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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 지원 받던 나라서 명품 무기 '신궁·K-9' 수출 국가로

우리나라가 독자개발한 사거리 40km K-9 자주포. [사진 중앙포토]


지난해 우리나라는 23억 5000만 달러(약 2조 6261억원)의 무기를 수출했다. 세계 10위권이다. 탄약에서부터 자주포, 함정, 초음속 훈련기에 이르기까지 수출 품목도 다양화됐다. 우리나라에 기술을 전수했던 나라들과 경쟁을 벌이며 세계 무기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방산 수출 10위권 진입
헬기 '수리온' 자체제작 실전배치
방위산업 수출 7년 새 10배로 급증



 6·25전쟁 당시 대부분 미국에서 무기를 지원받아 전쟁을 치렀던 상황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세상이 놀라울 정도로 변함)라는 표현이 딱 맞다.



 특히 육군은 지난해 말 우리 손으로 제작한 헬기 ‘수리온’을 실전에 배치하며 자주국방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던 유도미사일이나 전차도 이제 자체 제작하는 수준을 맞으며 방위산업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수직발사대를 이용해 발사시간을 줄이고, 근접 신관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폭풍과 파편으로 적기를 요격하는 세계적 수준의 첨단무기로 꼽히는 천궁과 미국도 개발을 포기한 소총 K-11 등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철통 보안 속에 꽁꽁 묶여 있던 군사관련 기술을 민간에 활용해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노리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레이더 장비 옆에서 초콜릿이 녹는 모습을 보고 개발된 전자레인지(마이크로 웨이브)나 군사 통신체계로 개발된 인터넷이 상용화된 미국 사례처럼 우리 나라도 군사기술을 통한 민-군 윈윈 전략이 가능해진 셈이다.



우리나라의 방위산업은 원조→수입→모방개발→자체개발→수출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방위산업의 시작은 1970년 "북한보다 성능이 우수한 병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의지가 작용했다. 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침투와 북한의 미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터지면서 자주국방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마침 미국도 자국 방위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는 닉슨독트린(69년)을 발표하고, 미 7사단을 한국에서 철수(71년)하는 등 안보위기가 고조됐다. 하지만 기술도 산업기반도 없던 시절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에 나선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관계자는 “당시에는 무기 개발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며 "정부는 군과 산업계, 과학계 등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미국 무기를 모방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71년 말 병기 개발사업, 이른바 ‘번개사업’을 시작한 한국은 6개월 만에 카빈소총·기관총·수류탄·유탄발사기·박격포 등 여덟 종류를 베끼는 데 성공했다. 경제여건상 별도의 공장을 설립하기도 어려워 기존 민수용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방위세를 신설하고 방위성금을 거둬 재원을 마련했다. 이 재원으로 74년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본격화했다. 자주국방을 위한 무기 생산 분야의 확대인 셈이다. 이에 따라 M16 소총과 탄약, 포탄, 수류탄, 한국형 군용 지프를 비롯해 133t급 고속정 건조가 이뤄졌다. 이어 호위함과 초계함 건조도 시작했다.



 정부는 82년 시작된 2차 율곡사업부터 모방에서 ‘방위산업의 자립기반 구축’으로 전략목표를 수정했다. 육군이 사용할 K-1전차와 한국형 장갑차(K-200) 생산이 이뤄졌고, 자주포(K-55)도 만들었다. 고속정·초계함·호위함 건조와 함께 87년(3차 율곡사업)에는 1200t급 잠수함을 건조했다.



 조립 생산이긴 하지만 ‘제공호(制空號)’로 불리는 F-5E/F 전투기와 500MD 헬기도 만들었다. 우리 공군 주력기인 F-16 전투기도 이 당시 조립 생산됐다. 육·해·공군의 무기를 우리 손으로 제작하게 된 셈이다.



 이후 세 차례의 율곡사업과 전력정비사업(92~96년)을 통해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90년대 중반 들어선 정밀유도 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명품으로 꼽히는 K-9 자주포를 비롯해 경어뢰(청상어), 함대함 유도탄(해성), 장거리 대잠어뢰(홍상어), 휴대용 지대공 유도미사일(신궁) 등을 자체 생산했다. 유도무기·전투기·훈련기·잠수함·구축함 등 첨단 무기 생산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전투기와 몇몇 고가(高價)의 첨단무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무기를 자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K-2 전차(흑표)와 K-21 보병장갑차, K-10 탄약운반차 등 명품 무기로 꼽히는 제품들을 만들어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고등훈련기인 T-50을 경공격기(FA-50)로 개량했다. T-50은 전투기의 모국인 미국으로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함께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부르는 게 값인 무기통제시스템 등 소프트웨어 기술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이같은 성과로 방산업계의 수출은 2006년 2억 5000만 달러(약2793억원)에서 7년만에 10배로, 2006년 44개국에 불과했던 수출 대상 국가는 지난해 80여개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를 두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방위산업 분야는 더욱 그렇다”며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무기 제작 기술을 본다면 더욱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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