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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8월의 주제 - 서늘한 여름 책장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8월 주제는 ‘서늘한 여름 책장’입니다. 책장을 여는 순간 아찔한 속도로 내달리는 소설 세 권을 골랐습니다.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한 김영하의 소설, 댄 브라운의 스릴러, 할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떠오른 길리언 플린의 작품입니다. 무더위 속에서 체감온도를 내려줄 소설의 매력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김영하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말하며 이런 예를 들었다. “옛날 친구를 만나면 나도 기억 못 하는 나를 이야기한다. 제일 낯선 사람이 옛날의 나”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희미한 '살인의 추억' … 망각과 싸우는 킬러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176쪽, 1만원


낭패감이 몰려왔다. 목적지를 향해 전력질주로 달려갔는데 다다른 곳은 깎아지른 절벽을 마주한 느낌.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전직(?) 연쇄살인범의 이야기인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방, 제대로 날렸다. 충격에 멍하긴 했지만, 소설가 김영하(45)의 ‘멋진 귀환’은 반가웠다.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하며 오빠가 돌아왔다. 그를 만났다.

 그는 실제로도 돌아왔다. 2년 반의 미국 뉴욕 생활을 끝내고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생활은 어떤가.

 “귀국할 때 서울로 돌아올까 하다가 서울에서는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아서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는 술 먹자는 사람도 없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간에도 좋고. (웃음)”

 소설의 주인공 김병수(70)는 수의사이자 시인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25년 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이다. 숱한 살인의 추억을 품었던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알츠하이머 때문이다.

 -통제되지 않는 기억이란 무서운 설정이다.

 “인간이 잘 될 때는 자기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능하다고 믿지만 무너지면 망상으로 버티게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그렇다.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하루 동안에 벌어진 사건으로 자신감도 잃고 결국 자신의 눈을 찌르고 만다.”

 김병수는 기억이 사라지자 일기를 쓰며 기록에 매달린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을 일기에서 확인하며 더 혼란스러워진다.

 -기억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억은 무기력하다.

 “20년 전 일기를 보면 사건의 맥락이나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진다. 빈 공간 속에 뭔가가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친절한 소설을 썼는데 이번에는 비워 놓고 싶었다.”

 작가가 그렇게 비워놓은 공간을 채우는 건 독자의 몫이 됐다. 소설이 마지막으로 다가가며 독자가 당황하는 건 그래서다.

 “충분히 복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망든 노인, 과거의 살인자가 1인칭으로 말하는 신뢰할 수 없는 진술이다.”

 -주인공의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도 구축할 수 없지 않나.

 “사람들은 스토리를 구축하려고 한다. 인생은 기억의 총합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회상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가감해서 듣는다. 그런데 글로 쓰인 것은 말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김병수의 진술을 들으며 독자는 심리적인 게임을 하는 셈이다. 그의 말에 담긴 과장과 불일치를 의심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메워가며 듣는다. 독자가 읽으면서 서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연쇄살인범이었지만 나쁘게만 생각할 수 없어 불편했다.

 “인물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 때문에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는 거다. 이미 죽어가고 실패하고 있음에도 저항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주인공은 인간 수십 명을 죽인 강력한 인간이다. 그런 사람이 망각에 무릎 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비롯, 기억에 천착하는데.

 “기억이나 기록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스토리는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를 되짚는 것이다. 소설은 윤색이다. 개인사나 국가의 역사도 윤색한다. 결국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싸움이다.”

 그는 “소설가는 이상한 나라에 다녀와서 그곳의 이야기를 이곳의 이야기로 번역해 말해주는 사람이다. 소설가는 다른 장르나 다른 작가가 주지 못하는 유니크한 체험을 독자에게 주고 독자는 그 경험에서 감수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가의 정의에 가깝게 다가섰다. 이번 소설은 독특하고도 독특한 경험을 주기 때문이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궁핍 나락으로 떨어진 일가족 큰아들은 '전멸'을 꿈꾸고 …

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푸른숲
567쪽, 1만4800원


한바탕 피가 튄다. 살육 현장의 세세한 묘사가 눈으로 들어와, 오장육부 가득히 비릿한 피 냄새를 남긴다. 엄마와 어린 두 딸이 무참히 살해됐다. 범인은 그의 아들이자 오빠 벤. 작가는 소설 초반부터 사건의 모든 패를 까놓는다. 미스터리는 없다는 듯이. 하지만 스릴러물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모든 패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소설 안팎으로 진범을 찾기 위한 추격전은 시작된다.

 판을 펼친 작가는 여유롭다. 600페이지에 가까운 묵직한 소설인데도 사건 발생 18시간 전의 일상부터 풀어놓는다. 사건 순간까지 분량을 채우려면 18시간을 초 단위로 묘사해도 모자를 것 같다. 영민한 작가는 세 개의 시선을 배치해 사실상 시간을 늘린다. 소설 속 사건 추격자이자 살육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인 막내딸 리비의 현재와, 살해당한 엄마 패티와 살인자 벤의 과거가 숨가쁘게 맞물려 돌아간다. 리비는 2009년 현재에서, 패티와 벤은 1985년 사건 발생 18시간 전부터 살육의 순간을 향해 돌진한다.

