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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옴부즈맨 코너] 시의적절했던 ‘鬼胎 막말 파문’ 사설

계사년도 절반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시계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거꾸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상생과 협력을 다짐하면서 출범한 19대 국회였지만 국민은 또다시 허망한 심정을 절감하고 있다. 7월 14일자 중앙SUNDAY 2면에 실린 ‘귀태(鬼胎) 막말 파문이 남긴 교훈’은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울분을 압축해 보여준 시의적절한 사설이었다. 사설의 주된 내용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등을 둘러싸고 정쟁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였다.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과 분열을 지켜보면서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선조 23년(1590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됐던 황윤길과 김성일. 이들은 동일한 사안을 살폈지만 왜의 침입 가능성에 대해 상반된 보고를 내놨다. 당파의 이익에 사로잡혀 국가를 돌보지 않았던 대표적 사례다. 지금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이 혹여 그런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일한 내용의 대화록을 열람하고도 정파적 유·불리를 앞세워 상반된 해석을 내놓는다. 이런 행태가 국론 분열을 심화시키고 국가 안보에 심대한 손실을 끼치지 않을지 걱정될 뿐이다. 여야 모두 대승적 결단으로 국익추구에 고심하는 지혜와 아량을 발휘해 국민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란다.

사설과 관련해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논란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를 비롯해 주객이 전도돼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에 대한 분석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작금의 ‘막말 정치’ 정치인들은 이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셈이다. 한편 심리학에선 사람들이 막말을 일삼는 이유를 자기과시 욕구와 소영웅주의적 심리 때문으로 본다.

이런 욕구와 심리에서 비롯된 막말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이제 한계에 달한 듯하다. 세 치 혀가 일으킨 설화(舌禍)의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영국과 미국 등 정치 선진국에선 막말 발언이 있을 경우 성숙한 유권자들이 표로써 철저히 심판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막말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달라진 환경 등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분석이 병행됐다면 사설이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정치가 상대에 대한 존중보다는 저주를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논리에 매몰돼 있는 한 선진 정치는 요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주 눈에 띈 칼럼은 ‘우리 내면의 이중성과 분열상’이었다. 칼럼 내용대로 여야가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했다면 막말 발언은 없었을 거라는 지적에 십분 공감했다.



한광문 한양대 겸임교수, 예비역 육군소장. 한국위기관리연구소 기조실장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위기관리의 법적·제도적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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