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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과 2013년의 『광장』

문학비평가 고(故) 김현은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광장』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새벽’ 잡지에서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광장? 53년 전 스물다섯 살 최인훈이 ‘저 빛나는 4·19 혁명이 가져온 자유 덕에 감히 이런 소재를 다룰 수 있었다’며 ‘새 공화국에서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낀다’고 서문에 밝혔던 우리 현대문학의 고전이다. 이런 소재? 뭐가 그토록 위험한 소재란 말인가?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남한의 철학도 이명준은 우여곡절 끝에 인민군이 돼 6·25전쟁을 치르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힌 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리고 인도로 향하던 중 원양선박 타고르호의 갑판 위에서 홀연 망망대해 속으로 몸을 던져 사그라진다. 그렇게 되기까지, 일그러진 현대사의 ‘광장’ 안에서 진저리 치던 진지한 청년 이명준은 남한과 북한 체제의 모든 약점들과 이데올로기의 허상들을 치밀하고도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태도와 내용 때문에 작가 최인훈은 『광장』의 집필에 앞서 막강한 자기 검열과 대면해야 했음을 담담히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4·19의 분위기는 잠시였고, 다시 우리 사회는 엄혹한 냉전의 밀실로 들어가게 된다. 국가라고 보기엔 너무나 기괴해져 버린 북한의 문제를 아예 따로 떨어뜨려놓고 대한민국의 내부에서만 곰곰이 따져본다면, 좌파와 우파 양쪽의 모순을 다 공격하고 있는 이명준은 이른바 중도주의자쯤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획일화하지 않는 한 어느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는 저마다 여러 가지 무늬와 빛깔이 예민하게 뒤섞여 있을 수 있다.

 또한 중도라는 것은 그저 좌와 우의 중간이거나 쥐와 새의 도합(都合)인 박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옳은 판단을 내리려는 이성의 의지라고 볼 때, 가령 누군가의 이야기 속 두 가지 견해 중 하나는 좌파들의 맘에 안 들고 다른 하나는 우파들의 맘에 안 들면 그는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무조건 배척당하고 마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지극히 죽을 병에 걸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를 외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청소년들마저 그 잘난 어른들에게 정치를 담보로 증오하는 법을 배워 언어를 테러에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진정 언어라는 게 총과 칼을 거부한 이들의 아름다운 도구라면 중도가 위태롭지 않은 나라여야 비로소 좌파의 자유도, 우파의 자유도, 종국엔 참 정치적 자유도 있다. 그런데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혁명가로 사는 것보다, 애국지사로 사는 것보다, 자유주의 ‘날라리’로 사는 게 훨씬 더 힘들다. 이명준처럼 좌와 우를 제대로 함께 비판하면 좌의 매체 어디에도, 우의 매체 어디에도 글 한 줄 제대로 실을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그 양쪽의 어느 부분만 건드리게 되면 일단 최소한 한쪽으로부터는 적이자 죄인이 된다. 중도의 자기 검열과 침묵, 그리고 멍한 정신머리는 대강 그런 식으로 차분히 관습화된다. 누구도 이치에 맞는 말을 한 대가로 피해 보는 걸 바라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중도의 유권자가 아니라 중도의 정치 지도자를 자처하는 누군가가 있는데, 그가 만약 바다 위에 서 있는 이명준만큼 고독하지 않다면 틀림없이 그의 중도는 가짜고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사기꾼이 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극단적 진영 논리에 둥지를 틀지 않는 자는 카뮈의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나라, 그를 사실상 추방하는 것도 모자라 영원히 실종된 것처럼 자살하게 만드는 사회를 『광장』은 그리고 있다. 따라서 최인훈의 이방인 이명준은 사실상 추방을 당하다 영원히 실종된 듯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극단끼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 증오의 균형으로 간신히 지탱되는 우리 역사와 사회에 의해 처형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 과잉에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해독하는 가장 빠른 길은 우선 중도들이 방관의 진통제를 끊고 이명준처럼 아파하는 중도가 되는 것이고, 이명준처럼 좌도 우도 외면한 채 바닷속으로 숨어 죽는 게 아니라 끝까지 이 땅에 남아 자신을 표현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며, 나아가 그러한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의 『광장』이 다시 쓰여진들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아직도 밀실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는 이명준의 죽음으로부터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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