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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순종의 독일 소꿉친구에 하사한 병풍 … 100년 만에 돌아오다

1908년 고종이 볼터 가족에게 하사한 10폭 병풍 ‘해상군선도’. 지난달 경매에 나와 6억6000만원에 낙찰되며 100여년 만에 귀환했다. 맑은 색채, 유려한 붓질 등 단원 김홍도의 영향이 느껴지는 명품이다. [그림 서울옥션]


어머니가 물려준 ‘해상군선도’를 한국으로 돌려보낸 예거후보 여사(오른쪽)와 이 가족의 얘기를 발굴한 크나이더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억6000, 6억6000, 다른 분 안 계십니까.”

6억대에 낙찰된 황제의 10폭 병풍
첫 외국인 회사 세운 볼터 가족 귀국 때
고종, 아쉬워하며 '해상군선도'선물



 지난달 26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 2013년 메이저 경매가 막바지로 접어들며 오늘의 하이라이트라 할 고미술품 한 점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800년대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자 미상의 10폭 병풍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는 150여년 세월을 잊은 듯 우뚝한 모습으로 명품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비단에 맑은 채색과 또렷한 필선으로 물 흐르듯 거침없이 바다 위를 노니는 신선들을 그린 그림의 위세가 보는 이를 압도했다. 조선시대의 걸출한 화가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가 1779년 그린 ‘신선도(神仙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견주어도 그리 처지지 않는 솜씨였다.



 “6억6000, 6억6000!”



 추정가 3억원의 2배가 넘는 응찰가 기록에 경매사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6억6000, 6억6000, 낙찰!”



 오랜 해외 유랑생활을 보낸 문화재급 미술품 한 점이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제물포서 창업 … 20년 살며 8남매 키워



금발의 독일 쌍둥이 자매와 황태자 시절을 보낸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 순종. [그림 서울옥션]
 경매가 있기 한 달 전쯤, 서울옥션 측은 독일에 사는 한 출품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바르바라 미헬 예거후버(91·Barbara Michel-Jaegerhuber) 여사의 사연은 이 출품작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었다.



 “한국 병풍 ‘해상군선도’의 새로운 소장자가 되실 분께. 2013년 한·독(韓·獨) 수교 130주년을 맞이하며 저의 바람을 전합니다.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께서 저의 외조부인 카를 안드레아스 볼터에게 하사하고 저에게까지 대물려 내려온,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한국 문화적 가치를 지닌 귀중한 작품을 소장하시게 된 점을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는 와중에도 이 병풍을 4세대에 걸쳐 지켜왔고 소중히 잘 보존해 왔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제 91년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 작품 속 ‘신선들’이 그들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의 큰 소망으로 자리했습니다. 아직도 저는 과거 한국의 인천에서 지내셨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어머니가 들려주신 많은 이야기들 또한 여전히 기억합니다.



 소중한 작품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며, 부디 이 특별한 예술작품이 다시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길 바랍니다. 서울의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 지역 시민들뿐 아니라 방문객들도 잠시 이 위대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서 적합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2013년 5월 30일 독일 위버링겐에서



  바르바라 미헬 예거후버 드림.

 



 인연의 시작은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거후버 여사의 외할아버지 카를 안드레아스 볼터(Carl Andreas Wolter·1858~1916)는 대한제국 최초의 외국인 회사로 기록된 ‘세창양행’의 공동 창업주였다. 제물포에 사옥을 짓고 무역통상과 금광채굴권 등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볼터 가족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1908년 독일로 돌아가게 된다. 이들의 귀국을 아쉬워하던 고종(高宗)이 하사한 병풍이 이번에 출품된 ‘해상군선도’다. 군선도는 장수를 기원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길상화(吉祥畵)로 볼터 가족의 먼 뱃길이 안전하고 편안하기를 빈 고종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 최초의 외국인 회사 ‘세창양행’의 창업주였던 카를 볼터의 딸 쌍둥이 자매. 순종의 소꿉친구였다. 왼쪽이 ‘해상군선도’를 물려받았던 동생 마리온 볼터. [그림 서울옥션]


 카를 볼터는 20여년 세월을 한국에서 보내며 쌍둥이 자매 등 8남매를 조선에서 길렀는데 쌍둥이 중 둘째딸이 바로 편지를 보낸 예거후버 여사의 어머니 마리온 볼터(Marion Wolter)로 이 병풍의 상속자였다. 어머니에게서 병풍이 지닌 내력을 전해 들으며 자란 예거후버 여사는 “1964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이 병풍은 아주 귀한 거니까 잘 돌보다 꼭 한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몇 번씩 다짐하셨다”며 “이제 내 임무를 끝내 홀가분하다”고 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한국 미술품 한 점을 자식처럼 아끼며 돌봐온 예거후버 여사는 경매가 진행되는 기간 중 처음 한국을 찾았다. 미술을 전공해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그는 91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기억력이 좋았고 호기심이 넘쳤다. 어머니가 들려준 조선시절의 추억을 좇아 서울의 궁궐들과 인천 등을 돌아봤다는 그는 100여년 전 모친의 얘기를 생생하게 펼쳐놓았다.



