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DMZ에 띄우는 평화의 뜻 될 일인가 싶어도 해야지요

강원도 철원 민통선 안에서 국경선 평화학교를 운영하는 정지석 목사. “급작스럽게 닥칠 수도 있는 통일에 대비해 북한 지역에서 활동할 피스메이커를 키우는 게 내게는 목회활동”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백마고지가 지척인 소이산을 오른다. 21일 산 정상에 선 정 목사가 북녘땅을 가르키고 있다. [사진 국경선 평화학교]




영성 2.0 (16) 철원 '국경선 평화학교' 정지석 목사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동안 종교인들은 각자의 신앙적 양심에 따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북한 주민을 직접 돕고, 북한 종교인과 교류하는 데 불교·기독교, 신앙의 구별이 없었다. 북·중 국경지대에서 탈북인들을 남한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이도 있었다.



올해 3월에 개교 … 첫 학기 마쳐



 개신교 정지석(53) 목사는 직접 분단의 현장인 비무장지대(DMZ)로 뛰어든 경우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의 목회를 스스로 접고 2년 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원도 철원 땅에 훌쩍 투신했다. 휴전선 빗장이 풀리면 당장 북한 지역에 투입돼 활동할 일꾼들이 필요하다며 지난 3월 민통선 안에 국경선 평화학교를 열었다. 피스메이커(peacemaker)를 양성하는 무학위 3년 과정이다. 지난달 학교가 첫 학기를 마쳤다.



 21일 정 목사를 만났다. 하루 종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다. 정 목사는 대뜸 백마고지가 코앞인 소이산으로 안내했다. 산은 높이가 362m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 날씨 좋은 날은 탁 트인 철원 평야는 물론 북한땅 평강고원이 지척처럼 보인다”고 했다. 정 목사 보폭으로 1200걸음(그는 걸음 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20분쯤 오르자 정상이었다. 역시 비구름뿐이었다. 북한땅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역 관할부대인 육군 6사단이 정상에 커다랗게 그려 놓은 부대 마크가 선명했다. 정상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지하벙커도 있다. 몇 년 전까지 미군이 사용하던 시설이다.



전쟁 반대하는 퀘이커교 박사



 정 목사는 “이곳에 올 때마다 60년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100만 명 넘는 애꿎은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정말 소득 없이 대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민족이 정말 어리석구나, 하나님께 용서해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죠”라고 했다. 때문에 “2년 가까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후 3시면 산에 오른다”고 했다. 그는 영국에서 일체의 전쟁 행위에 반대하는 퀘이커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원으로 오기 전까지 목회했던 서울 청담동의 새길교회는 예배당·담임목사·소속 교파, 세 가지가 없는 평신도 신앙공동체로 유명하다.



 - 순탄한 길을 놔두고 남북평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9년 나이 마흔아홉에 마침 안식년을 맞았다. 인생 후반기 무얼 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다. 미국 동부의 영성 공간 펜들힐에서 침묵의 기도를 드렸다. 어느 순간 가슴 속에 떠오른 게 철원에 가 남북평화 운동을 하는 거였다. 6개월 간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이 길이 맞느냐고. 하나님의 뜻은 분명했다. 오히려 급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평화학교, 해보니 어떤가.



 “10명이 등록했는데 2명이 그만 두고 8명이 남았다. 이게 과연 될 일인가 싶은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학생들 가르치며 3년과정 만드는 중



 평화학교의 3년 교육 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만들어가는 중이다. 예산도 순전히 정 목사가 후원을 끌어와 충당한다. 평화학, 동서양 고전, 유기농법, 영어 등 통일 일꾼의 소양을 키울 과목을 가르친다. 종교학자 길희성씨, 박경서 전 UN인권대사,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등이 강사진이다.



 - 이런 노력을 성경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내 주관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평소 뿌리 깊은 생각이 기도를 통해 떠오른 걸까. 어쨌든 통일의 순간이 닥쳤을 때 북한에서 인생을 걸고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평화학교 운영이 내게는 목회 활동이다.”



 정 목사는 “평화학교가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 10곳은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최소한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신앙인이었다.



철원=신준봉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