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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리고 기도 … 전쟁의 맨얼굴






외신 종군기자들이 찍은 한국전쟁 미공개 사진들이 공개됐다. 전라북도 완주군에 위치한 완주 책박물관(관장 박대헌)은 20년간 수집한 한국전쟁 사진 일부를 본지에 공개했다. 사진은 모두 한국전쟁 당시에 인화됐고, 뒷면에는 날짜와 사진 속의 구체적인 정황이 영문으로 기록돼 있다.

 건국대 신복룡(정치외교학) 석좌교수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한국전쟁 사진들이다. 유엔군이 야전 텐트가 설치된 전장의 탱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과 부상당한 아내를 업고 달리는 남편 사진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특히 탱크 앞 미사 사진은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사진이라 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해 천주교의 미사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는 미사가 라틴어로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지프를 타고 가다 지뢰폭발로 숨진 인도인에게 인도식 화장을 해주는 장면도 매우 희귀한 사진”이라면서 “그외 유명 작가인 스탠리 트레틱의 사진도 눈에 띈다. 포로들이 윗옷을 벗고 손을 든 채 논두렁을 따라 걷는 그의 사진은 구도가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스탠리 트레틱(1921~99)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책상 밑에 들어간 어린 아들과 노는 유명한 사진을 남겼다. 암살당하기 한 달 전에 촬영된 이 사진은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던 미국인들의 가슴을 더 사무치게 만들었다. 트레틱은 UPI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박대헌 관장은 “20년째 한국전쟁 관련 사진을 모으고 있다. 이번에 공개한 사진들은 종군기자들이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촬영한 작품이라 전쟁의 절박한 순간에 대한 포착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사진 설명

1 인천상륙작전 성공 … 북한군 포로 이송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19일부터 미 해병사단이 서울 방향으로 진격했다. 20일에는 행주나루에서 서울 수복을 위해 한강 도하 작전을 실시했다. 사진은 23일 유엔군이 경기도 김포 부근에서 인민군 포로들의 상의를 벗기고 이송하는 장면이다. [사진 스탠리 트레틱]

2 부상 입은 아내 업고 뛰는 남편 1951년 2월 17일 한국전쟁 와중에 부상당한 아내를 업고서 남편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남편의 등을 꽉 쥐고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표정과 뺨에 피를 묻힌 채 황급히 뛰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비참한 전쟁의 맨얼굴이 보인다. 사진에는 누가 어느 지역에서 찍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3 유엔 직원 인도식 장례 1950년 8월 16일 유엔위원회 멤버인 인도인 나야르 의 화장(火葬)을 미군과 국군이 지켜보고 있다. 그의 유해를 장작더미 위에 올리고 인도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나야르는 지프를 타고 가다가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지금도 인도의 갠지스강에는 장작 위에 시신을 올린 뒤 태우는 방식의 장례를 행하고 있다. [사진 에드 호프만]

4 탱크 앞 야전 교회 1950년 8월 25일 낙동강 전투에 참전한 유엔군 병사들이 탱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앞에는 가톨릭 군종신부인 프루델이 병사들을 향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무릎을 꿇은 병사들은 신에게 무엇을 구했을까. 탱크 왼편에 설치된 야전 텐트가 이곳이 전장임을 말해 준다. 전쟁 와중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교회였다. 탱크 뒤편으로 말라서 바닥을 드러낸 강이 보인다. [사진 리처드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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