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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역사가 질색이었으나 지금은 …

고정애
논설위원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청년기까진 ‘인간이 딱 질색’인 상태였다. “역사는 인간이다. ‘역사가 딱 질색’이라면 ‘인간이 딱 질색’이란 고백이 된다”는 주장에 의하면 말이다. 그 이후에 나아졌다곤 하나 무관심 정도였다.



 요즘 말론 학창 시절 국사 포기자, 즉 ‘국포자’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연표와 맥락 없는 암기로 허덕허덕해야 했다. 대학입시 때 국사시험을 봤지만 고사장 문을 나서는 순간 깡그리 잊었다. 한동안 대충 그렇게 지냈다.



 지금도 그러냐고? 전혀, 오히려 반대다. ‘인간애’로 점점 차오르고 있다.



 “순탄한 삶은 좀 더 신랄한 유혹으로 인간 정신을 시험하는 법이지. 불행은 그저 견뎌내는 것인 반면 행운은 타락하게 하기 때문이야. 네로를 그리워하는 건 항상 최악의 인간들이네만 그대와 난, 선량한 사람들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할 것일세.” 로마의 갈바 황제가 피소를 양자 삼으며 한 말이다. 곧 선량한 사람들도 네로를 그리워하게 됐고 둘 다 살해됐다. (『타키투스의 역사』)



 “전제주의 시대에 권력을 장악한 사람 중 자신에게 말대꾸하는 걸 좋아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적인 원한을 공적으로 보복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역시 한 명도 없었다. 할 수 없느냐 있느냐의 문제, 언제 하느냐의 문제다. 조조는 최염을 무려 12년 기다렸다.” (『삼국지강의』)



 “1918년은 파산한 유럽 옛 핵심부의 권력과 부가 대서양을 건너 번창하는 새로운 핵심부 미국으로 빨려들어가는 소리를 부인할 수 없게 된 해였다. 2009년은 파산한 미국으로부터 번창하는 중국으로 태평양을 건너 부가 유출되는 소리가 똑같이 잘 들리게 된 해로 드러날 수도 있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런 사람들과, 이런 통찰력과 만날 수 있는데 어찌 빠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너무나도 진부한 말이지만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현재를 모르면서 과거를 알 수도 없다. 진실이다. 공자님 말씀 같은 얘기-실제론 샘 와인버그의 말이다-지만 “우리 얘기를 앞선 세대와 결합시킴으로써 과거는 일상생활의 유용한 자료가 된다”는 말 역시 그렇다.



 그러니 반추 또 반추-자신의 야당 또는 여당 시절을 잊곤 하는 편의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의도 분들을 빼놓곤 말이다-할밖에.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해석을 둘러싼 정쟁을 보며, 상복(喪服) 착용 기간을 두고 생사를 걸고 싸웠던 당쟁(黨爭)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연상작용이랄 수 있다. 미국의 베트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두고 각각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벌인 그레이트 게임과의 유사성에 주목할 수도 있다. 자꾸 역사책을 들추게 되는 이유다. 따지고 보면 기독교의 성서도 역사책 아닌가.



 따라서 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 목청껏 “후회막심이니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라”고 외칠 자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엔 “재미있는 걸 그리 재미없게 가르친 분들도 용하다”는 안타까움을 떨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2년 전 중앙일보는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어젠다를 제시했고 결국 그리 됐다. 2009년 교육과정 개편으로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고사(枯死)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거였다. 그러나 아직도 근원적 문제점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채다. ‘용한 가르침’, 즉 질(質)의 문제 말이다. 여전히 재미없다. 근현대사 부분은 아직도 전쟁터다. 좌파가 압도적 우위인 가운데 좌파와 우파가 백병전 중이다. 대한민국에 부정적인 지금의 교과서를 달달 외우게 한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과목(한국사)은 평가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논의가 다시 한국사의 수능 포함 여부로만 수렴됐다.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2년여의 고민이 흐릿해진 점은 아쉽다. 참, 비역사적이다.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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