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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우리에겐 장그래가 있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2008년 4월 1일 일본 아사히신문 인사란에 한 기업의 사장 취임 소식이 단독으로 실렸다. 와세다대를 졸업한 하쓰시바전산 출신의 시마 고사쿠(島耕作)가 합병을 통해 탄생한 하쓰시바-고요 홀딩스의 초대 사장직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다른 신문들도 이 소식을 연이어 보도했고, 심지어 한 방송국은 단독 인터뷰를 시도한다. 기사에 나온 시마 사장, 알다시피 한국에도 유명한 히로카네 겐시의 만화 ‘시마 고사쿠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이리하여 만화 주인공이 화면에 등장해 아나운서와 문답을 주고받는, 만화강국 일본에서도 전무후무한 ‘실사-애니메이션 합성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시마사장』 한국판 1권 표지. [사진 서울문화사]
 최근 그가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지난달 18일 발매된 만화잡지 ‘모닝’에서 시마가 대형 적자의 책임을 지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시마의 퇴임과 함께 ‘시마사장’ 시리즈도 막을 내렸다. 물론 만화 줄거리지만, 계속되는 일본 가전업체들의 악전고투를 보여주는 뉴스로 화제가 됐다.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명예직인 회장에 취임한다. 따라서 시마과장(1983~1992)-시마부장(1992~2002)-시마이사(2002~2005)-시마상무(2005~2006)-시마전무(2006~2008)-시마사장(2008~2013)으로 30여 년 계속된 시리즈는 ‘시마회장’까지 이어지게 됐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샐러리맨’으로 불리는 시마는 일본 단카이 세대(1947~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이다. 만화는 ‘회사인간’들의 고단한 일상과 사내 암투를 생생하게 그려 인기를 모았다. 80년대의 버블 경기와 90년대 이후 추락하는 일본 경제상황을 리얼하게 담아 ‘경영자들의 필독서’로 불리기도 했다. 또 하나, 주인공의 화려한 연애담도 중요한 인기 요인이다. 만화에서 시마는 여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마성의 남자’로 등장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여자들이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니, 부러워 자꾸 보게 된다”는 (주변 남성들의) 평이다.

 시마사장의 퇴임이 시사하는 일본의 현주소는 암울하지만, 만화 속 뉴스를 실제인 양 천연덕스럽게 소비하는 여유와 상상력은 부럽다. 그래서 지난달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서 완결된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이 시즌2로 이어진다는 소식이 더 반가운지 모르겠다. 샐러리맨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던 한국형 회사만화 ‘미생’도 주인공 장그래의 성장과 함께 오래오래 이어지길. 어느 날 장그래의 승진 소식을 일간지 인사란에서 발견할 수 있을 때까지.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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