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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에어컨 좀 켭시다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10일 MLB 애리조나의 홈 피닉스. 야구장 밖은 섭씨 40도를 넘어섰다. 그런데 구장 안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류현진(LA)은 긴팔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중계진은 “개폐형 지붕과 에어컨 덕분”이라고 했다. 올여름 피닉스의 최고 온도는 48.3도. 바로 옆 네바다주(州) 라스베이거스는 46도를 찍었다. 6월 29일 라스베이거스의 어떤 주택에서 한 남성이 사망했다. 사인은 에어컨 고장이었다.



 더위가 개미지옥처럼 산 것을 집어삼키는 사막에 라스베이거스가 세워진 것에 대해 문화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도시를 만든 건 에어컨(저서 『걷기의 역사』)” 이라고 단언했다. 1925년 뉴욕 라이벌리 극장에 에어컨이 설치되면서 브로드웨이는 여름으로부터 해방됐다. 이를 목도한 네바다는 6년 뒤인 31년 도박을 합법화했고 라스베이거스엔 호텔이 들어섰다.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는 인류의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은 에어컨이라고 했다. 유전자가 바뀐 게 아니라 에어컨이 설치된 것뿐이다. 그것으로 사람이 변하고 문화가 바뀌고, 1인당 GDP 5만 달러의 국가가 생겨났다. 열대지방 싱가포르에 가려면 카디건이나 후드티를 챙겨야 한다. 류현진처럼.



 하지만 한국에서 에어컨은 최소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에어컨이 번영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리콴유식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는 직장인이라면 에이컨을 거의 틀지 않는 승강장을 거쳐야 한다. 기다리다 올라 탄 열차 안도 덥다. 관공서나 기업이나 사무실 온도는 높다. 하지만 중·고생의 환경은 더 척박하다. 기말고사 시즌의 교실 온도가 30도 안팎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두뇌활동의 최적 온도는 18도다. 21도가 넘으면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한 고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면 출근할 때 마음이 가벼워져요. 에어컨 안 켜도 되겠구나 하고.”



 지난달 대통령이 수석들을 모아놓고 “전 에어컨을 전혀 틀지 않고 지냅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사무실의 온도가 한때 35도를 돌파했으며,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넥타이까지 매고 청와대를 찾았다가 많이 고생했다는 일화는 대통령의 말이 얼마나 강력하게 실천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오래된 슬로건, 에너지 절약.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 그런 조국이 산업에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국민은 오래전부터 에너지를 절약해 왔다. 블랙아웃으로 용광로가 멈추면 그걸 다시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계산하는 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래서 산업용 전기는 ‘당연히’ 가정용보다 싸다.



사람이 자원이라는 한국에서 에너지의 우선 순위를 바꾸는 것은 그동안 용납되지 않았다. 에어컨을 낭비의 대상으로만 낙인 찍는 상상력의 빈곤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한반도는 더 더워질 것이고, 아열대는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생산성을 질적으로 바꿀 창조경제가 에어컨으로부터 촉발될지도 모른다.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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