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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나 살짝 좀 서운한 마음이 드는데?"

혜민 스님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의외로 ‘인간관계’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다. 관계는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제3의 외적 요인에 의해 깨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속으로 기대했는데 무시당할 때 드는 게 서운한 감정
의도적인 건 거의 없어 … 그때그때 느낌 꼭 표현해야

하지만 관계가 어떻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종 ‘서운하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불쑥 올라올 때부터인 것 같다. 즉, 서운한 마음은 잘못하면 관계가 어긋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초기 경고등과 같다. 사람들에게 내가 강조하며 말하는 것 중 하나인데, 서운함은 그때그때 꼭 말해야 한다. 그 마음을 눌러놓으면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폭발하게 되고 도저히 풀 수 없는 관계가 돼버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들은 “나, 너한테 좀 서운해”라는 식의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hurt), 슬퍼(sad), 후회돼(regret)” 같은 식의 유사 표현들은 자주 들을 수 있지만 “나, 너한테 좀 서운해”라는 정확한 표현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서운하다’라는 우리말의 의미가 조금 특별해서인 것 같다. ‘서운하다’라는 말은 내가 마음속으로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했는데 상대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내 기대를 저버리거나 무시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즉, ‘내가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듣겠니? 네가 내 표정이나 상황을 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맞춰줘야지 왜 그걸 못해?’가 바로 ‘서운하다’이다.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영어나 독일어와는 다르게 일본어나 우리나라 말은 대화를 할 때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많이 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뿐만 아니라, 전후 상황을 염두에 둔 얼굴 표정이나 몸동작, 억양이나 목소리 크기 등으로도 의사 표현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말도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완곡한 표현을 많이 쓴다. 그래서 영어보다 우리말은 눈치가 더 있어야 원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제아무리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부 읽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타심통의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맞춰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서운함을 느끼는가 살펴보자.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부모님이 다른 형제자매에게 해준 것에 비해 내게 좀 무관심하다고 느낄 때, 즉 내가 차별받았다고 느낄 때 서운함이 확 올라온다고 한다. 반대로 가족을 위해 인생을 다 바쳐 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느껴져 서운해하는 아버지도 많았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시댁식구와의 갈등에서 자신의 편을 들지 않아 서운한 경우도 있고, 연애를 하는 젊은 남녀의 경우에는 초기에 보여줬던 배려는 온데간데없고 묻는 말에 대답조차 건성인 상대에게 서운해진다. 회사에서는 내 의견을 매번 무시하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서운하다.



 서운함을 푸는 방법은 서운한 마음이 처음 올라왔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방법’과 ‘대화를 통해 푸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일수록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봐야 한다. 내가 나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왜 자꾸 상대에게 기대려고만 하는지, 왜 항상 받으려고만 하는지 살펴보자. 또한 내 어떤 성장 배경이나 트라우마 때문에 남들보다 더 쉽게 서운함이 밀려오는지 깊이 성찰해 보자. 그리고 서운함이 들 때 나도 예전에 누군가에게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운하게 한 일은 없었는가 반성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화를 통해 푸는 방법은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을 때 쌓아두는 것이 아니고 초기에 표현하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말로 하느냐고 힘들어할 수도 있겠지만 서운함을 표현해도 괜찮다. 왜냐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일부러 서운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계획해서 서운하게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걸 표현하지 못하면 감정의 응어리가 단단해지면서 서운했던 것이 ‘꽁’한 감정으로 변하고 훗날 ‘한’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태까지 끌고 와서 뒤늦게 표현하려고 하면 눌러놓았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상대를 향해 퍼붓게 된다. 그래서 필히 초기에 그 느낌을 놓치지 말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다만 표현을 할 때는 절대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투가 아니고 내가 지금 느끼는 상태만을 진지하게 묘사하는 것이 좋다. 처음엔 멋쩍을 수 있어도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또한 내 감정을 누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다. “나 살짝 좀 서운한 마음이 드는데?”라고 말이다.



글= 혜민 스님

일러스트= 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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