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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신문지 위 그림 설계도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일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信)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 차다.”



 1967년 10월 13일, 54세의 수화(樹話) 김환기(1913∼74)는 뉴욕의 작업실에서 이렇게 적었다.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인 그는 만년에 이 낯선 땅에서 수만 개의 점으로 이뤄진 자기만의 양식을 완성한다. 위의 일기는 그의 대표작인 ‘점화(點畵)’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화는 한국 미술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근대에서 현대 미술로 옮겨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김환기, 무제, 1-Ⅱ-68, 1968, 종이에 유채, 55×37㎝. [사진 갤러리현대]
 홍익대 미대 초대 학장을 지내고,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문 명예상(1963)을 수상하는 등 국내에서 입지가 탄탄했음에도 수화는 새로움을 찾아 파리로, 뉴욕으로 떠돌았다. 가진 것 다 내려놓고 낯선 땅으로 간 화가는 외롭고 가난했다. 재료값 충당도 만만치 않았을 터다. 그런 화가의 눈에 폐지 수순을 밟을 일만 남은 ‘뉴욕 타임스’가 들어왔다. 낡은 전화번호부도 그림 재료로 쓰였다. 큰 작업을 앞뒀을 때는 이런 폐지를 바탕재로 한 그림들이 하루에도 5∼10점씩 완성됐다. 이 ‘신문지 유화’는 그의 조형 실험의 기본 설계도였다. 그림으로 일기 쓰듯, 기초 체력 다지듯 종이의 특성을 실험한 작업이 쌓여가면서 수화 고유의 점화 미학이 탄생했다.



 “68년 뉴욕 타임스는 지질(紙質)이 오늘보다 훨씬 좋았다. 하도 종이가 좋아서 신문지에 유채를 시도한 김환기는 종이가 포함한 기름과 유채가 혼합되어 빛깔에 윤기가 돌고 꼭 다듬이질한 것과도 같은 텍스처가 나오는 것이 재미난다면서 한동안 종이에 유채 작업에 몰두했다”고 부인 김향안(1916~2004)씨는 회고했다. 수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전시장에 신문지 크기 그림들이 나왔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더 잘 보인다. 종이작업 바탕엔 ‘Salesman’ ‘IBM SUPERVISOR’ 따위가 인쇄돼 있다. 환기만의 독특한 파란 색조가 청신하며, 그 안에 빨갛고 파란 네모는 해와 달을 연상시킨다. 김환기는 이렇게 신문지에 우리 산을, 해와 달을 그렸고, 이어 대형 캔버스에 수천 수만 개의 점을 찍었다. 한 점 한 점 번지며 수묵화의 느낌을 낸 이 점은 저 우주에 촘촘히 박힌 별이기도, 너와 내가 만나 이룬 인연이기도, 고국의 그리운 산하와 친구들이기도 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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