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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아내 카드로 몰래 돈 빼쓴 건 절도죄"

남편이 아내 몰래 지갑에서 현금을 빼내 썼다면 처벌 대상이 될까. 현금이 아닌 카드를 꺼내 현금을 인출했다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금은 무죄, 카드로 현금 인출은 유죄다. 전자는 피해자가 아내라서 형법의 친족상도례 조항에 의해 형이 면제되는 반면 후자는 피해자가 현금 인출기 관리자라서 절도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지갑에서 몰래 현금카드를 꺼낸 뒤 500만원을 인출해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모(49)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절도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은 것이다.

 이씨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김모(40)씨와 지난해 1월 결혼했다. 혼인 직후부터 김씨의 과거를 의심해 자주 싸웠고 종종 흉기로 위협하거나 손찌검을 했다. 김씨의 과거 행적을 확인하겠다며 인감도장을 몰래 갖고 나와 가족관계기록부를 떼보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갑에서 현금카드를 몰래 꺼내 500만원을 인출한 것이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이정민 판사는 김씨에게 적용된 폭행과 절도·협박·사문서위조 및 행사 등의 모든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 정호건)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친족상도례’ 조항을 적용해 “범행 당시 김씨가 배우자였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절도 혐의에 대한 형을 면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량을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으로 줄여 이씨를 풀어줬다.

 검찰은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했고 대법원 재판이 진행됐다. 결과는 또다시 뒤집혔다. 이번에는 카드 때문이었다. 카드를 훔쳐 현금을 인출해 사용할 경우 카드 절취와 현금 절도라는 두 가지 범죄가 성립하고 피해자도 다르다는 논리가 동원된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현금카드로 자동인출기에서 돈을 빼내 취득하는 행위는 인출기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그 돈을 자기 지배하에 옮기는 것이어서 절도죄가 성립하고 그 피해자는 인출기 관리자”라며 “원심은 절도죄 피해자와 친족상도례 적용 범위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최현철 기자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형법 328조와 344조.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재산죄에 있어서는 직계혈족,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배우자 등 친족 간 범죄의 경우 형을 면제하는 특례를 인정해 주는 게 골자다. 친족 간 내부의 일에는 국가권력이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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