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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 설산

동서양 사상에 정통했던 김흥호 목사가 생전에 이화여대에서 고전 강의를 하고 있다. 노자의 사상을 담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타계한 김흥호(1919~2012) 목사는 산을 참 좋아했다. 특히 눈 쌓인 설산(雪山)을 아꼈다. 한 번은 제자가 뉴질랜드에서 엽서를 보냈다. 만년설 사진이 담긴 엽서는 늘 김 목사의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말년에 거동이 불편할 때는 아예 머리맡에 두고 보았다.

고 김흥호 목사 ‘노자’강의 책 나와
노자는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사상
'무위자연'과 '하나님 사랑'은 통해
강하려 하지 말고 약해지라 주문



 “설산이 있어야 얼음이 있고, 얼음이 있어야 물이 쉼 없이 흘러내린다. 설산은 철인(哲人)이다. 산에서 물이 자꾸 흘러 내려와야 사막이 옥토로 변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편하게 산다. 그리고 만물이 자라는 이상세계가 된다. 그러니 산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얼음이 어니까.”



 개신교 목사이면서 동서양 철학에 통달했던 그에게 ‘노자(老子)’도 그런 설산이었다. 그가 이화여대 연경반에서 2004년 1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47회 강의한 ‘노자’가 최근 책으로 엮여 나왔다.



 말년의 김 목사가 문병 온 제자에게 “‘노자’만 나오면 기독교, 불교, 유교에 이어 4대 종교의 책이 다 나오는 거다. 언제쯤 나올 것 같은가?”라며 몇 번이나 물었던 책이다. 우선 『노자·노자익 강해』(사색) 네 권이 나왔다. 나머지 네 권은 연말께 나오니 상편에 해당하는 셈이다.



 첫 장에서 김 목사는 독자에게 “도(道)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건 노자의 물음이다. “인(仁)이란 무엇인가?” “나(我)는 무엇인가?” “신(神)은 무엇인가?”라는 공자와 붓다, 예수의 물음을 모두 뭉친 물음이기도 하다.



 여기에 김 목사는 이렇게 답한다. “도란 ‘나’를 알자는 것이다.” ‘나’의 존재 원리를 알자는 의미다.



 김 목사의 스승은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다. 다석은 노자를 가장 사랑했다. “노자는 기독교에 가장 가까운 사상”이라고도 했다. 책의 서문에는 함석헌(1901~89)과 함께 다석에게서 ‘노자’를 배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매주 한 차례, ‘노자’를 배우려고 신촌에서 터벅터벅 걸어서 스승의 집을 찾아갔던 김 목사는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했다.



 이유가 뭘까. 그 시간이 바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하면 흔히 떠올리는 말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현실을 훌훌 털어서 벗어버리고 산 속에나 들어가 안빈낙도하면서 사는 삶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노자가 바라봤던 우주는 이와 달랐다. 노자는 우주를 ‘허이불굴 동이유출(虛而不屈 動而愈出)’이라고 했다. 텅 비어 있지만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것, 그게 무위자연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우주는 사라짐과 소멸, 생산과 창조가 맞물려 돌아가는 적극적인 생명이라는 뜻이다.



 김 목사는 이 대목을 특히 강조한다. 그래서 노자의 철학을 ‘사랑의 철학’이라고 명명한다.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는데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없이 계신 하나님, 그것이 사랑이다”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공자와 노자는 동시대 인물이었다. 젊은 공자는 대선배격인 노자를 만난 뒤 “용(龍)”이라고 표현했다. 용은 세상 곳곳에 비를 내리지만 정작 자신은 숨어버리는 존재다. 이런 맥락에서 노자와 기독교의 ‘없이 계신 하나님’은 서로 통한다.



 김 목사에게 에고(ego)와 무위(無爲)는 저울 위에 놓인 두 물건이다. 한 쪽이 가라앉아야 다른 한 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무위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는 뜻도 되지만, 우주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더 할 것이 뭔가. 이런 뜻도 있다. 우주의 움직임이 결국 내 움직임이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같이 일하는데 더 할 것이 뭐 있는가”라며 ‘무위’에 담긴 속뜻을 풀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약해지라”고 주문했다. 에고를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못한다. 자꾸 강하려고만 하지, 약하려고 하는 생각은 못 한다. 약하다는 건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뜻이고, 또는 진리와 하나가 된다. 그런 뜻이다.” 김 목사는 이처럼 약함이 진정한 강함이 되는 이치를 ‘노자의 무위’를 통해 설한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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