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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정치인의 거친 입을 어쩔 것인가

김영희 대기자
로마의 대정치가 키케로(기원전 106~43)는 말 잘하는 변호사·변론가였지만 자신의 언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수사학을 공부하러 그리스로 유학을 갔다. 그는 로도스 섬에 학원을 세워 수사학을 가르치는 아폴로니오스 몰론의 문하에 들어가 수사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웠다. 몰론이라는 사람은 외국인으로는 전례 없이 로마 원로원에 초청되어 연설한 당대 최고의 변호사였다. 몰론은 키케로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바로 핵심을 말하라. 청중을 울리고 웃겨라. 청중이 열광하면 얼른 자리에 앉아라. 눈물처럼 빨리 마르는 것이 없다.” 거기서 키케로가 두 계절 배워 정리한 것이 서양 사회에 오늘까지 전해지는 수사의 기본이다. 그는 말하는 기술(웅변)이 없으면 지식이 힘을 못 쓰지만, 지식이 없이 입으로만 하는 웅변은 쓸모없다고 가르쳤다.



참으로 한심한 건 초선마저
저질 발언 대열에 끼는 것
마이크 잡기 전에 기도하라
한국 정치인들의 연설 중에
왜 명연설이 없나 반성해야

 네덜란드 인문주의 신학자 에라스뮈스(1466~1536)는 『어리석음의 찬미』라는 책에서 그리스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말을 소개했다. “인간은 두 개의 혀를 가졌다.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혀, 또 하나는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다.” 몰론과 에우리피데스의 경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늘 우리 정치인들의 말본새는 기본도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두 개의 혀 중에서 상황에 따라 말하는 혀만 사용할 뿐 진실과 사실 관계는 안중에 없다.



 라틴어로 웅변을 의미하는 오라티오(Oratio)의 어간(몸통)은 이성과 지성이라는 의미의 라티오(Ratio)다. 상황만 좇는 것은 대중의 인기만 좇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대중을 끌어모아 상대 진영을 압도하기 위해 가장 자극적이고 천박한 용어로 말한다. 인터넷을 타고 자신의 말이 순식간에 확산되는 데 도취한 정치인은 눈물처럼 빨리 마르는 것도 없다는 몰론의 말을 모른 채 자리에 앉지도 않고 무대에서 내려오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의 찰나적 후광을 즐기다 결국은 역풍을 맞는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천박·저속하고 때로는 엽기적인 말을 한자리에 나열하면 말의 과장 없이 무지와 무교양의 전시장이 될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비판할 때 풍자와 비유를 사용할 줄 모른다. 인신공격성 발언을 예사로 한다. 이건 교육과정을 통해서 수사(Rhetoric)와 커뮤니케이션을 배울 기회가 없는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언어 수준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당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의 후손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을 모욕하는 폭언이다.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은 홍준표 경남지사를 히틀러에 비유한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의 표본이다. 문재인·안철수의 대선 후보 단일화를 비판한답시고 홍어X라는 상스러운 표현을 쓴 국회의원,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박자고 한 국회의원, 대통령의 대일 정책을 등신외교라고 중상한 국회의원, 여성들 앞에서 성희롱적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은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극소수 광적인 지지자들의 환호를 즐겼다. 악명을 떨쳐서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이 정치적으로 플러스가 된다고 착각한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정치인들의 언어 수준을 개탄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인들에게는 자정 능력이 없다. 그 정치인이 그 정치인인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후의 보루는 시민사회다. 정치인들은 정치 이전에 국어를 오염시키고 있다. 국어학회가 궐기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자라나는 세대에 평생 갈 해악을 끼친다. 지역마다 어머니단체들이 일어나야 한다.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유머랍시고 음담패설 수준의 성희롱 발언을 한다. 여성단체들이 학부모단체들과 함께 궐기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천박한 말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전도유망한 초선 의원이 저질 발언의 대열에 끼는 것이다. 국회의원 오래 한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의 구정물에 푹 찌든 사람들이다. 그들의 언어 수준은 구제불능이다. 그러나 정치 초년생들은 달라야 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선배 정치인들을 열심히 흉내 낸다. ‘귀태’ 발언으로 소모적인 풍파를 일으킨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솔선해서 다른 초선 의원들과 함께 수사의 기본부터 공부하면서 고운 말 쓰기 운동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아테네의 대정치가 페리클레스(기원전 495~429)처럼 요즘 말로 마이크 잡기 전에 제가 하는 말이 옆길로 빠지지 않게 보살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기 바란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연설 중에 어느 것 하나도 만인의 입에 오를 명연설이 나오지 않은 이유를 치열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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