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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걱정도 팔자?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 “‘배우(俳優)’라는 한자를 잘 봐… 사람도 아닌 것(人+非=俳)이 사람을 걱정하는 꼴(人+憂=優)이니….”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전개되는 배우 손숙의 연극인생 50주년을 기념한 작품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에서 그녀가 독백처럼 읊조린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근심의 덩어리다. 온갖 걱정근심을 한 줌만 한 머리 위에 이고 살면서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의 운명이요 팔자인지 모른다.



 # 그래서일까?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까지 싸짊어지 듯하는 것을 주변에서 안쓰럽게 생각할 때 이르는 말이다. 으레 ‘걱정도 팔자’인 사람에게는 “팔자에도 없는 걱정일랑 그만해” 하고 점잖게 타이르기도 하지만 혹자는 “혼자 세상 걱정 다하라고 해!” 하며 매몰차게 선을 긋기도 한다. 특히 안 해도 될 걱정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기우(杞憂)’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본래는 ‘기인지우(杞人之憂)’다.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보면 “옛날 기나라에 살던 이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서 몸을 망치고 몸 둘 곳조차 없어질까 봐 걱정한 나머지 자고 먹는 일마저 그쳤다(杞國有人 憂天地崩墜 身亡無所倚 廢寢食者)”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고사를 통해 우리는 그 옛날 이름도 모르는 기나라 사람을 비웃지만 정작 오늘의 우리 역시 그 못지않게 여전히 걱정하고 근심한다.



 # 동양만 그런 것이 아닌가 보다. 어니 젤린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대개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22%는 무시해도 될 만큼 사소한 것들이고, 4%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며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니 굳이 애써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여기서의 수치가 정말 제대로 검증된 통계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이런 말에서 위안을 얻으며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기엔 너무 중증환자들이다. 결국 걱정과의 동거는 머리로는 숱하게 헤어지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인생의 늪에 다름 아니다.



 # 걱정도 걱정 나름인데 특히 문제는 ‘남 걱정’이다. 자기 시험지에 답 쓸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답안지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고 요란 떨며 걱정하는 게 요즘 세태다. 사실 자기 코가 석 자인데 남 걱정에 정신 팔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남 걱정은 하면서 남 도울 생각은 애초부터 없는 것도 문제다. 그저 “네가 얼마나 하는가 보자”는 심사가 깔려있는 게 ‘남 걱정’의 진상이다. 이런 쓰잘데없는 ‘남 걱정’만 줄여도 우리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참견하고 남 걱정하다 으레 싸움박질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 어제 아침나절, 전남 장성 축령산 기슭에서 마음 닦는 세심원과 쉬는 공간 휴림을 꾸리는 변동해 선생이 짧은 문자편지를 보내왔다. 투박하지만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도로변 풀 베기 하는 동안 땀을 담아 놓았더니 육신은 불편하였으나 마음은 평화로워지데요… 고창 수랑동에서 금곡마을까지 풀 베기를 마치고.” ‘땀을 담아 놓았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고 ‘육신은 불편하였으나 마음은 평화로웠다’는 말이 가슴에 저며 들었다. 그렇다. 걱정을 이기고 근심을 떨치는 최고의 명약은 다름 아닌 땀이다. 땀 흘리는 자는 괜한 걱정 하지 않고 쓸데없이 근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비록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불편하지 않다.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대부분 가만히 앉아서 뭉개고 있을 때다. 어쩌면 괜한 걱정을 한다는 것은 아직은 살 만하고 편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장마 때문인지 시절이 축축하다. 이럴 때 걱정근심이 눅눅한 습기처럼 스며들거든 밖으로 나가서 일하고 땀 흘리자. 애써 흘리는 땀이야말로 삶에 축축하게 스며드는 곰팡내 나는 걱정근심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가장 확실한 제습제가 아니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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