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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모래시계'는 계속 돌아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
적적할 때 읊조리는 노래가 있다. 러시아 노래 ‘백학(白鶴)’이다. 세계대전 때 독일 전선에서 숨진 체첸 병사를 기리려 지은 시(詩)에 민속 가락을 붙인 조곡이다. 장중한 멜로디가 고상한 위안을 주는 노래다. 먼 나라의 국민가요가 애창곡이 된 것은 전설적인 드라마 ‘모래시계’ 덕이다. 노래가 깔리며 드라마가 시작할 때면 1995년 밤 서울의 거리는 조용해졌다. 잘 만든 드라마는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며 의식까지 바꾼다.



'리스크 테이커' 김종학 PD의 비극
창조적 모험가 억누르는 풍토
수사관행·제작환경 되돌아봐야

 모래시계를 연출한 김종학 PD가 출연료 미지급의 잡음에 휘말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업적·명성에 비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 뒤늦게 공개된 유서에는 ‘혼’이 자주 등장한다. ‘내 혼이 들어간 작품의 명예를 훼손…’ ‘후배 PD들이 혼을 담는 모습에서…’ 등. 혼을 담는 것은 창조다. 경영용어를 빌리면 창조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위험 감수)의 산물이다. 그는 줄곧 담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위험을 무릅썼던, 굶주린 리스크 테이커였다.



 그는 크게 네 번의 모험을 했다. 출세작인 ‘여명의 눈동자’가 첫 번째다. 국내 첫 블록버스터급 드라마의 제작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70억원의 제작비를 썼다. 1990년 초반의 경제규모로 볼 때 망하면 끝장나는 제작비였다. 드라마는 성공했고 그는 한국드라마를 도약시킨 인물이 됐다. 이후 대하 액션시사극에 도전한다. 생존해 있는 정치깡패·특수부검사·공작정치인을 모델로 해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이것이 모래시계다. 이번에도 목표는 이루어졌고 그는 드라마계의 지존이 됐다.



 세 번째 모험은 해외를 겨냥한 한류 드라마의 제작이었다. 4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태왕사신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웅장한 컴퓨터그래픽과 판타지액션을 구사했다. 10여 개국에 수출했음에도 워낙 많은 제작비를 써 소송에 휘말린다. 이번에도 그는 승부를 멈추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3D 드라마, ‘신의’ 제작에 도전한다. 하지만 3D 열기가 급격히 식으면서 결국 계획을 바꾼다. 실패의 후유증은 컸다. 고소·투서가 이어지고 결국 수사까지 받게 된다.



 새 사업을 시작할까 말까, 새 사람을 만날까 말까. 갈림길에 서면 사람들은 고독해진다. 새 길을 취하면 안정은 없다. 반대로 새 길을 피하면 창조는 없다. 선악은 없다. 안정과 창조를 각각 양팔저울에 올려놓고 그 쏠림을 봐가며 갈 길을 정한다. 외환위기·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리스크 테이킹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학생들은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사법시험·의대에 몰린다. 수만 명이 공무원시험에 수 년을 매달린다. 기업은 새 사업 진출에 몸을 사리고 정부도 지속사업 위주로 지원한다. 리스크 테이커에게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끌어내리는 풍토까지 생겼다. 창조경제는 이런 안정추구의 반작용일지 모른다.



 사회는 창조적 리스크 테이커들을 도와줘야 한다. 그들의 위험 부담을 분산시켜주고 실패했을 때 재기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마음 놓고 창조에 집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결과가 실망스러워도 재기의 싹을 꺾을 만큼 가혹한 매를 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김종학 PD의 제작환경은 그렇지 못했다. 본인의 경영마인드가 부족한 상태에서 위험을 나누고 지원을 받을 시스템은 거의 없었다. 그는 유서에서 무리한 검찰 수사가 재기를 가로막는다고 억울해 했다. ‘자네(검사)의 공명심에…억지로 꿰맞춰…억울하이.’ 혐의에 비해 가혹한 압박을 가했는지 확인해봐야 할 대목이다.



 창조적 리스크 테이커였던 모래시계 PD의 일생은 그 자체가 묵직한 메시지다. 위험을 무릅쓴 모험심은 눈앞에 안주하려는 이들에게 강한 자극제다. 위험을 살피지 못한 저돌성은 무모한 상상을 하려는 이들에게 독한 진정제다. 자극제든 진정제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창조적 리스크 테이커를 억눌러서는 미래가 막막하다. PD는 갔지만 사회의 밑바닥에서 모래시계는 계속 돌아가야 한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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