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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경제부총리와 금본위제도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윈스턴 처칠은 전시의 탁월한 총리였으나 평상시의 재무장관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재무장관 시절인 1925년 금본위제도로의 복귀를 결정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금본위제도(1870~1914)는 지금도 국제통화제도의 개편을 논할 때마다 학자들 사이에서 늘 회자되는 장점이 많은 제도다. 자국 통화의 가치를 금에 대한 평가로 고정시키고 통화공급을 금 보유량에 따라 결정하는 제도다. 경상수지 흑자가 커져 외국으로부터 금이 유입되면 자국의 통화공급이 늘어나 물가가 올라가고 외국 상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다시 흑자가 축소되는 일종의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한 자동조절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금 보유량에 상관없이 화폐를 찍어내야 할 필요성에 따라 금본위제에서 일탈해 관리통화(fiat money)제도로 이행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에서는 금본위제로의 복귀에 대한 논의가 일었다. 금본위제로의 복귀는 주로 당시 영국은행 총재인 노먼과 런던의 은행가들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이들은 1차 대전 후 세계금융의 중심지가 뉴욕으로 옮겨가자 금본위제로의 복귀야말로 파운드화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런던이 다시 금융중심지의 역할을 회복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조치라고 보았다(『세계를 뒤흔든 경제대통령들』, 유재수, 2013). 반면 케인스는 기고와 강연을 통해 금본위제 복귀가 가져올 경제적 재앙을 경고했다. 전쟁 전 4.86달러와 교환되던 파운드화 가치는 전후 파운드당 3.40달러로 떨어져 있어, 전전(戰前)의 평가를 회복해 금본위제도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통화긴축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경제불황은 통화긴축이 아닌 통화팽창 정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케인스는 대전 이후 많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빚을 크게 지고 있고 금의 대부분이 미국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만일 영국이 파운드화를 금에 고정시키면 그 순간 파운드화는 금이 아니라 달러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그는 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이미 미국으로 옮겨갔으며,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처칠은 통화 문제에 비전문가였으나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금본위제 논란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 결정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런던금융가의 여론을 수용해 “대영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1925년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금본위제로의 복귀는 케인스가 예측한 대로 영국 경제에 재앙적 결과를 가져왔다. 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려 실업이 증가하고 불황을 심화시켰다. 영광은 재현되지 않았다. 결국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다시 관리통화제도를 채택했다.



 경제부총리제도는 개발경제 시대에 경제계획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효하게 작동한 제도였다. 그러나 이 제도를 지금 다시 부활시켰다고 해서 경제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경제부총리는 경제팀의 수장이 됨으로써 성장과 수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책들을 사전 조율해 국무회의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나 수정 없이 경제정책을 신속하게 밀고 나가는 역할을 했다. 성장이 지상목표였던 시절, 장기영·김학렬 같은 부총리는 경제팀 내에서 노동·환경·복지·금융 담당부처의 목소리를 눌러 제한된 자원을 성장과 산업화를 위해 몰아주는 역할을 해냈다. 부총리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무회의에서 무수정 통과된 경제안건의 비율은 1964년 58.5%에서 1969년 91.9%로 증가했다(『대통령의 경제리더십』, 정정길, 1994).



 그러나 지금은 경제환경이 달라졌다. 복지·환경·금융감독·공정거래 담당부처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균형적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특히 금융위·공정위와 같은 부처는 독립적 정책판단을 하라고 수장의 임기를 정해준 기관들이다. 미국도 1차 대전 후 금본위제로 복귀했지만 영국보다는 덜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전전에 비해 훨씬 절하된 평가로 달러화를 금에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기왕에 경제부총리제를 부활시켰으니 국민들이 경제부총리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한다. 지금 경제부총리에게 과거 부총리의 역할을 기대하고 요구해서는 오히려 경제정책 추진의 왜곡만 낳기 쉽다.



 5년 단임제 대통령 권력구조하에서 정책조정의 역할은 어차피 경제팀 인사권을 쥔 청와대에서 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경제철학을 공유하는 정책실장을 청와대에 두어 소리 없이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아마도 정책 혼선을 줄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명한 정책의 우선순위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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