 초장부터 페이지를 확 뒤로 넘겨 세 시선이 한데로 모이는 순간을 미리 보고 싶은 욕구가 일지만 그럴 수 없다. 작가의 ‘독자몰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그러하기에 잔인하다. 소설을 읽을수록 무엇을 추격하고 있는지조차 잊게 할 정도다.

 ‘울적함’ 때문이다. 엄마 패티가 늘 사용했다는 단어. 살아남은 리비의 묘사에 따르면 “‘우울함’보다 더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리비의 가족이 모두 생존했던, 1985년의 미국 중앙부 캔자스주의 경제상황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구잡이 대출로 땅을 사고 농장을 키웠던 리비 가족도 치솟는 이자 탓에 파산 직전에 몰린다. 가장인 아버지는 주정꾼에 마약쟁이고, 아이 넷 딸린 엄마의 일상은 고단하다. ‘전멸’을 꿈꾸는 맏아들 벤의 18시간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사람들은 자기 손을 떠난, 걷잡을 수 없이 무력한 상태 속에 있다. 모두가 범인이고, 모두가 희생자일 수밖에 없는 증상들이 소설 곳곳에 덫처럼 놓여 있다. 이 예사롭지 않은 일상의 덫이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을 높인다. 덫도, 결말도 모두 부정하고 싶어진다.

 작가 길리언 플린은 지금까지『다크 플레이스』를 포함해 세 편의 소설을 내놨다. 지난해 출간한 『나를 찾아줘』는 아마존 종합 1위 등을 차지하며 전 세계 출판업계를 뒤흔들었고, 곧 영화로 만들어진다. 이 소설 역시 영화로 나온다. 샤를리즈 테론, 니콜라스 홀트, 클로이 모레츠로 최근 캐스팅이 확정됐다.

한은화 기자

『다빈치 코드』의 랭던 교수 이번엔 『신곡』 속으로

인페르노 1,2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문학수첩
각권 376쪽
각권 1만3000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매혹된 적이 있다면, 빈스 플린의 ‘미치 랩 시리즈’를 보며 손에 땀을 쥔 적이 있다면,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의 매력 중 하나가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이라 여긴다면…. 『다빈치 코드』로 세계적 인기를 모았던 지은이가 4년 만에 낸 신작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

 이야기 틀은 전작과 유사하다. 하버드 대학의 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이 주인공이며 아름답고 영민한 여의사 시에나 브룩스가 그를 돕는다. 전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처럼 이번엔 단테의 『신곡』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장치로 등장한다. (제목도 『신곡』의 지옥 편에서 따왔다.) 단 이번엔 가공의 역사를 파고든 ‘팩션’이 아니다. 과학과 인문을 녹여내면서 인류의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차라리 SF에 가깝다.

 랭던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총상을 입은 채로 발견된다. 한데 기억을 잃었다. 어떻게, 왜 피렌체에 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여성 킬러에게 쫓긴다. 통신위성까지 구비하고 각국 공조직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비밀조직 ‘컨소시엄’ 의 소행이다.

 이는 스위스 출신의 천재 유전공학자 조브리스트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인구 증가가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의 근본원인이며 이대로는 인류가 다음 세기를 맞지 못하리라는 ‘인구멸망방정식’을 제안한 인물. 이를 바탕으로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과 같은 인위적 ‘솎아내기’를 시도하는데 그가 개발한 바이러스를 숨긴 곳을 찾는데 랭던의 지식이 결정적이다. 조브리스트가 개발한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지옥’으로 만들 시한을 하루 남았는데.

 랭던은 조브리스트의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시에나의 도움을 받아가며 베네치아로, 이스탄불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우군인지 적군인지 아리송한 컨소시엄과 세계보건기구의 추적과 지원이 얽혀 긴박감을 자아내며 반전의 묘미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댄 브라운의 장기인 인문학 녹여내기도 여전히 매력을 발한다. 보티첼리의 그림 ‘지옥의 지도’, 단테의 데스마스크를 단서 삼아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이나 중세 궁전의 비밀통로 설명도 그렇고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은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촌의 결혼선물로 신혼방 침대 위에 걸어둘 선정적 그림을 주문한 덕에 탄생했다는 둥 좀처럼 접하기 힘든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평일 손에 들기는 만류하고 싶을 정도로 흡인력이 뛰어난 이 작품을 단순한 ‘피서용’으로만 읽기엔 아쉽다.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도덕적 위기의 순간에/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예비되어 있다”는 『신곡』의 한 구절을 주제로,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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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