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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108> 노숙자와 화장실

1998년 10월 지하도에 종이박스 등을 깔고 앉거나 누워 있는 노숙자들. [중앙포토]


1998년 외환위기의 삭풍은 매서웠다. 멀쩡한 직장인이, 사업가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았다. 98년 8월 서울시에서 조사한 노숙자 수는 2100명이었다. 추정치에 불과했다. 3000~4000명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노숙자는 과거 부랑인과 달랐다. 근본적으로 다른 해법이 필요했다.

외환위기 삭풍에 내몰린 노숙자 그들이 원한 건 …



 서울시의 김재종 보건복지국장과 사회복지과의 백무경 사무관에게 실무를 맡겼다. 이들과 함께 현장을 다녔다. 서울 구세군회관에 가서 보니 20명 안팎의 노숙자를 모아 ‘그룹홈’(소규모 공동 자활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30명 규모의 노숙자 그룹홈을 만들고 쉼터와 일터를 제공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서울시는 노숙자대책협의회를 만들었다. 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구세군 그룹홈에서 만난 중소기업 사장 출신의 노숙자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98년 9월부터 시에서 지원하는 사회복지관 등의 시설을 활용해 그룹홈 형태의 노숙자 쉼터인 ‘희망의 집’을 100여 곳 만들었다. 쉼터에 오는 노숙자에게 우선적으로 공공근로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 2000명 가까운 노숙자들이 쉼터와 일터를 찾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쉼터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노숙자가 적지 않았다. 98년 11월 노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술·담배 금지, 출입시간 제한 등 쉼터의 통제를 받기 싫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자유가 없어 싫다’는 의미였다. 추운 겨울이 오는데 노숙자들을 그대로 길에 둘 수 없었다. 세계가 한국의 외환위기에 주목하고 있었다. 노숙자가 길에서 집단 동사(凍死)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큰일이었다. 국가 신인도가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절제된 음주, 출입 자유 등을 허용하는 ‘자유의 집’을 만들었다. 비어 있는 방림방적 옛 기숙사 건물을 활용했다. 서울의 노숙자 대책에 대한 CNN 등 국내외 언론의 반응은 좋은 편이었다.



 ‘노숙자 다시 서기’ 프로그램은 본궤도에 올랐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시의 열악한 화장실 수준이 고민이 됐다. 노숙자 정책에 열과 성을 다한 백무경 사무관을 서울시 환경관리실 화장실문화수준향상반장으로 임명했다.



 먼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역에 시범 공중화장실 25개소를 만들었다. 1만 개 넘는 음식점에 화장실 소모품 비용을 지원했다. 외국인이 많이 다니는 인사동, 이태원, 명동 등 도심지의 300여 개 빌딩 화장실을 개방하는 조치도 했다. 시민과 외국인 모두 쉽게 개방 화장실을 찾을 수 있도록 800여 개 안내 표지판도 설치했다. 모두 빌딩 주인들의 협조가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공무원이 주도하는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화장실은 문화다.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시민운동으로 추진하는 게 중요했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화장실 새마을운동’ 비슷한 캠페인이 시작됐고 시에선 행정·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단기간에 서울의 화장실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월하는 계기가 됐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 당시 실무 백무경 전 사무관



‘자유의 집’서 한달 함께 숙식

설 차례상 차리고 같이 울어




고건 전 총리는 백무경(64·사진) 전 서울시 강서수도사업소장을 “일에 대한 온도가 남다르게 뜨거운 현장 중심의 열정파”라고 설명했다. 백 전 소장은 1990년대 후반 서울시의 노숙자·화장실 문제를 현장에서 풀어냈다.



 - 당시 노숙자 대책은.



 “IMF 외환위기로 노숙자가 급증했고 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 위에서 ‘싹 쓸어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경찰 기동대를 동원해 새벽에 싹 데려다가 알코올중독자, 정신병자 등으로 분류한 뒤 수용소에 넣으라는 얘기였다. 안 될 일이었다. ”



 - 기억에 남는 일은.



 “노숙자를 위한 ‘자유의 집’을 그때 처음 만들었고 나도 한 달 동안 거기서 먹고 잤다. 그런데 음주를 허용하다 보니 밤마다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고민한 끝에 ‘어깨’ 출신의 노숙자에게 반장 역할을 맡겨 해결했다. 1998년 겨울은 정말 추웠다. 그런데도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노숙자들이 있어 아이디어를 냈다. 지방의 온천호텔 하나를 어렵게 빌려 노숙자들이 목욕도 실컷 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열었고 노숙자들이 몰려왔다. 설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노숙자들을 위해 자유의 집에서 공동 차례상도 마련했다. 그때 차례를 지내며 우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같이 울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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