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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꽃 할배’들도 부대찌개로 데뷔하셨네요

열린 문가에 농부가 앉아 저녁으로 치즈 바른 빵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말했다.

“빵 한 조각만 주시겠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러는데요.” 그는 놀란 눈길을 던졌지만, 말 없이 두툼하게 한 조각을 잘라 내게 건네주었다. 그는 나를 거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의 검은 빵을 먹어보고 싶어진 괴짜 숙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집이 안 보이는 곳까지 오자마자 주저앉아 그 빵을 먹었다.

영국 고전문학 『제인 에어』의 한 구절이다. 손필드 저택을 뛰쳐나온 제인의 절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덤덤한 영국식 유머가 있는 장면이다. 말끔한 옷차림의 여자가 난데없이 교양 있는 말투로 빵을 달라고 하자, 농부는 젠트리 계급 여인이 서민 음식 체험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검은 빵은 서민이 주로 먹었고 상류층은 흰 빵을 먹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내게 인상적인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책을 읽으며 ‘치즈 바른 검은 빵’이 나도 너무나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고전문학에서 먹는 장면은 유난히 잘 기억한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된 것을 숨기고 장모 월매의 구박을 받으며 “먹던 밥에 풋고추 절이김치 양념” 넣은 것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는 장면.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하녀에게 소시지를 사다 달라고 하자 하녀가 대신 양배추 수프를 권해서 먹는 장면. 도대체 양배추 수프가 어떻게 소시지의 대체재가 되나 했는데, 나중에 어떤 러시아 양배추 수프에는 부대찌개처럼 소시지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걸 알고 어찌나 기쁘던지(?).

영화 ‘황해’의 한 장면.
이런 내게, 최근 이른바 ‘먹방’의 유행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하정우 먹방’부터였다. 배우 하정우는 영화 ‘황해’(2010)에서 국밥, 감자, 꼬치, 김 등을 먹어 치우는데, 지나치게 게걸스럽지 않으면서도 절실하게, 자연스럽게 먹는 연기가 가히 일품이라 보는 사람까지 배고프게 만든다. 그 먹는 장면들을 모아 만든 ‘하정우 먹방’이 최근 몇 년간 인터넷을 돌면서 인기를 누렸다.

그 후 하정우의 후계자들이 나타났다. MBC TV 리얼리티 쇼 ‘아빠 어디가’에서 꼬마 윤후가 ‘짜파구리’를 먹는 ‘윤후 먹방’, tvN 리얼리티 쇼 ‘꽃보다 할배’에서 할아버지들이 부대찌개 등을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왜 먹방이 인기일까. 일단은 고전문학에서부터 이어지는, 먹는 것을 묘사하고, 또 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제인 에어』의 검은 빵 장면처럼 음식은 당대의 사회상과 문화를 함축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이 가장 쉽게 친밀감과 흥미를 가질 주제다. 그래서 예부터 적지 않은 문학의 대가들이 음식 이야기와 먹는 장면을 작품에 담았다.

하지만 영화나 TV에서 먹는 장면은 예전부터 있지 않았나. 왜 요즘 들어 먹방이 유행인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TV 리얼리티 쇼가 정착하면서 화면을 통해 지극히 일상적인 것을 보는 데 익숙해지고, TV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리얼리티를 더욱 원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 같다.

사실 옛날부터 문학에는 먹는 장면이 많았어도 회화에는 놀랍게도 먹는 장면이 별로 없다. 먹거리 정물화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많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입을 벌리고 음식을 넣거나 우물우물 씹는 이미지가 텍스트와는 달리 워낙 원초적이며, 단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하지 않은 먹는 장면 그림도 어린아이들이나 피터르 브뢰헬의 풍자화 속 서민들로 한정돼 있었다. 그런 이유로 영화와 TV에서도 예전에는 미남미녀 주인공이 무언가를 먹는 장면이 상당히 절제돼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리얼리티 쇼의 시대, 인터넷과 SNS를 통한 쌍방 소통 시대에는 시청자와 관객이 수평적 시선으로 화면 속 인물의 리얼한 모습을 바라보며 공감하기를 원한다. 이때 먹는 모습이 맛깔스러우면서 사실적일 경우 그것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폭풍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돼있다. 그러니 한동안 먹방의 인기는 지속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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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