는 손열음씨. 최정동 기자
그런데 요새 곰곰 생각하니 ‘정말 그런가?’ 싶다. 친구들과 ‘오늘 숙제가 있다? 없다?’로 꽃잎을 한 장 한 장 뜯으며 넘어 다니던 아파트 뒷산, 한 송이 뚝 따서 꽁무니를 쪽쪽 빨면 단맛이 나던 진달래꽃, 학교 가는 길 작은 도로에 내리던 봄의 벚꽃비, 가을의 은행잎비. 여름의 초록에서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던 겨울산이 다른 곳에서도 그만큼 선명했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곳의 사람들. 하굣길 예상치 못한 소나기에 우산을 들고 나와 학교 앞에서 아들 딸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들. 그 시간 우리 엄마는 직장에 나가 있었지만 대신 내겐 다른 엄마들이 있었다. “열음이 어머니는 못 오셨지?” 내 우산까지 챙겨오시던 친구 어머니들은 운동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엄마 대신 내 자리를 맡아주고 도시락까지 챙겨다주던 아주머니들. 나는 친구 어머니들이란 다 그런 분들인 줄 알았다. 내가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가야 해서 일찍 조퇴하게 되면 “국어 시간 빠져서 부럽다~”를 연발하면서도 교문 밖까지 나를 배웅해주던 친구들, 학급 도우미였던 내가 콩쿠르에 참가하느라 등교를 늦게 하는 날이면 내가 할 일을 대신 다 해주고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들. 나는 친구라는 건 다 그런 건 줄만 알았다. 나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내 신문 기사를 정성스럽게 스크랩하시는 우리 교회의 할머니·할아버지들, 바쁜 엄마 대신 나를 키워준 엄마의 제자 언니·오빠들, 외식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꼬깃꼬깃한 만원짜리를 용돈이라며 건네주시던 아빠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 나는 사람들이 다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강원도’였던 것 같다. 차로는 한 시간 반밖에 안 걸려도 풍경은 사뭇 먼 그곳.

일본에서 일주일간의 지옥 같은 녹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곳, 강원도다. 원주 집에서 차를 타고 40분 정도 지나니 횡계IC가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짝이 전학 오기 전 살던 동네가 바로 여기라고 했었다. ‘진짜’ 시골에서 전학 온 그 아이에게 모두 “횡계가 대체 어딘데?”라고 하니 전 국민이 스키 타러 오는 동네를 모르느냐며 자기 존재의 이질감을 우리의 무식의 소치로 포장하던 그 아이의 영리함이 생각난다. 조금 더 지나니 이곳 알펜시아 리조트가 2년 만에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다. 정확히 6년 전, 원주 집에서 밤을 새워가며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를 기다리던 순간이 생생하다. 아침 6시가 되고 발표단에 선 IOC 위원장이 카드를 뒤집으며 무겁고 느리게 ‘소치’라고 발음하던, 억장이 무너지던 그때를 이제는 웃으며 회상할 수 있게 돼 얼마나 행복한지. 2018년의 이곳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벅차오르는 심장의 나는 영락없는 ‘강원도’다.

열 살에 처음으로 구경 가 본 미국 보스턴의 탱글우드 음악제. 내가 늙을 때쯤에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생길 수 있을까 했던 내 마음의 한복판에 벌써 열 살이나 된 ‘대관령음악제’가 숨쉬고 있다. 정명화·정경화, 두 세계적인 거장 선생님의 지휘 아래 그때의 나와 같던 어린 심장들이 이곳에 모여 빚어내는 ‘오로라의 노래’가 나에게는 감격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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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