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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고정애
논설위원
치세술(治世術)의 미국 드라마 버전이랄 수 있는 ‘더 웨스트윙’에 나온 얘기다. 제드 바틀릿 대통령이 한 장관에게 물었다. “친구가 있나.” “당신보다 똑똑한가.” “인생을 걸고 그를 신뢰할 만한가.” 모두에 “예”라고 답하자 바틀릿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바로 당신의 비서실장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그런 비서실장이 있다면 문재인 민주당 의원일 게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 6살 차이를 뛰어넘는 친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했다.



 여권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을 때 그로선 울분이 솟는 게 당연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육군참모총장이 국가정보원장이 되더니 대화록을 까고 “군 통수권자가 영토를 포기했다”는 비유를 쓰는 등의 ‘불충(不忠)’을 하는 것도 참기 어려웠을 게다. “노가리”라며 조롱하던 9년 전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모습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응전하고 싶었을 게다.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노여웠다 또 기뻐할 수 있고 화났다가도 다시 즐거워질 수 있지만 망한 나라는, 죽은 사람은 되살려낼 수 없다(『손자병법』). 지도자라면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손자의 말대로 싸움의 성패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느냐로 가려질 뿐이다.



 그의 응전은 성공했는가? 확언컨데 아니다. 그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대화록을 공개토록 했다가 정작 기록원에서 대화록이 발견되지 않자 “NLL 논란을 더 이상 질질 끌지 말고 끝내자”고 했다. 좀 거시기한 비유지만 판을 키운 사람이 돈을 잃을 듯하니까 제대로 이유도 안 대고 판을 접자고 한 꼴이어서 ‘실력’은 물론 ‘상도의’까지 의심받게 됐다. 문제는 그만 욕먹는 게 아니란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초(史草)’를 없앤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게 됐다. 수렁에서 건져내긴커녕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은 격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람으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안타까움을 이리 토로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얘기가 나왔을 때 오히려 잘 설명하면 됐을 터인데 안 하더니…. 대화록 공개까지 하고 동네 싸움도 그리 안 한다.” 그에게 물었다.



 -친노(親盧)들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싸움을 거칠게 한 사람 중에 저한테도 생소한 인물이 있더라. 차라리 친문(親文·친문재인)이라고 하지. 노 전 대통령이라면 ‘그래 좋다. 내가 나라 팔아먹었다 치자. 대화록 공개는 못한다’고 했을 거다. 친노란 딱지를 붙여서 돌아가신 분을 정쟁의 한 가운데로 끌어들일 일이 아니었다. 국민이 다 판단하고 있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이 그랬을진 모르겠다. 김 교수가 그리 말할 정도로 문 의원의 대처가 잘못됐다는 의미만은 사자.



 정치는 흐름의 싸움이다. 기세가 중요하다. 대화록 미발견에 문 의원의 휴전 제안이 맞물리면서 민주당의 힘도 확 빠졌다. 국정원과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을 개혁할 동력이 약해진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쟁과 무관한 양 거리를 두면서 재벌과 전직 대통령 때리기 등의 손쉬운 득점 전략을 구사할 뿐 막상 정책다운 정책을 못 내놓고 있는 상황을 견제하고 있지도 못하니 결과적으론 국민도 손해다.



 그는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당은 별로인데 사람은 괜찮다”는 평을 들었다. 이젠 그 역시 별로라고 할 것 같다. 그의 잘못인가, 그의 귀를 잡고 있다는 소수의 친노 참모들 때문인가. 아니면 ‘아버지’ 비판에 정색하는 이를 지탄하던 그도 어느새 ‘친구’를 무조건 감싸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는 걸까. “이제 우리는 노 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분도 그걸 원할 거다.” 적어도 2011년 6월의 그는 그랬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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