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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동선이 없어요, 스스로 선택하도록 만들었지요

민현준 홍익대 교수가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 섰다. 나지막한 현대식 건물 위로 서울시 문화재인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의 지붕이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땅이 품은 역사와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숙제라면, 이 곳은 무척 난이도가 높은 땅이다. 올 11월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위치한 종로구 소격동 165번지. 경복궁 바로 길 건너편인 이곳에는 조선시대 왕실가의 사무를 총괄하는 종친부가 있었다. 해방 후에는 국군수도병원이 들어섰다가 1971년 국군보안사령부(90년대 기무사령부로 개칭)로 바뀌면서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 민현준 홍익대 교수
지상 3층 지하 3층, 공사 마무리
6개 마당 통해 자유롭게 출입
오래전부터 있던 건물처럼 설계



 2011년부터 시작된 공사가 최근 마무리되면서 미술관이 이제 가림막을 벗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2일 오후 미술관 건립현장에서 만난 설계자 민현준(45)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다양한 논란과 사건사고가 겹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도 “설계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조용한 랜드마크=2만7264㎡의 대지 위에 세워진 연면적 5만2101㎡ 규모의 대형 건물이지만, 눈에 확 띠는 카리스마는 없다. 삼청로 쪽으로는 벽돌로 된 옛 기무사 건물(등록문화재 375호)이 그대로 남아있고, 뒤편에는 현대적인 유리건물 위로 살짝 고개를 빼고 서 있는 종친부(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호) 경근당 지붕이 보인다.



 2010년 118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민 교수의 설계 컨셉트는 ‘무형의 미술관(Shapeless Museum)’이었다. “튀는 형태로 자신을 주장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주변 역사적 유물들의 배경이 되는 미술관을 구상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듯,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랬죠.”



 건물 외장재로는 흙으로 구운 옅은 갈색의 테라코타 타일과 거칠게 마감한 회색 화강석을 썼다. 한옥의 암키와처럼 살짝 안으로 파인 테라코타 타일은 기무사의 붉은 색 벽돌과 은은하게 어울린다. 건축물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빈 공간, 즉 ‘마당’이다. 종친부 건물 앞의 널찍한 마당을 비롯해 삼청동길 쪽의 열린 마당, 북촌길 쪽의 도서관 마당 등 총 6개의 마당이 들어서 여유로운 느낌을 더한다. 민 교수는 “마당은 야외 미술품 전시장이 되는 동시에 이웃 주민들의 휴식처 역할도 한다. 마당을 통해 어떤 방향에서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구조”라고 설명했다.



서울 삼청로 쪽에서 바라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관객이 정하는 동선=지하 3층, 지상 3층의 내부에는 다양한 크기의 전시장 7개와 공연장, 카페, 강의실 등이 들어선다. 안으로 들어가니 미로처럼 헷갈린다.



 “관람 동선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바로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관람자의 동선을 지정해주고 그 동선을 따라 돌아보도록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주체가 되어 동선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독일의 ‘포크방 미술관’ 등 현대 미술관들이 도입하고 있는 ‘군도형(群島形) 미술관(Archipelagos Museum)’ 개념을 적용했다. 미술관 내에 각각의 공간들이 섬처럼 흩어져 있고, 관람객들이 필요에 따라 찾아가 체험하는 형식이다. 한번 찾아간 김에 모든 것을 봐야 하는 미술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도심형 미술관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사연이 많은 땅이었기 때문일까. 3년여에 걸친 설계와 공사 과정도 다난했다. 설계 중에는 문화재심의 4건을 비롯해 총 16개의 심의를 31번에 걸쳐 진행해야 했다. 지난해 8월에는 4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비극적인 화재사고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무리한 공사일정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논쟁을 거쳐 탄생한 건물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고 싶다”며 “앞으로도 여러 논란이 있겠지만, 많은 이들의 의견이 반영돼 점점 더 그윽하게 익어가는 미술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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