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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책 읽는 인간] 세상의 근원 있을까? 그저 의심하고 질문할 뿐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짐 홀트 지음, 우진하 옮김
21세기북스, 512쪽
2만5000원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의문을 갖게 됐을까? 흔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창조신화를 비교하곤 한다. 그리스 신화가 애초에 존재하던 질료에 조물주가 형상을 가함으로써 탄생했다고 본다면, 유대의 창조설화는 신이 세상을 ‘무(無)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했다고 본다. 이 스케일의 차이 때문에 ‘숭고론’의 저자 위(僞)롱기누스(실명을 알 수 없어 Pseudo-Longinus라 불림)는 “빛이 있으라”라는 창세기의 구절을 이제까지 존재한 가장 숭고한 문장으로 꼽은 바 있다.

 ‘빛이 있으라’에서 ‘있다’는 명령형으로 사용됐다. 우리 말에서 ‘있다’는 형용사로 분류되며, 형용사에는 명령형이 없다. 물론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는 경우처럼 ‘있다’는 동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없었던 것이 새로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이 있으라’는 표현은 우리의 일상적 문법을 벗어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숭고한 순간의 기술에 사용된 것이리라.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가장 근원적이고 난해한 물음이다. 또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어느 하나의 답변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묻는 행위에 있는 게 아닐까. [사진 21세기북스]
 사실을 말하자면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관념은 실은 신약성서 이후에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창세 이전에 이미 ‘혼돈’이라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신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다. 세상의 근원은 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얘기다. 이것으로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이 해결됐는가? 물론 아니다. 천진한 아이들처럼 이렇게 되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은 어디서 나왔지?”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짐 홀트는 이 숭고한 물음에 도전한다. 그의 책이 갖는 각별한 의미는 오랫동안 철학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중요한 물음을 다시 던졌다는 데에 있다. 고중세 철학은 ‘존재론’ 중심이었지만, 근대 이후 철학의 관심은 ‘인식론’으로 옮아가고 (‘인식론적 전회’), 20세기 이후 다시 거기서 ‘언어철학’으로 이동했다 (‘언어학적 전회’). 이 과정에서 가장 숭고한 물음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늘날 세상의 근원을 묻는 것은 차라리 물리학의 과제가 되었다.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에서 탄생했다. 이 이론이 나오자 엉뚱하게도 신학자들이 환호했다. ‘빅뱅’은 ‘무로부터 창조’라는 성서의 관념의 완벽한 증명이라는 것. 게다가 ‘빅뱅’이 일어나려면, 촉발자가 존재해야 한다. 그 ‘누군가’란 당연히 신이 아니겠는가? 이 경우 우리는 ‘그럼 신은 어디서 나왔냐?’는 해묵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빅뱅 이론이 무로부터 창조라는 신학의 증명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빅뱅 이전에 무가 있었고 빅뱅 이후에 유가 탄생했다는 것은 빅뱅 이론에 대한 가장 널리 퍼진 오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빅뱅과 더불어 창조됐다. 시간은 빅뱅과 더불어 흐르기 시작하기에 빅뱅 ‘이전’이란 당연히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빅뱅 이전과 빅뱅 이후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실은 넌센스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철학자 칸트는 시간과 공간은 ‘직관의 형식’이라 말했다. 시간과 공간은 세계의 객관적 상태가 아니라, 사물을 인식하는 주관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 즉 시간적으로 연속되고 공간적으로 확장되는 세계는 우리 머릿속의 현상일 뿐이다. 우리의 머리 밖에서 세계 가 객관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는 없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이성은 현상계, 즉 시공이라는 주관의 형식 내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다면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애초에 제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른바 ‘충족이유율’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가령 야곱은 이삭에게서 나왔고, 이삭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왔다.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이 충족이유율의 연장이라면, 그 물음은 문법적 오류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통용되는 법칙을 시간 너머에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정말 해소해야 할 가짜 물음에 불과할까?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도 우리의 일상적 직관의 한계 너머에 있다. 가령 공간이 휘어지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이론이 표상하는 세계를 ‘직관’하지는 못해도 ‘이해’는 한다.

 바로 그 때문에 그 물음을 ‘문법적 착오’로 기각해 버리기도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가능하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해답이 존재할 지조차도 모르는 이상한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셈. 이 물음에 대해 현대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짐 볼트의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는 당대의 석학들과 가진 인터뷰를 토대로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의 스펙트럼을 화려하게 펼쳐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과학도 자신의 궁극적 물음 속에서는 결국 철학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 속에서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궁극적 답변은 들어 있지 않다. 들어 있는 것은 그저 석학들이 내놓은 다양한 답변에 대한 저자의 평가뿐이다. 칸트의 말이던가?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철학함’만이 존재한다고 했던 것이. 이 책을 통해서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궁극적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향한 무한한 사색의 여정, 즉 ‘철학함’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 문화비평가. 미학자.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학과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저서 『생각의 지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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