 예거후버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의 모친과 쌍둥이 이모는 조선의 제27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였던 순종(1874~1926)의 소꿉놀이 친구였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아들로 태어난 순종은 어려서부터 병약했으나 의지가 굳고 총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순종이 황태자였던 시절에 함께 궁에서 자주 놀았던 것 같아요. 어두컴컴한 궁궐엔 숨바꼭질하기 좋은 장소가 많았다는군요. 순종이 어머니와 이모의 금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건 금이야’ 했다는 거예요. 경복궁에 갔을 때 ‘아, 저 돌이다’ 싶었어요. 순종과 그 돌을 뛰어넘는 놀이를 하다가 야단을 맞았는데 순종이 ‘얘들은 내 친구니 괜찮아’ 했다네요.”



 이 돌은 근정전 앞에 세워진 품계석을 말한다. 문무관(文武官)이 신분에 따라 자리하는 아홉 쌍의 품계석이 어린 시절의 순종에겐 놀이터였던 셈이다.



 “외국인 소녀들에 대한 배려가 의젓한 황태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해서 참 좋았어요. 아마 이런 좋은 느낌이 어머니에게 ‘조선이 큰 나라구나’ 하는 이미지를 남긴 것 같아요. ”



 그는 히틀러의 나치가 지배하던 시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야만국으로 비하하던 역사 수업 내용을 집에 가서 전하자 어머니가 크게 화를 내셨던 일화를 털어놨다.



 “그건 역사 왜곡이라며 정색을 하고 저를 앉혀놓고 설명을 하셨어요. 한국에는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훨씬 앞선 활자 문화가 있었다며 문명국의 면모를 이것저것 예를 들어주셨죠. 제가 학교에 가서 이 얘기를 하자 아이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는 거예요. 그래도 전 부끄럽지 않았어요. 집에서 매일 보던 ‘해상군선도’ 때문이었을까요?”



 예거후버 여사는 병풍 속 신선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들려줬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병풍 속 신선들이랑 대화했어요. 어머니를 생각하며 기도했죠. 이번에 한국으로 가져오기 전 신선들에게 말했어요.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시니 좋겠다’고, 당신들 덕에 행복했다고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난 신선들과 텔레파시가 통하니 언제든 마음으로 만나자고요. 내가 죽고 난 뒤라도 내 후손들은 비행기 타고 와서 이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영원한 이별은 아니죠.”



"독일에 돌아가면 한국어 배우겠다”



 그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함부르크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예술가답게 예거후버 여사는 이번 한국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기록한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독일에 돌아가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했다. 가족들 집에 흩어져 있는 외할아버지 유품과 한국 시절 사진들을 정리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왜 좀 더 일찍 오지 못했을까 아쉬워요. 사실 어머니는 조선의 왕이 하사한 이 귀한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컸어요. 병풍과 함께 고종이 내린 첩지는 제2차 세계대전 통에 잃고 말았죠. 왕가의 유산은 고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심한 어머니가 1950년대 초 귀환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한국전쟁이 터져 불가능했습니다.”



 ‘해상군선도’의 귀향에 큰 힘을 보탠 이가 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60)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교수다. 2009년 그가 독일출판사에서 펴낸 『세계의 여행가, 모험가, 광산업자-구한말 독일인의 발자취를 따라』에 카를 안드레아스 볼터의 삶을 다뤘고 그 내용을 읽은 예거후버 여사가 연락해 연이 닿았다. 크나이더 교수의 이 책은 오는 9월 일조각에서 한국어판이 나올 예정이다.



 7일간의 짧은 한국 여행을 마친 예거후버 여사는 한국을 떠나는 길에 “꿈같은 일주일이었다”며 눈물을 쏟았다.



 “우리 일가족을 지켜주던 신선들이 이제 고국의 여러분에게 수호신이 되기를 빕니다. 한국과 독일의 우정이 우리를 연결해준 신선들과 함께 수백 수천 년 이어지길. 아우프 비더제엔(Auf Wiedersehen). 안녕 여러분~.”



글=정재숙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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