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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초(草)는 풀이다. 갑골문을 보면 풀의 형상을 따 만들어졌다. 풀밭은 거칠다. 세밀하지도 치밀하지도 않다. 원초적인 느낌을 준다. 그 뜻이 발전돼 글자 ‘草’는 다양한 의미로 쓰이게 된다.

史草<사초>

우선 ‘만든다, 창조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위(魏)나라 명제(明帝·227~232) 때 편찬되기 시작한 백과사전 『광아(廣雅)』에선 ‘草, 造也’라고 했다. 草立(초립)은 ‘새로 무엇인가를 만듦’, 초매(草昧)는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함’이다. 『주역(周易)』에 나오는 ‘천조초매(天造草昧)’라는 말은 ‘천지가 시작됨에 만물은 혼돈과 몽매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역사서인 『한서(漢書)』에 ‘소하초율(蕭河草律)’이라는 말이 나온다. 재상 소하가 법률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草’는 ‘시작 단계’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영어로 표시하자면 ‘draft’다. ‘초안(草案)’은 확정되기 전 단계의 문안이다. 『사기(史記)』에는 “초(楚)나라 회왕(懷王)이 어느 날 굴원(屈原)에게 법령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초고를 보고하기도 전(草稿未上)에 굴원의 상관(上官)이 그것을 보고는 빼앗으려 했다. 이에 굴원이 흘림체 글(草書)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서 나오는 초고(草稿)라는 단어는 지금도 옛 뜻 그대로 쓰인다.

전문가들은 한자 서체의 한 형태인 초서(草書) 역시 ‘거칠다’라는 ‘초(草)’의 의미가 확장됐다고 본다. 초서는 원래 글자의 이미지만을 살려내 일반인들은 형태를 알기 쉽지 않다. 굴원이 초서를 쓴 이유다. 참고로 한자 서예 기법은 진시황(秦始皇)이 재상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만들었다는 전서(篆書)부터 시작된다. 이후 예서(隸書)→해서(楷書)→행서(行書)로 이어지고, 흘림이 가장 심한 초서에 이르게 된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없어진 것을 두고 ‘사초(史草) 폐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초’란 말 그대로 후대 역사 기록의 시발이 될 가장 기본적인 팩트다. 그 사초가 사라졌다니, 5000년 역사의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굴원은 남이 혹 가로챌까 봐 초서로 기록을 남겨 놓았거늘….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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